[취재수첩] 부끄러운 광주교육의 현실 ‘촌지’ 김재정 사회부 차장 /j2k@kjdaily.com

2012년 05월 15일(화) 00:00

#1. 초등학교 저학년 미술 수업 시간. 담임 교사는 학생들에게 희한한 주제를 내준다. “선생님한테 어울릴만한 물건을 그려보세요.”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정성껏 그림을 그렸다. 수업시간이 끝날 쯤 담임 교사는 또 하나의 숙제를 내줬다. “부모님께 그림을 갖다 드리세요.” 자녀들이 그린 그림을 받아든 학부모들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상당수 학부모가 담임 교사에게 ‘선물’을 보냈다. 광주 A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2. 광주에서 ‘치맛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B지역. 이곳에 위치한 C초등학교의 경우 교사들에게 건네는 촌지의 기본 단가가 50만원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20-30만원 보낼거면 아예 안보내는 게 낫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한다. 부유층이 많기로 유명한 인근 D초등학교는 촌지 액수가 100만원까지 치솟는다. “주변에서도 다 한다고 하니까 1년에 한번 눈 딱 감고 돈을 보냅니다. 얘들 맡겨놓은 입장에서 그게 마음이 편해요.” 이 학교에 1학년, 3학년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한 엄마의 푸념이다.

#3. E초등학교의 소풍을 앞두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엄마들이 모였다. 음식 장만을 위해서다. 소풍 당일 엄마들은 새벽부터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한다. 시장에 가서 회를 떠오고, 일식집에 맡긴 도시락을 찾아 오는 등 이것 저것 진수성찬을 준비한다. 그리고 버스를 대절, 교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러 간다. 물론 비용은 엄마들이 전액 각출해 마련했다.

이는 최근 기자가 ‘학교현장의 촌지 수수가 여전하다’는 기사를 보도한 뒤 받은 학부모 제보 전화 중 일부 내용이다. 당황스럽다 못해 낯이 붉어질 만한 하다. 그 중에서도 미술수업 시간 이야기는 기가 막히다. 압권이다.

전교조 출신으로 진보 성향인 장휘국 시교육감은 2010년 11월 취임 일성으로 촌지 등 교육계 부패 근절을 내세웠다. 이후 부패 근절을 위해 강력한 감사가 수시로 진행됐다. 적지 않은 교직원이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촌지 문제로 교사가 징계받은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징계는 교장·교감, 일반직 공무원에 집중됐다.

물론 학부모가 교사에게 주는 촌지를 적발해내기란 녹록치 않다. 그래서인지 ‘서슬퍼런’ 진보 교육감 시대에도 학교 현장에서 촌지 수수는 여전한가 보다. 일부 ‘불량’ 교사들로 인해 묵묵히 일하는 선량한 교육자들까지 욕을 먹는 형국이다.

교사도 사람이다.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은 실수해선 안된다.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촌지를 받는 교사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할 리 만무하다. ‘촌지를 근절하겠다’는 장휘국 교육감의 말만 믿고 적지 않은 학부모가 학교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 결국 그들의 자녀가 상대적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장 교육감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촌지 수수 교사들을 도려낼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촌지가 사라지지 않는 한 광주교육의 미래도 없다./j2k@kjdaily.com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