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비밀병기 ‘화차’ 발명…행주대첩 승리 이끌어 광주매일신문·KCTV광주방송·광주시 공동기획 |
| 2013년 06월 21일(금)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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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은 사람을 낳은 산이다. 무등산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인 인물벨트가 그것을 말해준다. 필자는 얼마전에 ‘무등산 1000년 인물벨트’를 만들어 그 코스를 공개한 바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 한 산을 중심으로 지난 1000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배출된 곳이 있으며, 한 산 아래 “정의”라는 한결같은 주제로 긴긴 세월 인물과 인물이 대물림하며 인권을 주제로 인간띠를 형성해 나라에 이바지해 왔느냐는 물음을 던지며 그 정신사의 맥을 짚어가기 위해 무등산과 벗하며 살아온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1박2일 정도 일정을 잡아 무등산과 인물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무등산 서쪽지역 광산-화순(남쪽)-동쪽(담양)-북쪽(장성)을 삥 돌아 망월동 5·18묘역, 무등산 정상까지 인물탐방 코스는 무등산 인근 지역 마을과 마을, 인물과 인물을 이으며 ‘의(義)’와 ‘예(藝)’, 그리고 ‘학(學)’의 나눔을 연출한 이들의 인간띠를 보여준다.
그 코스는 다음과 같다. 전남도청-금남로-광주 학생독립운동탑-광산 송호영당(박상)-광산 월봉서원(기대승)-광산 등림사(임형수)-광주 포충사(고경명)-광주 운리영당(박광옥)-화순 학포당(양팽손)-화순 물염정(최산두)-담양 독수정(전신민)-담양 식영정(임억령)-담양 소쇄원(양산보)-광주 취가정(김덕령)-광주 환벽당(김윤제)-광주 풍암정(안방준)-담양 수남학구당-담양 관수정-광주 경렬사(정지)-담양 명옥헌(오희도)-담양 상월정(고정주)-담양 모현관(유희춘)-담양 송강정(정철)-담양 면앙정(송순)-장성 필암서원(김인후)-장성 백비탑(박수량)-장성 고산서원(기정진)-장성 봉암서원(변이중)-장성 동학농민혁명기념탑-광주 망월동 5·18성지-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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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코스 안에 있는 장성의 망암 변이중(望庵 邊以中) 선생을 만나보려 한다.
임진왜란 때 지상전에서 위력을 발휘한 화차를 발명, 행주싸움을 승리로 이끈 주역 망암 변이중 선생은 꽤 까다롭고 정갈한 가풍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서인지 어려서 줄곧 ‘신동’ 소리를 들었다.
장성읍에서 황룡당을 따라 서북쪽으로 5리쯤 올라가다 산기슭을 끼고 조금 더 가면 장안리 봉암마을이 있다. 이 마을 중간쯤 단아한 기와집 마당엔 매화·살구나무가 잘 가꿔져 있다. 살구나무 아래서 19세의 변이중 청년은 금방 나주 오씨 딸에게 장가를 들고 이를 계기로 자기 자신을 냉엄하게 돌아보면서 겸허하게 자문을 한다.
‘과연 지금까지 내가 품었던 청운의 꿈들이 한갓 공명에 불과하지는 않는가? 성리학만해도 그렇다. 그 오묘한 섭리들이 잡힐듯 잡힐듯 하면서도 도무지 잡히지 않는다. 이 모두가 결코 허망하지 않을진대 왜 일 확실한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방황하고 있을 때가 아니니 훌륭한 스승을 찾아보자.’
가슴이 답답한 변이중은 당대 훈학으로 이름이 높던 成渾 선생을 찾아 공부한 후 22세 때 율곡을 만난다. 마침 외할머니 병간호를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강릉에 내려간 율곡을 찾아 그 변화를 겪는다. 학문 뿐 아니라 정치관·국가관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그는 23세 나이로 성균관 생원이 돼 명실공히 최고학부에서 공부하게 된다. 학업에 전력하면서 높고 깊은 인생의 경지를 깨닫는 새로운 차원의 공부를 하고 성리학 뿐 아니라 불경까지 두루 섭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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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긴 있지. 일당전단을 막고 왕이 성군이면 말일세. 서경에 蕩蕩平平이 있질 않은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정치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네.”
탕평이라…. 망암은 탕평책을 폭넓게 공부해 30세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리라 다짐하면서 율곡선생의 ‘자경문’을 매일 실천했다.
그러나 1592년 4월17일 급보가 날아든다. 왜적이 침입한 것이다. 선조를 위시한 조정은 아수라장이었다. 뚜렷한 계책도 없이 말싸움만 계속됐다. 망암은 안타까워 혈서로 상소를 올린다.
“… 전하가 피난을 가시려함은 국가의 보존을 도모하려는 뜻이 없는 소치라 봅니다. 전하께서는 반드시 닥칠 재앙과 근심을 통촉하시고 깊이 앞뒤의 인심을 살피사 궁중의 마필과 짚신들을 돌려주신다면 백성들은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왜적은 승승장구 서울까지 진격했다. 망암은 이순신의 해전 승전보를 접한 후 육전에서 왜적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동안 연구해온 무기인 화차를 하루빨리 만드는 길뿐이라고 다짐하고 설계에 들어갔다.
그동안 수십만의 조선사람 목숨을 앗아간 일본 조총을 박살낼 수 있는 것은 화차 뿐이라고 믿고 선조에게 50일간의 휴가를 청했다. 망암은 임금 앞에 화차도설을 폈다.
“이것은 승자통기라 합니다. 평탄한 곳에서는 2인이, 험난한 곳에서는 4인이 끌 수 있사온데 산을 넘고 물을 건널 수 있으며 수레에 튼튼한 나무와 쇠로 장갑을 하고 3면 40경의 총구를 내어 구멍마다 승자통으로 무장되옵니다.”
고향 장성에 내려온 망암은 장성현감 李貴와 상의하여 화차 제작의 시급함을 설명한 후 장성군 삼서면 송현리 공평부락 앞 안산과 북이면 조양리 봉학산 일대에서 화차를 제작했다. 완성된 화차는 보통 수레와 달리 바퀴가 커서 차체를 받치는 축이 높기 때문에 발사각도를 0도에서 45도까지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으며 수레 위에 장갑을 씌운 승자통기·총통기·신기전기 등의 화차용 무기를 적절히 거치하여 사용할 수 있게 돼 있었다.
그때 권율 장군은 수원의 독성산성에 들어가 적을 기다리면서 왜적의 공격을 수차례 받고 있었다. 그때마다 이 화차를 이용, 적을 배후에서 공격, 위기를 모면케 해준 이가 망암이며 우리가 잘 아는 행주대첩도 화차의 승리였다.
흔히 의로운 전라도 인물의 특징이 인문학적이며 저항적이라는 인상을 갖기 쉽다. 그러나 오늘 만나면 망암 변이중 선생의 일생을 보았듯이 과학적이며 현실 통찰력이 강한 인물도 많았다.
우리가 전라도 인물을 보다 깊게 알고 연구해야 할 이유다.
/글=남성숙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