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어느 멋진 날에~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3년 10월 31일(목) 00:00

10월 마지막 날이다. 어제부터 ‘잊혀진 계절’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에 마지막밤을~’이란 가사 때문에 언제부턴가 10월의 마지막밤을 기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냥 보낼 수 없다며 한 잔 하거나 억지로 회합을 갖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벌써 낙엽의 계절이다. 올 한 해도 두 달 남았다. 시간의 허허로움이 느껴진다. 가을을 인생에 비유하자면 쓸쓸함, 우울, 슬픔 등으로 표현되어지는 중년기에서 말년기로 넘어가는 시기가 아닐까. 　석가모니는 도저히 벗어날길 없는 생노병사(生老病死)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오욕칠정(五慾七情)속에 갇힌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부터 하라 했다. 순리대로 살아도 100년 다 채우지 못할 인간임에도 마치 천년을 기약할 것처럼 욕심 부려 살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 보면 ‘순리’란게 존재하나 싶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정치권은 물론 국가정보원, 검찰, 금융감독원, 국세청, 경찰 할 것 없이 모두가 상처투성이, 만신창이가 됐다. 구정물을 뒤집어썼다. 한심하다. 남의 나라에서 손가락질할 정도다. 상식을 뛰어넘는 짓 때문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너무 크다. 국민은 어지럽다. 편두통이 생길 지경이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이 사라졌다. 국민의 짜증수치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이럴 때 가장 절실한 것이 정치의 정치력, 지혜다. 그러나 아직도 구세주 같은 대승적인 정치력을 볼 수 없다. 사람마다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 다르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정치인의 자질은 첫째도 둘째도 역사인식에 의한 시대정신, 투철한 국가관이다.

19세기 미국 신학자 클라크(James Clarke)는 정치인을 정치가(statesman)와 정치꾼으로 불려지는 정략가(politician)로 나누었다. 정략가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권력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은 오로지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 정권을 잡기 위한 갖가지 이슈를 만들어 ‘밀어내기(push)’와 ‘끌어당기기 (pull)’를 통해 편을 가르고 차기 선거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 불리기에 몰입한다. 술 중독에 걸리면 음주가 생활을 위한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 버리듯, 권력 중독에 걸리면 모든 것을 권력 획득에 초점을 맞춘다. 패거리나 시정잡배들처럼 옳고 그름은 적이냐 동지냐에 따라 결정되고 사고는 흑백 논리의 감옥에 갇혀 버리게 된다. 순수를 잃어버리고 늘 저의가 무엇인지 추측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여 자기 합리화를 꾀한다. 권력 중독증에 걸린 사회에 사는 정치 소비자, 국민은 늘 정치 중독자들을 욕하면서도 정치 게임을 즐기며 자신도 모르게 정치 논리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2013년 10월 마지막날에 서서 바라보는 대한민국 정치는 정략가가 판을 치는 권력중독증세의 절정판이다. 그 판을 보고 있노라면 넋이 풀어져서 할 말을 잃게 한다.

무등산 정상에서 발원해 광주천까지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라. 그 흐름이 결코 요란스럽지 않다. 그러나 제 가야 할 길을 향해 부단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 길이 막히게 되면 새로운 모색을 강구하거나 또는 장애물을 넘어 설 때를 기다릴 줄 안다. 그렇다고 근본철학이 바뀌는 일은 없다. 다만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성취해낸다. 이것이 물이 갖는 연속성이며 현상에 대한 보다 겸손하고 따뜻한 시각이다. 아울러 물은 정직하다. 그 깊이에 따라 가장 알맞은 것을 찾아 내 이를 사용할 줄 안다. 꽃잎을 띄울 곳에 나룻배를 놓으려 한다거나 또는 나룻배를 띄워야 할 곳에 항공모함을 운항하려 드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항공모함이 제 아무리 좋고 또 성능이 뛰어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이를 받쳐 줄 수 있는 물의 깊이를 고려할 줄 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마지막 날에, 무등산 증심사 계곡에서 낙엽 한 장 띄우는 심정으로 ‘10월의 기도’를 떠올린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빈 마음을 활짝 열게 하시며, 아픔이 따르는 삶이라도 그 안에 좋은 것만 생각나게 하시고, 나보다 남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주소서. 10월에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더욱 넓은 마음으로 서로 도와가며 조금은 넉넉한 인정으로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하소서.’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