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만에 졸업…신부처럼 두근거려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특별한 ‘외출’ 화순 능주초, 김재림 할머니 졸업장 수여 회유 속아 1944년 日중공업에 강제 동원 /박은성 기자 pes@kjdaily.com

2013년 02월 19일(화) 00:00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재림 할머니(왼쪽 두번째)가 최근 화순 능주초등학교에서 학적부를 확인하고 있다. /근로정신대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오늘 같이 좋은 날이 어디 있답니까? 해방 68년 만에 졸업식장에 선다고 하니 새 신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렙니다.”

일제 강점기 근로정신대에 강제동원된 피해 할머니가 70여년 만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돼 주목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광주 북구 양산동에 거주하고 있는 김재림(83)할머니.

18일 화순 능주초등학교 등에 따르면 19일 오전 10시 ‘제100회 졸업식’에서 졸업생인 김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재발급해 수여할 예정이다.

김 할머니는 지난 1944년 5월께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할 수 있다”는 친척 언니의 말을 믿고 일본행에 나섰다.

그러나 “함께 가자”던 언니는 일본으로 떠나기로 한 날 집결지인 광주역에 나타나지 않았고 일본에 끌려가서도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김 할머니는 군수업체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는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어린 나이에 허기에 지친 몸으로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이뿐만 아니었다.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와서는 “일본군 위안부 아니었느냐”는 편견과 오인 속에 남모를 정신적 고통까지 겪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어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광복 후에는 주변의 편견 등을 거치며 남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김 할머니에게 지난 시절은 ‘조각난 삶’, ‘조각난 기억’ 밖에는 없었다.

김 할머니가 조각난 어린 시절 기억을 다시 꿰맞추기 위해 나선 것은 지난달 11일. 자신이 학교를 졸업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사연을 접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사실 확인 차 김 할머니와 함께 모교인 능주초등학교를 방문했다.

학교 측과 시민모임 관계자들은 이날 문서고에 있는 일제시대 학적부를 뒤지다가 1944년 3월, 31회 졸업생 명단에서 창씨개명 된 김 할머니의 이름을 확인했다.

능주초등학교는 올해로 ‘100회’ 졸업생을 배출하는 뜻 깊은 해를 맞아 이번 졸업식에서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재발급해 수여함으로써 할머니의 고단한 삶에 위로와 용기를 전하기로 했다.

졸업장을 다시 받게 된 김 할머니는 “고향 역을 지나갈 때 어머니한테 말씀도 제대로 못 드리고 속아서 간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며 “오늘 같이 기쁜 날이 없다. 졸업식에 다시 선다고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고 밝혔다.

이날 졸업식에는 김희용·김선호 시민모임 공동대표를 비롯해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등도 동행할 예정이다.

한편, 시민모임은 일제강점기 학교 재학 중 어린 나이에 일제에 강제동원돼 학기를 마치지 못한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062-365-0815), 명예회복을 추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나주초교는 6학년 재학 중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된 양금덕 할머니 등 2명의 근로정신대 피해자에게 지난 2008년 5월 명예졸업장을 수여했고 순천 남초교 역시 일본 군수업체인 ㈜후지코시 강재공업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김정주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수여했다.

/박은성 기자 pes@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