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힘] ‘若無湖南 是無國家’ 국난 극복 선봉에 서다 ‘전라도 힘’으로 하나되는 세상을 제3부 전라도다움을 키우자 ⑮호남정신 함양 민족수난기 의병활동 주도한 의로운 땅 중앙정부 소외·홀대에도 절의정신 발휘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2013년 05월 06일(월) 00:00

우리 역사에서 전라도의 역할은 국가가 위기에 놓였을 때 여실히 입증됐다. 농성광장에 자리잡은 죽봉 김태원 의병장은 일본이 한반도 강점을 시작한 한말 호남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고창읍과 영광·나주·함평 등의 일본군을 공격한 호남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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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을 것이다.

전라도의 정신과 가치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문구다.

예부터 전라도는 정의(正義)와 충절(忠節)의 고장으로 불렸다. 이는 호남이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국가와 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목숨 걸고 일어난 땅이 바로 전라도인 것이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말의 일제강점에 맞서 분연히 의병을 일으켰고,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민중항쟁 등 민족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렸다. 많은 희생과 고난이 뒤따랐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섰다.

이 같은 정의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전라도가 걸어온 역사의 길에서 그 답을 알 수 있다.

근원은 멀리,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이뤘지만 이 지역은 신라의 지배계층으로부터 소외된 변방이 됐다. 고려에 이르러서는 ‘차령 이남인은 쓰지 말라’는 태조의 ‘훈요십조’에 따라 이 곳 사람들은 중앙정권에 참여할 기회가 박탈됐다. 조선시대에도 초기의 집권은 영남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호남은 정권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유배지나 낙향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소외와 홀대가 천년을 넘게 이어졌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면서 독특한 문화와 정신을 빚어냈다. 그 중에서 전라도인의 기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사림정신(士林精神)이다. 이는 문자 그대로 선비들이 숲을 이룰 정도로 많았고 그들이 독특한 전라도 정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사림은 절의(節義)를 바탕으로 존재한다. 탄생 배경 자체가 충(忠)과 의(義)를 기본으로 한다.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의 충신들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중앙의 명예를 버리고 시골로 내려와 자신의 지조를 지키며 학문을 닦았다. 이런 외곬 선비들은 재야에서 학문의 맥을 형성하며 수많은 인재를 키워냈다. 이들은 충절과 저항, 실천력을 갖춘 지식인들로 자라났다.

실제로, 조선조의 선비문화가 꽃을 피운 중종·인종·명종·선조 때에 이르러 전라도는 ‘인물의 보고(寶庫)’가 된다. 이 시기의 대학자만 대충 꼽아보면, 최부·송흠·박상·양팽손·최산두·송순·임억령·양산보·김인후·유희춘·기대승·정개청·고경명·정철·임제 등 즐비하다.

더욱이 이들의 가치가 빛나는 것은 낙향한 선비로서만 삶을 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절의정신으로 뭉친 전라도의 사림선비들은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붓을 던지고 창을 들고 나선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환갑을 넘기고도 의병의 선두에 선 고경명을 비롯, 김천일·김덕령 등 의병장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이들의 활동을 보고 이순신은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若無湖南 是無國家)이라고 평가했다.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주저하지 않고 일어선 호남선비들의 의로운 정신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가의 존립이 풍전등화에 놓인 한말 때도 의병활동은 전라도인이 주도했다. 1909년 전라도 의병들은 일본군경과 교전회수 및 교전의병수에서 전국대비 7.2%와 60%를 차지할 만큼 타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치열하게 투쟁을 전개했다.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기삼연·기우만·고광순 등을 꼽을 수 있다. 일제는 ‘호남의병들은 신출귀몰하여 군대와 경찰의 두통거리’라고 부를 정도로 골머리를 앓았다.

3·1운동(1919년), 6·10만세운동(1926년)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으로 꼽히는 광주학생운동(1929년)도 전라도 정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학생운동’은 1929년 10월30일 나주역에서 한·일 학생간의 충돌로 촉발된 뒤 11월3일 광주에서 확산돼 이듬해 3월까지 전국에서 전개됐다. 광주학생운동은 3·1운동 이후 일어난 반일학생투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민족운동이었으며 일제식민지통치를 정면으로 부정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처럼 민족이 수난을 당할 때마다 대의정신을 발휘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낸 호남사람들은 현대에 들어서도 그 정신을 잃지 않았다.

1980년 5월엔 총·칼로 무장한 군사독재 정권에 죽음으로 맞서 우리 사회에 민주화의 초석을 깔았다. 열흘의 항쟁기간 동안 치안공백 상황 속에서도 광주시민들은 범죄 한 건 저지르지 않는 놀라운 질서의식을 표출했으며 더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위해 피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는 대동세상을 만들어냈다. 의로움과 정의감이 앞서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