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김천일·고경명 등과 의병 일으켜 전란 평정 기여 광주매일신문·KCTV광주방송·광주시 공동기획 <67>무등산의 재발견-사람을 품은 산 (30)해광 송제민(海狂 宋濟民) 군마·병기·상선 등 지원…지리·정보 전략 돋보여 나라의 원수 갚지 못한 죄인 자처 ‘쓸쓸한’ 삶 마감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2013년 05월 17일(금) 00:00

운암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해광 송제민 선생을 배향한 곳으로 1706년 세워졌으나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돼 사라졌다가 현 위치인 광주 북구 화암동 화암마을로 자리를 옮겨 다시 건립됐다.

이순신 장군의 충무공전서에는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말이 실려있다. 만약 호남이 없었으면 곧바로 나라는 없어졌을 것 이라는 뜻이다. 호남은 한국 역사상 대표적인 구국항쟁의 산실이요 본거지였다. 외세의 침략으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때 호남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떨쳐 일어나 오로지 구국일념 하나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바쳐 싸웠다. 이런 호남인들의 투철한 민족의식과 필사즉생의 항쟁정신은 몽골침략으로 한반도가 유린당할때 삼별초와 함께 벌인 대몽항쟁시부터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호남인들의 구국항쟁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이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약무호남 시무국가 라고 호남의 우국충절을 높이산데서 알 수 있듯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맞아 존망의 기로에서 섰던 국가와 민족을 기사회생시켰던 것은 호남인들의 투쟁이 결정적이었다. 이순신 이억기 휘하의 전라수군이 거둔 한산대첩과 명량대첩 권율이 이끈 1만5천의 호남병력과 김천일의 의병이 거둔 행주대첩 최경회 등 호남의병의 연합작전에 의한 1차 진주대첩과 김천일,고종후, 논개 등 호남의병이 목숨을 바친 2차 진주성 혈전 등 격전의 현장에 호남인들의 선혈과 투혼을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이라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에서 보여준 호남 민중들이 보여준 나라를 위해 충절은 제대로 다 알려졌다고 말하기 힘들다. 공과를 논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은 드러나지 않고 官과 관계 된 인물들이 중심인 것으로 역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등산이 품고 있는 인물 해광 송제민은 정유재란 때의 충신이다.

해광 송제민(1549-1602)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문과를 거쳐 홍문관 정자를 지내다가 윤원형에게 피화되어 요절한 송정황의 아들이다. 공주, 나주, 함평, 영광 등지에서 우거하였다.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구제하라’는 뜻으로 제민(濟民)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며, 성품은 충직하고 효성스러웠다.

해광은 광주 황개에 살면서 이지함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오랫동안 토정을 따라 배워 20세 이전에 성현의 글을 터득하고 천문, 지리, 의술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다. 무등산에서 오랫동안 정좌하여 마침내 낙서법(洛書法), 즉 주역(周易)의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해광 송제민 선생의 영정

그러나 3대를 걸쳐 정치적으로 피화된 가문사적 비애와 속박되기를 싫어하는 호방한 성격 때문에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일찍이 해광은 양명학에 심취하였고, 빈민구휼과 애민사상 고취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영광 앞바다에 제방을 쌓아 해일의 피해를 막는 공사였다. 당시 해일로 영광군 일대의 농토가 큰 피해를 입었는데 해광 송제민이 함평, 무안현 일대의 소나무를 베어 제방공사를 총감독한 것이다. ‘미암일기’등 당시의 기록은 해광의 행동이 그르다는 평을 하고 있으나 조선 사대부 가문의 덕망 있는 유학자로서 경전 연구에만 몰두하지 않고 실사구시를 행하고자 했던 경세사상은 오늘날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때는 그에게 안온하게 편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방비가 허술한 관군은 어이없이 무너지고 그 대신 뜻있는 선비와 지사들이 들고 일어나 왜적과 맞서 싸웠다. 그해 5월 나주에서 건재 김천일이 의병을 일으키자 해광도 끓어오르는 충분을 참지못하고 김천일의 병소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양삼금, 임환, 양삼용, 이광주 등 당대의 쟁쟁한 선비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김천일을 의병대장으로 해광을 종사관으로 추대했다. 그래서 광주, 담양, 순창을 거쳐 북진하는 동안 그 병력은 5천을 헤아리게 되었다.

사기충천한 이 대병력은 강경에서 적을 쳐부수고 승승장구하여 경기도 수원의 독산성에서 적의 대군을 만나 크게 이겼으며, 이로써 수원일대를 다시 찾은 후 충청도에서 의병을 일으킨 조헌과 전주에 머무르고 있는 고경명을 만나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해광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때 조헌은 옥천에 있었으며 각처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킬 것을 호소하였으나 호응하는 자가 없어 실의에 빠져있던 차 해광을 보자 반가워 어쩔줄을 몰라했다. 조헌이 앞장서서 의병모집에 나서자 두사람의 애국심에 찬 설득과 고결한 인품에 감동하여 모여든 장정이 2천여명에 이르렀다. 해광은 모집된 의병을 친우 조헌에게 지휘를 맡기고 고경명을 만나기 위해 금산으로 가다 고경명 장군이 전사하고 내종동생인 김덕홍 마저 순절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리고 생사를 같이 하기를 맹세한 김천일 장군과 형제처럼 친했던 조헌 장군도 전사했다는 소식에 세상을 비관한 나머지 한때 무등산에 입산해 버렸다.

그러나 애국심에 불탄 그는 그냥 무등산속에 칩거할 수는 없었다. 해광은 같은 내종제인 김덕령을 찾아가 기병할 것을 간곡하게 권고했다. 김덕령이 그에 따르기로 결심을 굳히자 손수 제주까지 가서 군마 30여필을 구해오고 병기를 만들어주는 등 출정의 차비를 돕는 한편 도내 각 고을에 격문을 띄워 왜적토벌을 호소했다. 그러나 얼마후 김덕령 장군도 그 훈공을 시기하는 조정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이몽학의 난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옥사하고 말았으니 그 비분이야 어찌했겠는가! 설상가상으로 명나라의 부추김으로 굴욕적인 강화가 시작되자 해광은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그것도 묵살되었다.

운암서원 유허비(雲岩書院遺墟碑)

43세 되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해광 송제민은 금성의 선비인 양산룡, 양산숙 등과 함께 창의사 김천일 장군의 종사관이 되었으며, 또한 전 도사 조헌을 추대하여 좌의병장을 삼고 스스로 종사관이 되어 의병을 모집하여 경기일대와 서울 왜적 축출과 충주와 금산 전투를 통해 국난극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찍이 곤재 정개청은 해광에게 상선을 이순신에게 주어라하여 대선주인 해광은 29척을 이순신 장군에게 주어 이를 병선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으며, 일찍이 상선을 전함으로 개장하여 강화도 연해와 양해도 해전을 이끌었고, 전란 이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의료 기관인 醫局을 개설하여 백성을 구휼하는데 대선주인 해광의 협조가 아니면 상상할 수가 없었다.

송제민은 셋째 딸을 안동 권필에게 시집보냈는데, 사위 권필은 강화에 살면서 장인과 서해와 한강 해상권장악으로 김천일 의병장을 도와 수원에서 왜적의 북진에 예봉을 꺾어 서울과 경기지방 왜적을 토척하여 몽진한 선조임금으로 하여금 창의사 군호를 받게 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송제민의 활약은 일개 장수 이상으로 지리와 밝은 정보, 전략이 돋보였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해광은 김천일, 고경명, 김덕령, 조헌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데 일조하였다. 그후 임진왜란이 끝나자 조정에서 백성들에게 전쟁과정에서 국민들의 고통과 의견을 듣고자 방을 붙여 의견을 수렴하였다. 이때 송제민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잔악한 행위에 복수의 대의를 밝히고 추진할 것을 임금에게 만언소로 광주 부사와 전라 도사 등 方伯에게 올릴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범하는 말이 많다”며 중간에서 저지당하여 임금에게까지 올라가지 못하였다. 그러자 해광은 강호에 몸을 숨기고 ‘海狂’이란 자호를 짓고 몇 년 있다가 병이 위독하자 후사를 외종제인 최상중에게 부탁하고 의관 정제 북향에 무릎 꿇고 별세하니 향년 54세였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8년간의 전란이 끝나자 해광은 무안으로 가서 바닷가에 정자를 짓고 나라에 죄를 지은 죄인을 자처하고 숨어 살다가 파란만장한 짧은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해광은 사후 100여 년만인 1706년(숙종 32) 광주 운암서원에 제향 되었고, 운암서원은 다시 중수가 있었다. 운암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훼철시 훼철되었고, 이후 1933년에는 송제민의 재실 영모재를 화암리에 건립했는데, 현재는 그곳에 운암서원이 복설되었다.

지금 무등산 산장 가는 길 충민사 아래에 위치한 운암서원은 말없이 광주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5월, 슬프면서 찬란한 광주의 5월을 지켜보며 광주가 왜 광주다운가를 조용히 얘기하고 있다.

/글=남성숙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