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에서 본 전남 농촌관광의 미래 이경수 부국장 겸 사회부장

2012년 07월 03일(화) 00:00

기자는 최근 일본을 다녀왔다. 농촌과 관광, 관광마케팅에 관심이 많은지라 일본의 대표적인 농촌관광지로 꼽히는 유후인마을을 살펴보고 싶었다. 배를 타고 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되리라 생각하며 부산항에서 배에 올랐다. 해질 무렵 출항한 배는 8시간 정도 달린 뒤 4시간여동안 바다에서 정박한 다음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에 맞춰 시모노세키항에 들어갔다.

일본 규슈지방의 관광명소인 아소산을 둘러본 뒤 유후인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마을의 모습은 자그마하고 단아했다. 잦은 지진 탓에 높은 건물 하나 없는 시골마을은 주위의 산들과 잘 어울렸다. 2시간 정도 굽이굽이 산길을 달려 유후인 마을에 도착했다.

규슈 오이타현의 외진 산골에 자리잡은 유후인은 마을에 들어서자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주말과 휴일이 아닌데도 마을 입구에 넓게 자리잡은 주차장은 이미 대형 관광차가 차지했다. ‘아무리 유명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 하며 조금은 여유롭게 시골마을을 산책하겠다는 꿈은 도착과 동시에 산산조각 났다.

여느 관광객과 다름없는 발걸음으로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 곳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유후인은 동서 8㎞, 남북 22㎞의 타원형 분지에 1만2천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마을은 1천m가 넘는 산줄기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며 평균 고도는 해발 470m다. 워낙 깊은 산속에 자리잡고 있기에 좋은 온천수맥이 있어도 개발이 어려웠다.

농촌마을이 다 그랬듯이 일본에서도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유후인 역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설상가상으로 1975년엔 규슈 대지진이 덮쳤다.

복구과정에서 마을재건위원회가 결성됐을 때 유후인의 선택은 ‘개발 아닌 개발’이었다. 주민들은 먼저 ‘정감 있는 마을 만들기 조례’를 만들었다. 이 조례에 따라 마을의 건물은 고도와 규모를 엄격히 제한했다. 호텔·골프장 같은 대형 레저시설은 애초부터 불허되었고, 60실 이하의 료칸(旅館)만 허가했다. 실제 1987년 종합보양지정비법(리조트법)이 시행되면서 외부자본이 리조트·별장 등을 지으려했지만 주민들은 조례를 만들어 무계획적인 대규모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또한 단체 관광객은 받지 않았고, 유후인 마을에서 생산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도록 했다. ‘주민이 살기 좋은 마을이 관광객도 방문하고 싶은 마을’이라는 생각에 주민 모두가 동감하고 마을가꾸기에 동참했다.

덕분에 유후인에는 아직도 메이지시대 양식의 가옥이 자리잡고 있으며 특색 있고 예쁜 민예품가게가 늘어서 있다. 테디베어만 파는 가게, 잼만 파는 공방, 만화 캐릭터 상품만 파는 가게, 일흔이 다 된 노인이 40년 동안 커피를 내리고 있는 작은 카페도 있다.

여기에다 마을사람들은 다양한 이벤트를 자체 기획, 활기를 불어넣었다. 봄을 알리는 마차축제(3월), 온천축제(4월), 도자기축제(5월), 건강달리기대회(8월), 쇠고기먹고 함성지르기(10월) 등 매달 잔치한마당이 펼쳐진다. 그중에서 5월에 열리는 영화제와 7월의 음악제는 세계 각국의 팬을 확보할 정도로 국제적인 마을이벤트로 각광받고 있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튀김과자를 사 먹으며 골목길을 느릿느릿 걷다보니 우리 전남 농촌의 현실이 자꾸 떠올랐다. 4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이탈로 노인들만 남은 남도의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은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최근 전남도가 특수시책으로 적극 추진하면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인 ‘행복마을’ 사업이 눈에 들어왔다. 한옥을 토대로 주거환경을 새롭게 단장하고 도시인을 유치해 다시 활기를 찾아보자는 이 사업이 곳곳에서 나름 성과를 내고 있다. 어떤 곳은 귀농이 이뤄지고 또 어떤 마을은 더불어 사는 삶을 재연했다. 마을 잔치도 함께 하고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면서 공동체 문화를 되살려 내기도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 스스로 이같은 일을 이뤄내야 한다는 점이다. 행정기관이 지원하거나 정치인이 앞장서서 설레발을 치면 설령 성과가 나타난다 해도 지속되지 않는다. 그곳에 삶의 뿌리를 내린 민초들이 한마음으로 나설 때 마을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모두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본에서 가장 ‘새롭게 오래된 마을’로 알려진 유후인이 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