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고 고맙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3년 11월 07일(목) 00:00

오늘은 2014학년도 수능 시험일이다. 65만여명의 수험생이 시험을 치른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시험일이 국가 대사인 이유는 직장인의 출근 시간이 조정되고, 군과 경찰, 공무원과 시민사회단체까지 수험생 관리에 동원되는걸 보면 알 수 있다. 듣기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소음이 통제되고 항공기 이착륙도 금지된다. 500명의 출제위원과 200명의 지원인력이 한 달이 넘게 외부와 단절된 채 문제를 출제한다. 한해 수능을 치르기 위해 소요되는 예산도 330억 원이나 된다. 모의 수능 실시비용 및 수능 관련 정책개발을 위한 인력과 예산,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하면 가히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1년에 한 번 있는 수능에 수험생은 물론 사회 모두가 ‘올인’이다.

우리 국민 모두 자식은 웬만하면 모두 대학에 보내고 이왕이면 좋은 대학에 보내고픈 열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막 태어나서 부터 19살까지 이 수능을 위해 달려온 학생들의 예민함은 이루 말로다 할 수 없다. 그래서 수능관리가 잘못되면 난리가 난다. 수능 관리가 잘못되면 교육부 장관이나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옷을 벗어야 한다. 그간 수능문제 유출과 시험문제 오류 논란, 난이도 조절 실패 등으로 옷을 벗은 장관이 있는가 하면 평가원장의 사과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매년 수능 혼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아이들을 평가할 방법이 수능 밖에 없을까? 이다. 지난 80년대 초 예비고사 폐지 이후, 학생들의 대입 입시 제도가 학력고사로 전환되면서 가장 큰 문제로 이슈가 되었던 부분은 ‘이해력보다는 암기식 위주의 테스트’와 ‘단 한번의 대학 지원’에 있었다. 당시에 100일 작전, 4당 5락을 넘어 3당 4락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면서 이른바 ‘찍기 과외’를 통해 단기간에 점수 향상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당시 학생들은 일생일대의 지원 기회를 단 1~2번 밖에 갖지 못해 원서접수 마감일 막판까지 해당 지원 대학교 입시 창구에서 큰 혼선과 혼란을 겪기도 했다. 필자가 대학을 갈 때는 12월 학력고사 시행 전 주요 학교의 학과별 경쟁률과 시험 당일 현장은 지금 학생들에겐 생소할 정도로 주요 메인 뉴스의 톱 기사거리가 되었다.

그동안 수능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논술고사, 대학별고사 등의 제도가 등장하다 사라지기도 했으며, 수시 전형, 특차, 정시 전형 등 다양한 입시 전형이 나타나며 학생들을 좀 더 다양하게 선발하겠다는 노력도 있었다. 사실 수능은 지엽적 암기, 무조건적인 반복 학습을 탈피해서 학생들의 사고력, 이해력을 측정하기 위해 전환된 입시 제도라고는 하나 학생들이 실제 피부로 느끼는 시험 제도에 대한 차이는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다. 특히, 학교 교육이 여전히 창의력 있는 교육으로 전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능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에 가깝다. 사실, 객관식 위주의 시험으로 학생들의 이해력과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낡은 패러다임이다.

사실 어른이 되고 보면, 공부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부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은데 학창시절 성적이 매우 뛰어났던 친구들 중 기대 이하의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음에 놀라고, 공부와는 담쌓았던 사고뭉치들이 오늘날 부와 명예는 물론 왕성한 활동과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모습에 또 놀란다.

수능 날에 수능 무용론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여러 학원을 전전긍긍하며 벽돌 속에 갇혀 있다 지친 모습으로 밤늦게 귀가했던 안쓰러운 아이들이 수능이라는 오늘의 관문을 잘 넘기 바란다.

안쓰러운 아이들이 수능을 보는 시간에 어른들은 우리 교육이 배우는 내용과 방법, 치르는 시험, 추구하는 방향, 겪는 과정과 경험을 더 많이, 더 깊이, 더 넓게 살리며 다양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숙고해봐야 한다. 더 깊은 학문을 추구하기 위해서 대학에 가야 하는 사람은 가게하고, 진로정체성이 모호한 사람은, 더 모험하고, 체험하게 하고. 더 경험이 필요한 사람은 더 많은 여행을 통해 경험하게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취직하고 싶은 사람은 취직하도록 돕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수능은 과정에 불과하다. 수능 끝난 이후에 우리는 그 젊은이들에게 인생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는 학생이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생각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때문이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