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불의에 맞서 정의 실천한 ‘광주정신’의 뿌리 광주매일신문·KCTV광주방송·광주시 공동기획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
| 2013년 05월 24일(금)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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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 33주기다. 무등산이 품고 있는 의로움을 민족을 위해 분출한 먼저 가신 영령들을 생각하게 하는 5월이다. 義(의)로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자의 핵심 사상인 仁(인)에 도달하는 길도 결국은 義(의)를 행할 때 가능하다. 보기에는 나약해 보여도 ‘不義(불의)’를 보았을 때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오늘 만나고자 하는 양산숙·양만용 선생도 500년 전 무등산을 바라보며 의로움을 길렀고 오늘날 광주를 상징하는 ‘광주정신’을 일찍 실천하신 분들이다.
▲양산숙(1561-1593)
임진왜란때 진주성 싸움에서 분전하다가 성이 무너지자 남강에 몸을 던져 자결한 분이다.
1561년 광주시 광산구 어룡동 박메마을에서 송천 양응정 선생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열여섯살때 산숙은 아버지가 의주목사로 부임함에 따라 그곳으로 갔다. 만원이라는 곳에 이르렀을때 우연히 그 당시의 대학자인 미암 유희춘을 만나게 되었다. 유희춘은 산숙의 기상이 늠름하고 행동이 진중한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마음이 항상 평온하고 선과 정의를 좋아하겠다’
26세 되던 해 가을 대마도주 다찌바나 야스히로라는 자가 왜의 사신으로 건너와 강화조약을 맺기를 청해왔다. 양산숙은 남원에 사는 양대박을 찾아가서 같이 일본사신의 거동을 살필 것을 약속하고 두 사람은 국왕의 사신처럼 가장하고 영남으로 향하였다. 실은 다찌바나란 자는 강화조약을 맺으러 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방위태세를 살피러온 첩자였다. 그자는 우리나라에 상륙하여 동래부사가 술대접하는 자리에서 일부러 술잔을 떨어뜨려 깨버리는 무례를 저질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양산숙과 양대박은 다찌바나가 일본첩자라는 확신을 가졌다. 얼마후 양산숙과 다찌바나는 동래부사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 석상에서 다찌바나가 대뜸 시비를 걸어왔다. 물론 통역을 통해서였다. ‘당신이 찬 칼을 왜그리 짧으냐?’ 즉 우리나라의 무방비를 비웃은 것이다. ‘그대가 가진 창은 너무 길어서 그대의 운신을 그르칠 것이다’ 그러자 다찌바나는 황급히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상주까지 동행해주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거절하고 고향 광산으로 돌아와서 더욱 무예를 닦고 학문에도 힘을 썼다. 31세되던 임진년에 왜군이 바다를 건너 쳐들어 왔다. 힘을 모아 싸울 생각은 않고 제각기 숨을 곳을 찾느라 거리는 피난민의 물결이 넘쳤다. 양산숙은 고향인 박메마을로 와서 형 산룡 동생 산축과 더불어 목이 메이도록 통곡을 하며 어머니 죽산박씨 앞에 자기의 소신을 아뢰고 나주에 있는 전부사 김천일을 찾아갔다.
김천일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의 집에는 송제민 이광주 서연후등이 모여 있었다. 그해 7월10일 첫번째 금산 싸움에서 고경명 부자 등 수많은 의병이 순절했으며 8월18일에는 두 번째 금산성싸움에서 호서의병장 조헌군 700여명이 모조리 전몰하는 참화를 입었다. 호남으로 밀고 내려오려는 왜병을 소탕하며 그해 7월 경기도 수원 부근까지 올라간 김천일군은 독성산성에 진을 치고 싸웠다. 대장 김천일은 거기에서도 승리를 거두자 그대로 적의 패전병을 추격하자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양산숙은 다음과 같이 반대 했다.
“그 보다도 우리 호남의병들을 모아 진주쪽에 요새를 만들어 호남을 지킵시다. 지금 잔적을 추격해 보았자 서울은 이미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별 성과가 없을 것입니다.”
대장 김천일도 그 주장에 동의했다. 임진년 12월에 들어서자 한성(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왜의 병력은 6만에 이르렀다. 김천일군은 경기도 금령의 적을 무찌르고 많은 무기를 노획한 다음 상소문을 지어 양산숙에게 주어 임금이 있는 행재소로 보냈다. 적병이 우글거리는 천리길을 뚫고 임금이 있는 의주까지 간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양산숙은 장사꾼으로 변장을 하고 6월초에 길을 떴다.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낮에는 산속에서 자고 주로 밤길을 걸었다. 천신만고 끝에 7월 중순 의주에 당도했다. 임금앞에 엎드린 양산숙은 감격에 겨워 울면서 아뢰었다. 조정으로 부터 적을 추격해도 좋다는 명이 내려지자 진주에 입성했다.
최경회 고종후 심우신 장윤 강희보 황진 등이 모여들었다. 왜적도 10만명에 이르는 대병력이었다. 감천일의 병력지원을 요청하는 글을 가지고 양산숙은 6월20일 대구에 있는 명나라의 총병을 찾아갔으나 냉담하게 거절을 당했다. 허탈에 빠진 양산숙은 빈손으로 진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양산숙이 돌아온 다음날부터 전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도와주는 사람없는 외로운 성에서 군사들은 오직 사수만을 외치며 성을 포위한 왜의 10만 대군과 밤낮없는 9일동안의 피 비린내 나는 격전을 치뤘다.
마침내 6월29일 피붓는 장대빗속에 동문석벽이 무너지고 적은 물밀듯 쳐들어왔다. 김천일 등 우리편 장수들을 남쪽 촉석루로 몰렸다. 최후의 시각이 임박해오자 대장 김천일은 아들 상건을 품에 안고 남강 깊은 물에 뛰어들었다. 그에앞서 김천일은 양산숙에게 말했다. 그대는 수영에 능하여 마지막 처지를 면할수 있을것이니 이 자리를 피했다가 다시 거사를 도모하여 이 원수를 갚아주면 하네. 그러나 양산숙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김천일과 같이 물속에 뛰어들어 장렬하게 순절했으니 32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양만용(1598-1651)
1598년 광주시 광산구 어룡동 박메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양산축(양산숙의 동생)은 임진왜란때 형들이 의병으로 모 전장에 나가자 집안일을 도맡았다. 그러나 1597년 정유재란때 가족과 같이 피난길에 올랐다가 무안 삼향포에서 왜적을 만나 힘을 다해 싸운 끝에 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남편이 바다에 뛰어들고 시어머니와 두 동서까지 잇따라 그 뒤를 따르자 양산축의 부인 장흥고씨도 바다에 뛰어 들려는 순간이었다. 고씨부인은 임신 4개월로 시집온지 두 해 만에 첫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노비 두 사람은 한사코 바다에 뛰어들려는 고씨부인을 붙들고 근처 갈대밭에 몸을 숨겼다. 이 고씨부인이 뒷날 양한림으로 이름이 높은 양만용의 어머니이며 그때 뱃속의 아이가 바로 양만용이었다. 고씨부인은 진주성 싸움의 삼장사의 한사람인 준봉 고종후의 따님이니 충렬공 고경명의 손녀이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태어난 양만용은 어릴때부터 총명해서 주위 사람들의 사랑과 촉망을 독차지했다. 어머니 고씨로부터 글을 배운 그는 글을 한번 읽으면 잊은법이 없었다. 만용은 열살 나던해 스승을 찾아 본격적인 학문의 길에 들어섰다. 대학자이자 우국지사인 당시 영광 불갑산 밑에 숨어사는 수은 강항을 찾아갔다. 물론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양육하는데 삶의 보람으로 삼는 어머니 고씨부인의 깊은 배려에서였다.
이후 양만용은 조정으로부터 크게 평가받아 경연의 사관으로 예문관 검열로 2중 3중의 벼슬이 주어졌다. 당시 조정은 인조반정에 가담한 훈구파들이 실권을 쥐고 횡포가 심했다. 인조도 그에 대해 누차 경고를 했지만 그중 김자점은 인조가 임금이 되기 이전 능양군 시절의 약점을 들어 협박하는 등 막무가내였다. 임금까지를 우롱하는 김자점의 행악을 조정 중신들도 미워했지만 그러나 누구하나 그의 방자무도함을 말리지 못하고 그래서 더욱 안하무인이 된 김자점은 드디어는 징병까지를 제마음대로 하는가 하면 조세부역도 제 뜻대로 하였다.
이에 분개한 양만용은 임금을 모시는 어전회의에서 김자점에게 죄를 줄 것을 주장했다. 김자점은 양만용이 자기면전에서 자기에게 죄를 주자는 주장에 눈알을 부라렸다. 그후 며칠도 못가 숙직하는 일을 게을리 했다는 거짓을 꾸며 양만용의 치죄를 들고 나왔다. 그의 죄라면 정의의 편에서 불의를 다스리자고 한 그것밖에는 없었다.
되려 양만용은 곧고 정의로움이 인정받아 예조좌랑으로 승진됐다. 당시 조정에서는 후금에 대한 공물을 바치고 있었는데 이는 정묘호란 때 오랑캐와의 욕된 강화를 맺을 때 그 약조에 따른 것이었다. 양만용은 그러한 조정의 나약성을 지적하고 오량캐에 대해서 필요이상의 예우를 중지하도록 상소를 올렸다. 그로인해 그는 벼슬을 내놓고 냑향하기에 이르렀다.
양만용이 서울을 떠나 고향에 도착하기전에 나라는 또다시 큰 혼란에 휩싸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이다. 양만용과 옥과현감 이흥발은 의병을 모아 투적의 길에 나서기로 결의하고 모병격문을 각 고을에 띄웠다. 이에 순창현감 최온과 전찰방 유접이 합세하고 이흥발의 아우 이기발도 달려왔다. 양만용은 그들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면서 호남각지에 격문을 띄웠다.
양만용과 이기발은 나약한 관군을 제쳐놓고 적을 맞아 싸우기로 했다. 전투에서 청군은 많은 전사자를 내고 병기를 버리고 멀리 도주하고 말았다. 그 뒤 청군은 우리 의병군을 두려워 하고 접전을 피했다. 그러나 왕자가 피난간 강화도가 떨어지고 왕이 피신하고 있는 남한산성이 압박당하자 인조 임금은 성문을 열고 나와 청태종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충성과 용기로 뭉친 우리 호남 의병군들이 달려오고 있는데….
조정의 명에 따라 의병을 해산한 양만용은 청주에서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해 통곡을 하고 귀향길에 올랐다. 그 뒤 양만용은 정언 전라도사 부수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마다하고 나가지 않다가 거듭되는 부름에 못이겨 사헌부집의를 거쳤다. 효종때에 이르러 청풍군수로 있을 때 관폐를 없애는데 전력하면서 빈민구제에 힘쓰다가 재직중 54세로 서거하였다./글=남성숙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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