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목숨 걸고 임금에 직언 불사한 호남 선비의 표상 광주매일신문·KCTV광주방송·광주시 공동기획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
| 2013년 04월 26일(금)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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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무등산권에 형성된 사림문화는 오늘날 광주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조선 중기 기묘사화를 기점으로 호남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심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조선시대의 사림과 주자학의 발전은 무등산을 중심으로 한 남도인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많으며, 조선조의 실학이 완성된 곳 또한 남도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지리적 역사적인 특징을 배경으로 하여 특색 있는 역사문화자원이 생성된 것이다.
조선 건국 이후 정치적 변동 속에서 절의를 고집했거나 정쟁에 연루됨으로써 박해를 받았던 정치인들이 남도로 이주해 왔었다. 이들로부터 사상적으로 주요한 영향을 받은 신진 사림들은 중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1514년 유성춘 안처겸 남주 기준 박수량 등이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어서 1516년 윤구 양팽손 이영부 기형 정만종 등이 과거에 합격하는 등 남도사림은 해마다 문과에 다수의 합격자를 냈다. 또한 1513년 사마시에 생원합격자 100명과 진사 합격자 100명 중 전남 출신이 각각 23명과 24명을 차지하고 생원 1-5등에는 윤구 유성춘 기준 등 3인이, 진사 1-5등에는 유성춘 안처순이 들어가는 등 능력도 다른 지역에 뒤지지 않았다.
남도사림은 훈척에 대항하여 사림을 정치적으로 결집시키는 데는, 1512년 소세양의 소릉복위 주장과 1515년 박상 김정 등의 신비복위소 영향이 컸다. 소릉은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능으로 단종이 폐위되면서 폐릉되었다. 신비는 중종의 왕비로 중종반정 때 아버지인 신수근이 반정에 참여하지 않고 살해되자 반정세력에 의해 강제로 폐출 당했다. 따라서 이 두 왕비가 정당한 이유도 없이 쫓겨난 것은 성리학적 명분에 어긋나므로 다시 본래의 상태로 복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소릉복위는 1년간에 걸친 논쟁 끝에 뜻을 이루었으나 신비 복위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박상과 김정이 유배되었다.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그리고 그 이후의 고변사건으로 인해 김식 최산두 양팽손 박상 고운 윤구 유운 유성춘 임형수 유희춘 송순 등 많은 인물들이 호남으로 유배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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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대에 이르면 성리학의 이기심성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크게 서경덕계열과 송순계열로 나누어 활동했다. 서경덕과 송순 양 계열은 명종 말부터 서서히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하다가 선조가 즉위한 이후에 노수신 유희춘 김난상 등이 복관되면서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중앙정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노수신 박순윤 의중 박응남과 유희춘 기대승 이후백 오겸 송순 등 선조 초에 고위관료로서 활약했던 인물 중의 상당수가 서경덕·송순계열의 호남사림이었던 것이다.
무등산을 중심으로 16세기 전후 당시 호남사림의 인맥을 보면 크게 여섯 계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김굉필 계열로 문하에 최산두 유계린 윤신 최충성 유맹권 김인후 유성춘 유희춘이 있었고 최부 계열로 윤효정 임우린 유계린 윤구 윤항 윤행 윤복 이중호가 있다. 그리고 송흠 계열로 양팽손 나세찬 송순 안처성 양응정이 있었으며 박상 계열로 송순 임억령 정만종 채중길 박순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오늘 우리가 만나볼 인물은 송순 계열의 송재 나세찬(松齋 羅世纘 1498-1551)이다.
송재는 정말 용감한 선비였다. 그가 조정에 있던 조선 중기 중종 때 김안로라는 이가 임금의 배후를 믿고 현인을 죽이는가 하면 선량한 관리들을 학대했다. 그러나 세도에 눌려 누구 하나 진언하는 이가 없었다. 이때 나주 선비 송재 나세찬이 당시 조선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간인이 어찌 홀로 2세의 조정에만 있겠습니까’라고 말해 김안로의 지나침을 공론에 부쳤다.
이에 김안로가 크게 성을 내어 임금께 조정을 모함했다고 고해바쳐 혹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송재는 이 고문으로 급기야 뼈가 부서지는 피해를 당한다. 그러나 그는 떨어져나간 뼈를 주어 주머니에 담으며 부모의 유체니 버리지 못한다고 말하고 옷을 찢어 그 위에 피로 두 줄의 상소를 썼다.
‘위에는 요순과 같은 임금이 있으나 아래는 후직과 같은 신하가 없으니 나라를 위하는 충성스러운 정성은 백일에 비추인다.’
이 상소를 본 임금은 특별히 관대한 처분을 내려 고성에 귀양 보내 둘러막았는데 적소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는 날이 많았으나 책읽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송재는 나주 문평면 남산촌 출신이다. 집은 가난했으나 글읽기를 좋아해 항상 관솔을 불사르며 새벽까지 밖에서 경서와 사서를 관통했다고 한다. 을윤녀 사마에 합격하고 무자년에 문과에 합격, 나주와 황주 두곳의 훈도가 되었다. 초시에 합격하니 그 논제는 ‘崇義節論’이다. 정치체계를 세우려는 한 나라 지도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기틀을 논한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바는 그 인륜에 있기 때문에 임금이 반드시 먼저 한 시대의 표본이 될만한 사상을 밝혀 실천한다면 백성의 좋은 표적이 될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인륜에 다섯가지가 있는데 떳떳함이 천하의 인심에 적용이 안되니 나라의 질서가 엉망이고 누구 하나 사회를 위해 헌신하려 하지 않으니 국가가 어려움에 처하면 누가 진실로 모범이 돼 일어나겠느냐는 질책이 담긴 글이었다.
이후 그는 춘추관 예문관 검열, 홍문관 부수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항상 관직에 있으면서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은 탓에 41세에 탁영시에 장원을 할 정도였다. 학덕이 높은 선비 중에서 최고로 뽑힌 그는 호당에 들어가 퇴계 이황, 금호 임형수 등과 동문수학 했다.
탁영시는 이미 학문을 인정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여기서 장원을 할 경우 영광 중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중종은 물론 온 장안의 화제가 된 송재의 글은 ‘위무공(衛武公) 억계론(抑戒論)’이다.
정치인의 특별한 자세와 경계를 강조한 논문이다. 대개 마음을 바로 세우지 않은 공직자가 많은데 이는 안을 잘 보존하지 못하고 밖을 억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풀이, 또 지난 것을 능히 보전하는 이는 많아도 앞날을 깊이 안보하는 이는 많지 않다는 논조, 그러나 옛 사람 중 위무공은 90세가 되어도 왕위에 있었지만 몸과 정신이 건강해 아침 저녁으로 나라를 다스림에 과실이 없었는가 반성하고 검토해 젊은 신하를 놀라게 했다는 것. 성인이 아니고서야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위무공은 천하에 지극히 갖기 어려운 것은 정당한 마음이요, 더 어려운 것은 사사로운 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이치를 바로해 시시비비를 잘 가려냈다. 따라서 즐 눈을 경계하고 마음을 경계함은 과실을 방비하는 것이 되지 못하니 항상 반성하고 되새기는 의미로 억계를 지었다. 억계(抑戒)는 ‘몸에 과실이 없어야 한다. 짐의 혀를 더듬지 마라.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에도 부끄럼이 없는가’가 주 내용이다.
이후 판결사를 지낸 대사간이 되었는데 간신의 무리가 어진 선비들을 괴롭히자 상소해 구원하려다 세도가들에게 거슬려 관직을 교체, 충청도 관찰사로 내려가게 된다. 이때 조정에서는 인조가 1년을 넘기지 못한 임금이라 하여 문소원에 모시지 말자는 공론을 하고 있던 때, 송재는 상소를 통해 이 일의 부당함을 진언하다가 내침을 당해 전주부윤으로 일하다가 본청에서 54세로 숨을 거뒀다.
정치가 어지러울 때 꼭 할말을 하고 임금의 바른 자세를 역설하면서 자신의 행실에 부끄럼이 없었던 선비, 바로 이런 선비들에 의해 호남사상의 밑뿌리는 튼실해졌던 것이다.
/글=남성숙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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