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찻물 끓이듯 삶을 꾸리고 은은한 다향처럼 세상을 보다 광주매일신문·KCTV광주방송·광주시 공동기획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
| 2013년 10월 04일(금)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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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의 깊은 멋 중에 하나는 산 중턱에 차밭이 있다는 점이다. 호남은 학포 양팽손, 공재 윤두서, 소치 허련, 미산 허영, 남농 허건, 의재 허백련으로 이어지는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산실이다. 이들의 예술세계와 차(茶)는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 자연주의에 터전하며, 차와 함께 예술세계를 맑게 하고 깊게 했다.
남종화의 맥을 이었던 의재 허백련은 광주 무등산에서 한 평생 그림과 차를 함께 했다. 일제시기와 광복 이후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맑은 정신과 민족혼을 지키고자 했다. 의재가 무등산 중턱에 가꾸었던 차 밭에선 ‘춘설차’가 오롯하게 차향(茶香)을 전하고 있다.
차라고 하면 초의 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우리나라 차를 중흥시킨 사람이다.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서 선향(禪香)을 피우며,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추사 김정희와 교유한 승려였다. 그뿐인가. 소치 허련이 일지암으로 초의를 찾아와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초의는 공재 윤두서를 비롯한 해남 윤씨의 3대 화첩을 빌려다 주고, 추사에게 허련을 소개했다. 그래서 추사는 허련에게 ‘소치(小癡)’라는 호를 내렸다. 화연(畵緣)이 아닐 수 없다.
무등산 춘설차 녹차나무는 동백나무과의 일종으로서 원산지는 고대 중국과 인도라고 일러지고 있는데 이 녹차가 삼국사기(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선덕여왕(AD 632-647) 시절 차씨를 중국에서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에 처음 심은 기록이 있고 그 뒤 흥덕왕 3년(AD828)엔 왕명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대대적으로 차 씨앗을 가져다 심은 기록이 있으며 조선 왕조 실록중 세종실록편을 보면 당시에 각 도 군 현에서 올리는 토산품 중 차를 진상한 내역이 있는데 그 범위를 보면 전라도 28개군현과 경상도 8개군현에서 차를 생산하여 공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우리 전통차는 신라 사신 김대렴이 차종자를 지리산에 심어 보급하기 시작하였고 고려시대 이후 각 명절때나 차례 등에 차가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 강진에서 차를 가꾸었고 조선 후기 해남 대둔사 일지암의 초의선사께서 ‘동다송’과 ‘다신전’을 남김으로써 차문화의 전기를 마련하였고 현대에는 효당 최범술 선생과 응송스님, 의재 선생등에 의해 차문화가 널리 보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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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던 제자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병든 나를 찾아와 준다. 그들은 춘설헌 남향방에 누운 나를 보고, 나는 그들에게 춘설차를 한 잔 권한다. 나는 차를 마시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내 한평생이 춘설차 한 모금만큼이나 향기로웠던가를 생각하고 얼굴을 붉히곤 한다.’
‘내 인생이 춘설차 한 모금만큼이나 향기로웠던가?’
참으로 대가다운 기품이 느껴지는 일갈(一喝)이다.
‘차를 마시면 흥하고 술을 마시면 망한다’며 ‘음다흥국’이라며 초의선사 만큼이다 차사랑에 투신한 의재는 1946년 광주 무등산에 일본인 오다끼 이찌조가 경영하다 버려둔 무등다원(無等茶園)을 정부로부터 무등산의 차밭을 사들여 삼애다원(三愛茶園)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춘설차(春雪茶)생산 다문화 확산에 기여한다.
‘조선의 차와 일본의 차가 잎의 생김새가 달라 조선차의 질이 떨어질 것 같이 생각하고 있지만 차는 조선이 본고장이라 할 수 있다’고 역설한 일화가 유명하다. 춘설차(春雪茶)는 1993년 광주특산품 1호로 지정되었다.
오늘 무등산과 연계해 만날 분은 무등산 춘설차의 정신적 지주 초의(草衣)선사다.
“과일이나 열매만을 먹고 풀옷차림에도 마음은 달처럼 밝다. 한평생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한이 없다.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푸른산, 초록빛 산, 이것이 내집이지요.”
찻물 끓이듯 정성스럽게 삶을 꾸리고 은은한 다향처럼 세속을 넓게 들여다 본 큰 스님 초의.
호남사상을 따지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몇백년동안 계속된 억불정책으로 쇠잔해가던 조선 말기에 태어나 한시대를 풍미한 초의선사는 두륜산 대흥사의 마지막 13대 종사로서 혼신의 불꽃을 피운 고승이다.
초의는 조선 정조 10년(1786) 무안군 삼향면에서 출생하였으며 성은 張씨 법명은 意恂, 자는 中學이다. 그의 가계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없다. 다만 어머니가 큰 별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서 그를 잉태해 낳았다고 한다. 어려서 동네 아이들을 따라 마을 앞 냇가에서 놀았다가 물에 빠졌으나 지나가던 인근 스님에 의해 구출돼 겨우 살아났다. 그것은 집안 식구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영민했던 어린 소년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게 된다. 이 사건으로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암자에 살고 있던 그 스님은 생명의 은인이로 모셔지고 초의의 집안과는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된다. 출가 동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열다섯살 때 스님의 권유로 떠나 남평 운홍사 벽봉 스님에 의해 출가를 했다.
초의는 남평에서 행자생활을 하다 절을 나와 해남 대흥사로 가던 도중 월출산을 보고 불현듯 정산에 오른다. 그는 그곳 산세의 기이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다가 마침 바다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맺혔던 가슴이 툭 터진다. 대흥사에서 완호 대사를 계사로 구족계를 받고 초의라는 당호를 얻는다. 여기서 불교의 삼장을 수학하고 대교 과정을 마치게 된다. 이후 운수행각으로 여러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정진해 經·律·論 모두에 통달하였다.
스물두살이 되자 잠시 화순 쌍봉사로 옮겨 금담 선사로부터 선을 배우며 토굴에서 정진 수행하다가 다시 대흥사로 돌아와 연담 선사께 나아간다. 이 해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다산 정약용을 대면하게 된다. 초의는 자신보다 25세 연상인 다산에게서 유학과 시문을 배우면서 함께 월출산 백운동에 들어가 월출산의 비경을 화폭에 담아 ‘백운도’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또 30세 때에는 처음으로 상경하여 완당 김정희를 만난다. 성밖 청량사에 머물자 장안의 명사들이 몰려들어 詩會와 茶會가 성황을 이뤘다. 당시 초의가 교유한 인사들은 당대의 일급 지식인 그룹에 속하는 명사들로 정약용의 자제들, 추사 김정희와 그 형제들, 연천 홍석주의 형제, 신관호, 권돈인 등과 교류, 정신세계의 폭과 깊이를 더해갔다.
특히 화가로서 초의는 한국 회화사에서 큰 일을 한다. 초의는 낭암스님으로부터 탱화라고 불리는 불화를 전수받으면서부터 그림을 시작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갔다. 현재 대항사에 있는 탱화와 전국 곳곳에 있는 사찰의 많은 불화가 초의의 작품이거나 그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수준을 파악하고도 남음이 있다.
50세가 된 초의가 일지암에 있을 때 진도에 살고 있는 소치 허유가 선사를 찾아와 그림을 배우니 초의는 몸소 가르치면서 추사에게 보내 사사케하고 당시 많은 서화 묵객들과 교유시켜 화가로서 대성하게 한다.
마침내 小痴는 헌종 임금께 나아가 그림을 그려 총애를 한몸에 받는다. 남종화의 종주 소치는 이후 직계 자손인 미산, 남농, 임전 등으로 남종화를 뿌리내리니 초의는 실질적인 남종화의 시원인 셈이다.
어느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등나무와 담쟁이덩굴 그늘 속의 두륜산 정수리에 작은 암자를 짓고 현판을 ‘一枝’라 하더니 홀로 40년 동안 두문불출하다 입적했다. 1866년 고종 3년. 세수 81년. 법랍 65년./글=남성숙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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