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들] “마음을 나누면 이웃까지도 한 식구가 됩니다” 전라도 전라도 사람들 / <18>김영찬 순천 풍덕동 한솥밥공동체 회장 2009년부터 소외계층 105세대와 ‘1대1’ 결연 안부 살피기·간병 지원·생활용품 나눠쓰기도 공동체운동 본보기…타지역 벤치마킹 잇따라

2012년 07월 20일(금) 00:00

한솥밥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김영찬 회장이 순천시 풍덕동 동천 둔치에 조성된 ‘사랑의 정원’에서 20년간 이어온 봉사활동과 한솥밥공동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題字-담헌 전명옥>

한솥밥
먹는 사이를
‘식구(食口)’라 한다.
같은 솥에서
정성껏 지은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 사이엔
끈끈한 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음식에
사랑이 담겼다 하고,
식구 사이엔
신뢰와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식구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순천시 풍덕동. 이름처럼 풍요롭고 덕이 많은 풍덕동에서는 105명이 한솥밥을 먹고 있다. 바로 ‘한솥밥 공동체’에서다. 한솥밥 공동체는 풍덕동의 가장 소외된 세대 105명과 1:1 ‘짝꿍’을 맺었다. 그렇게 자립적 복지네트워크를 만들고 이웃과 아름다운 관계를 바탕으로 행복한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혈연을 뛰어넘어, 마음을 나누는 사이라면 이웃까지도 ‘식구’가 될 수 있다는 따뜻한 공동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년 전, 한솥밥 공동체는 “내 가족처럼 해보자”는 작은 다짐에서 시작됐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한솥밥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김영찬(66)회장도 그런 믿음이 강했다.

“한솥밥을 먹는 사람은 가족이고 식구지요. 그렇게 우리 한솥밥 공동체에서는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세대와 자원봉사자가 1:1로 결연을 맺고 이웃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순천에서만 50년 이상을 산 토박이다. 25년 동안 가구를 만드는데 평생을 바쳤다. 나이가 들면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해 가구점을 운영하며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 1995년,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마을일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릴 적에 쌀은 커녕 보리쌀도 없어 못 먹을 때가 많았던 그때는 ‘나도 어느정도 생계가 유지될 정도가 되면 이웃을 돕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어요. 그때 풍덕동 1통 주민들이 나에게 통장을 권하더라구요.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면서요. 허허….”

‘한솥밥 공동체’는 2009년부터 이웃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며 행복한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사람들은 겸손하고 믿음직한 그에게 동네일을 봐주길 권했다.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1995년부터 심부름꾼이자 민원 해결사가 된 것이다. 통장을 시작하자 민원이 넘쳐났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통장만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궂은일 가리지 않고 앞장섰다. 처음엔 통장 임기가 2년이니 그때까지만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2년 하고 나니 주민들은 계속 그가 통장을 해주길 바랐다. 그렇게 해온 통장 일이 어느덧 18년이 넘었다.

통장 일이 손에 익자 그는 큰 그림을 그렸다. 어떻게 하면 마을 곳곳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 끝에 풍덕동의 통장 22명이 모인 통장협의회를 움직였다. ‘우리 동네에서 나오는 박스와 고철, 헌옷을 모아 팔아보자.’ 그렇게 통장협의회는 폐자원 수집사업을 시작했다.

“동네 주민들에게 좋은 일에 쓸 테니 헌옷을 많이 넣어달라고 했더니 하루가 다르게 양이 쌓였어요. 박스의 경우 1㎏당 200원이다보니 1톤이면 20만원, 헌옷은 1㎏당 500원이니 1톤이면 50만원이 모아지거든요. 모은 돈으로 봄철에는 어르신들을 선정해 효도관광을 보내드리고 명절에는 쌀을 사서 불우이웃을 돕고 연말에는 김장을 담가 소외계층에 전달했습니다.”

작은 일로도 뜻을 모으니 주민들은 금세 하나가 됐다. 김 회장은 더 큰 일을 벌였다. 풍덕동에 있는 여러 자생단체들이 하나로 뭉치면 더 좋은 동네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통장협의회와 새마을부녀회, 주민자치위원회, 장미회, 희망누리, 바르게살기 등 6개 자생단체를 설득했다. 멋있는 이름도 지었다. ‘한솥밥 공동체’. 2009년의 일이다. 회원은 총 105명. 자연스럽게 통장협의회장이었던 김 회장이 한솥밥 공동체 회장을 맡았다.

가장 먼저 한솥밥 공동체 회원들이 한 일은 동네 사람들 중 ‘짝꿍’을 찾는 것이었다. 풍덕동에 살고 있는 국민기초수급자 중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이웃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105명을 선정해 결연을 맺었다. 안부살피기, 간병 활동 지원, 생활용품 나눠쓰기 등을 하며 지역 사회 내 자립적 복지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후 한솥밥공동체 내 6개 자생단체가 돌아가며 3달에 한번 밑반찬을 만들어 전달했다. 장소는 교회 주방을 빌렸다.

“혼자 계시는 어르신이나 소년소녀 가정을 방문해서 밑반찬을 갖다드리면 너무너무 좋아하셔요. 우리 한솥밥 공동체가 눈길을 끄는 점은 단지 밑반찬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1:1로 결연을 맺었다는 겁니다. 봉사자 한명과 소외계층 이웃이 한명씩 결연을 맺어 스스로 가서 안부를 묻고 어려움은 없는지 확인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이웃과 소통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솥밥 공동체는 한꺼번에 우르르 움직이지 않는다. 보여주기 위한 봉사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나누는 의무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도 있다. 그래서 부분부분 일을 나눴다. 1-2단체는 털실을 사서 뜨개질을 해 관내 노인요양시설이나 경로당 등의 어르신들에게 드린다. 그리고 단체별로 매달 2째 주 금요일에 골목 청소도 한다. 특히 희망누리는 아랫장에 한솥밥 가게를 개업해 ‘매실비빕밥’을 만들어 팔고 있다. 비빔밥 뿐 아니라 친환경 수제비누와 매실고추장, 매실잼 등 다양한 식품과 생활용품도 저렴하게 판다. 여기서 얻어지는 이익금은 주민 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에 쓰인다.

한솥밥 공동체가 유명세를 타자 타 지자체로부터 벤치마킹하겠다는 문의가 잇따랐다. 부산 등에서도 한솥밥 공동체를 배우러 많이 오고 있다. 그렇게 한솥밥 공동체는 행복한 지역 공동체운동을 대표하는 본보기가 됐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관(官)의 지원 없이는 유지하기 힘든 것이 현실. 한솥밥 공동체의 뜻을 알고 순천시도 매년 400만원씩 지원해주고 있다.

“좋은 일을 하니 상도 많이 받았어요. 지난 2010년 제7회 좋은 이웃 밝은 동네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상금 일부를 순천시 인재육성 장학재단에 장학기금으로 기탁했어요. 수상의 영예를 한 층 높인 것 같아서 너무 흐뭇했습니다.”

그는 한솥밥 공동체가 이렇게 유명세를 탈거라는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뭐 그리 특별한 일이냐며 반문했다. 그는 그저 통장으로 일하려고 마음먹었으니 지역주민들의 ‘대표자’가 아닌 ‘심부름꾼’으로 대변자이자 중간자 역할을 했을 뿐이란다. 그리고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보다 좀더 자주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하는 게 가장 큰 소망이다.

40대 젊은 나이에 마을 심부름꾼이었던 그는 어느덧 60대 후반을 내다보고 있다. 그저 사람이 좋아 시작한 일. 올해로 통장 일을 한지 18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는 주민들의 심부름꾼이고 싶다. 그리고 주민들 또한 계속 그가 든든하게 풍덕동을 지켜주길 바란다. 그렇게 풍덕동에서는 오늘도 이웃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영글어 가고 있다. /글=오경은 기자 white@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