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병] 민중의 땀과 혼 서린 거북선 탄생지 광주시.전남도 공동기획 구국 항쟁의 횃불, 호남 의병(18) 제2부 이순신의 이름으로 - 여수 선소유적 천혜의 요새 활용해 구축 무패 신화의 산실 日 강점기 훼손, 호국의 명소로 재조명해야 /사진=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2012년 08월 27일(월) 00:00

'외해(外海)에서 보면 육지요, 내해(內海)에서 보면 바다'이면서 파도가 잔잔해 호수와도 같은 천연의 해안 요새에 구축한 인공호. 방파제를 작은 만처럼 둥그렇게 만들었다 해서 굴강(掘江)이라 부른다.

◇알림=본보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임진란과 이후 광주·전남 의병활동과 전적지, 의병장 등을 발굴해 본란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062-650-2060

‘무적의 철갑선’으로 실전에 사용된 위대한 예술작품이자 첨단무기로 평가받는 거북선은 호남민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배 건조기술과, 고려시대에 발달한 화포술, 조선시대 전함인 판옥선, 3가지가 합쳐진 것으로 기실은 구국의 첨병에 선 호남의 땅과 호남의 사람들에 의해 탄생됐다.

이를 전장에서 사용한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는 병사들, 포를 발사한 포수들, 화살끝에 화약을 매달아 쏘는 사수들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거듭 되새겨 볼 일은 80여명에 달했다는 노를 젓는 백성들이었다.

이들은 대개가 키 145-150㎝, 몸무게 45-50㎏ 정도에 불과했지만 너무도 힘들어 도망갈까봐 스스로가 자신의 다리를 묶어놓고, 배에서 죽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유적 입구에 선 ‘벅수’ 돌로 만든 장승이다.

▲도망갈까봐 자신의 다리 묶어

여수시 시전동 일대에 위치한 선소(船所)유적에 다다랐다. 하루종일 비가 뿌려댔다.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들었다는데, 희미한 안개 너머로 일사불란하게 목재를 베어다 자르고, 나르고, 붙이는 이름없는 백성, 병사들의 모습이 잡혀온다.

이 곳은 배 만드는 신기를 가졌던 나주 출신 군관 나대용과 충무공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든 곳이다. 첫 느낌은 그야말로 천연의 요새라 할 만하다. 가막만의 최북단 후미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구에 가덕도와 장도가 방패역할을 하고, 뒤로는 망마산을 등지고 있다.

원래는 순천부 선소로, 고려시대부터 배 만드는 곳이었다고 한다. 거북선은 인근의 본영 선소, 돌산 방답진 선소를 포함해 3곳에서 건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를 향한 트라이 앵글의 전형을 보여준다.

입구에 마주 선 돌장승. 일명 ‘벅수’라고 부르는데, 그 형상이 얼굴 큰 사람같고, 얼핏 도깨비가 연상되는 듯 싶다. 120㎝ 남짓한 키에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니, 수백년 세월의 무게에 닳고 닳았지만, 얼굴 부위는 더욱 또렷해만 보이고, 이상한 일이다.

집무 및 지휘소 기능을 담당했을 세검정은 작아도 7칸에 15.8m 규모로 추정되는데, 후대에 복원됐다.

▲세월의 무게에 닳고 닳아

선소부락이라는 이정표 앞에 나란히 한쌍, 문관석 형상을 한 왼쪽 벅수는 눈을 위로 치켜뜨고 두드러진 코 위로 굵은 코주름이 새겨있으며, 다문 입술 밑으로 콧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오른쪽은 알아보기 힘드나 가슴에 ‘화정려(火正黎)’라고 새긴 명문이 있다.

조금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조그만 군사항만 시설인 굴강에 있는 한쌍에는 투구를 쓴 무인석이 보인다. 또 군사 훈련장과 적의 동태를 감시할 수 있게 선소가 내려다보이는 망마산 골에 한쌍 해서 도합 3쌍, 이렇게 해서 모두 6기가 남아 있다.

발걸음을 옮겼다. 이름하여 굴강(掘江)이다. 커다란 타원형으로, 대피한 배를 보호하기 위해 방파제를 작은 만처럼 만든데서 유래한다. 배가 머무르며 고장난 곳을 손 보거나, 군사 물자를 싣고 내리기도 했다.

면적 1천338㎡, 직경 42m 안팎으로, 거북선 두 채가 들어갈 만한 크기라고 한다. 깊이는 돌벽 위에서부터 바닥까지 5-6m로 북쪽으로 폭 9m 정도의 입구가 있다. 대체로 40-50㎝ 자연석과 깬돌로 막쌓기를 했고, 남은 돌과 흙으로 튼튼히 받쳤다.

주변의 유적과 유물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훼손됐다니 임진란의 흔적, 역사를 말살하려한 그들의 꼼수가 치를 떨게 한다. 후대에 발굴조사를 통해 대장간 터를 찾아냈고, 세검정(洗劍亭)과 수군기(水軍器)는 복원됐다.

세검정에서 만난 관리인 정양기(77) 씨는 “이번 여수세계박람회 기간 동안 관광버스 등으로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면서 “한편으로 뿌듯했다”고 전한다. 또 “주춧돌 만큼은 당시의 것으로 복원 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세검정은 집무 및 지휘소 기능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춧돌 크기로 보아 작아도 7칸에 15.8m 규모로 짐작간다. 수군기, 일명 군기고는 쇠로 된 화살촉, 배 못들이 출토됐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무기 창고였을까 싶다.

관리인이 가리키는 세검정 앞 돌출한 해안선에는 우뚝선 돌기둥이 눈에 든다. 계선주(繫船主), 배를 묶어두는 기둥이다. 1.4m 높이로 임진란때 거북선과 판옥선을 매 두었다 전하나, 선소의 초소격으로 해안벅수로 추정되기도 한다.

물을 모으는 집수구를 갖추고, 군기를 만들고 수리하던 대장간.

▲치밀한 전략전술이 원동력

외해(外海)에서 보면 육지요, 내해(內海)에서 보면 바다이면서 파도가 잔잔해 호수와도 같은 천연의 해안 요새에 구축한 인공호인 굴강은 물이 빠졌다가 차는 썰물과 밀물을 잘 활용했다. 이순신 장군과 왜적선 400여척을 격침시킨 거북선의 불패 신화 역시 치밀한 전략전술이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곳에서 처럼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호남민들의 혼이 살아 숨쉬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글=김종민 기자 kim777@kjdaily.com

/사진=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