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도 사람들] 시골 공부방 10년째…아이들 꿈과 희망 ‘무럭무럭’ 전라도 전라도 사람들 / <17>홍요한 강진 신전중앙교회 목사 /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
| 2012년 07월 06일(금) 00:00 |
|
|
한 시골마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수업을 끝내고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연로한 할머니, 할아버지만 기다리고 있다. 방과후 이 아이는 할 수 있는게 없다. 도시에서는 그 흔한 학원도, 부모의 관심도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외로움을 견뎌낼 뿐이다. 아이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생활은 매일매일 반복된다. 이 아이가 나이가 들어 되돌아본 어린 시절은 어떤 모습일까.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더라도 암울하고 슬프다.
단적인 사례겠지만 이 같은 모습은 우리네 농촌, 시골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미 농촌지역의 가정 붕괴는 부지기수다. 설령 온전한 가정이라 하더라도 열악한 경제 여건 속에서 제대로 된 자녀 교육이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는 곧 인구 유출로 이어진다. 경제력 때문에, 자녀교육 때문에 도시로, 도시로 떠난다. 결국 농촌을 떠날 수 없는 가정만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강진군 강진읍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신전면. 면 소재지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깡촌’이다. 그런데 다른 시골마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풀꽃세상’이라는 공부방이 있어서다.
‘풀꽃세상’은 신전면 아이들의 공부방이자 놀이터, 문화공간, 그리고 생활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 ‘풀꽃세상’을 만든 사람은 바로 신전중앙교회 홍요한(45) 목사다.
홍 목사는 강진과는 어떤 인연도 없는 외지인이다. 그가 강진과 연을 맺은 것은 2000년 8월. 대전이 고향인 그는 광주의 한 교회에서 4년간 부목사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강진 신전중앙교회 목사로 부임했다.
도시생활에만 익숙했던 그는 막연히 ‘시골은 정감있는 곳’이라는 감상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그의 눈에 비친 시골마을은 충격이었다. 특히 아이들의 삶은 그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처음 신전에 내려왔을 때는 암담했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몇 년 있다 떠난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골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지게 됐습니다.”
시골 아이들은 말 그대로 방치, 방임 상태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에 숨어 버렸다. 도시 아이들에겐 일상 생활일 뿐인 숙제나 학습, 독서 등의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던 홍 목사는 2003년 봄, 아들 친구 몇 명을 방과 후에 사택으로 데리고 와 숙제를 같이 해주며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 만에 아이들 수는 10여명으로 늘었고 불과 한달 만에 수십명이 됐다. 아이들 스스로 그런, 소소한 관심을 기다리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종교인으로서의 사명이 아니었다. 어른으로서, 아빠로서, 아이들에 대한 연민, 짠한 마음이 컸다.
|
“계획에도 없는 공부방이 돼버렸습니다.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이 정도로 절박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인데’란 마음에 이 일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이다 보니 간식 등 기본적인 비용은 필요하기 마련. 결국 부인 이현경씨가 강진읍의 영어학원에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충당했다.
더 이상 사택에서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 공부방을 할 만한 넓은 공간을 찾았다. 마침 지역에서 사업을 하던 윤재상씨가 면소재지에 있던 당구장 건물을 무료로 내놓았다. 현재 ‘풀꽃세상’이 있는 자리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교인의 자녀가 당구장을 개·보수해 공부방을 정식으로 열었다. 홍 목사와 지역민의 관심·도움이 아이들을 위한 소중한 울타리를 만든 셈이다.
그러던 중 군청 공무원이 법이 바뀌어 공부방을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한다는 정보(?)를 줘 혹시 하는 마음에 신청서를 냈다. 2004년 10월 강진지역 1호 지역아동센터로 지정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교과 위주의 보충교육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외견상 공부방이지만 중요한 것은 ‘풀꽃세상’을 통해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시나브로 변해갔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뭘 원하고,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됐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이들도 어색해 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최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면서 아이들과 저 사이에 어떤 신뢰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 신뢰를 저는 사랑이라고 봅니다. 서로 존중하는 무엇인가가 생긴거죠.”
‘풀꽃세상’ 문을 연 지 벌써 10년째. 홍 목사는 지역아동센터로써 ‘풀꽃세상’의 기본적 역할 외에 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센터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는 것 외에 문화예술 활동으로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학습이나 금전 지원, 심리치료 등을 통해 시골아이들이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게 홍 목사의 생각이다. 문화활동, 예술활동으로 인한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2010년 12월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우연히 ‘풀꽃세상’이 소개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열악한 시설을 리모델링해 아이들이 편안하게 공부하고 놀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더불어 방송을 본 목포의 한 독지가가 바이올린을 기증, 문화예술 활동의 단초가 마련됐다.
“시골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존감입니다. 예전에는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이들이 붕괴된 가정 속에서 보고 배워온 것들이 뭐가 있겠습니까.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이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꿈을 가질 수 있고 키울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방송을 계기로 21명이 바이올린을 접하고 중학생 6-7명은 주말마다 기타를 배우고 있다.
지역에서 공익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직접 강의, 아이들의 문화 수준을 높여주고 있다. 바이올린에 관심 없던 아이들이 이젠 예술고에 진학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또 책읽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최근까지도 매주 수요일이면 강진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대출증을 직접 만들고 도서관 문화를 익혔다. 처음엔 30분도 앉아 있기 힘들던 아이들이 이젠 2시간은 거뜬히 책을 본다.
특히 강진지역 예술인들과 마음을 모아 문화공동체인 ‘드림마루’를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멘토 역할을 해주자는 취지다. 한달에 한번씩 ‘인기’라는 청소년 공연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어른들이 만드는 행사가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스스로 추진한다.
지금은 강진지역 오케스트라 창단을 준비중이다. ‘드림오케스트라’라고 이름 붙였다. 어린이재단의 지원을 받아 앞으로 3년간 강진군내 지역아동센터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를 만들 계획이다.
“제가 강진에서 하고 싶은 일은 장기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입니다. 강진에는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갖고 계신 분이 참 많습니다. 재능이 있는 어른들과 청소년을 묶어 주는 일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엮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2의 고향, 강진에서 인생 2막을 연 홍요한 목사. 꿈을 잃어가던 시골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전라도 사람’이지 않을까.
아이들의 희망이 자라듯 천상 ‘전라도 사람’인 홍 목사의 꿈도 함께 영글어 가고 있다./글=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