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인후(仁厚)한 풍속 /지봉엽 ㈔한국학호남진흥원 전임연구원

2013년 11월 25일(월) 00:00

전라도는 자연환경도 아름답고 인심도 좋다.

서해, 남해의 바다를 끼고 있으며, 만경강, 영산강, 섬진강 등 큰 강이 펼쳐진 넓은 평야 지역인지라 먹거리가 풍부한 곡창지대로서 백성이 오래도록 편히 살만한 고장이다.

호남인의 심성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與地圖書)’에 그 기록이 많이 보이고 있는데, 인심효후(人心酵厚), 순후지풍(淳厚之風), 거인순박(居人淳朴) 등의 어구들이 많이 나온다. 이는 곧 순후하고 순박한 심성, 즉 ‘숫한 심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숫하다’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인심이 순후할 뿐 아니라 온후하고 정이 많으며 푸짐하고 넉넉하다는 뜻이다.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잡문 기이에는 타 지역 사람의 그릇된 호남 인식을 교정하는 대목이 있다. 북방 사람이 나를 위해 슬퍼하며 걱정하여 말하기를, “호남(湖南)의 풍속이 교활하고 각박한데 탐진(耽津)이 더욱 극심하다. 그대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기에, 내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허! 말을 어찌 그리 잘못하는가. 탐진 백성들은, 벼베기가 끝나면 농토가 없는 가난한 백성들이 곧바로 그 이웃 사람의 논을 경작하기를 마치 자기 전토처럼 하여 보리를 심는다. 내 말이 잘하는 일이다. 보리가 익으면 반으로 나누느냐고 하니, 아니라고 한다. 부세를 낼 때 그 반을 부담하느냐고 하니,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보리가 익으면 경작자가 다 먹는다. 전주(田主)와 나누지도 않고 또한 부세를 돕지도 않는다. 그러면 벼를 심을 때에 인력으로 보답하느냐고 하니, 그 역시 아니라고 한다. 지력(地力)이 노폐되지 않느냐고 하니, 왜 그렇지 않겠느냐고 한다. 보리를 미처 베어내지 못하고 비가 내려 모심기를 해야 할 경우 서로 피해가 없느냐고 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느냐고 대답한다. 아아, 참으로 인후한 풍속이다. 이들은 무회씨(無懷氏)의 백성인가, 아니면 갈천씨(葛天氏)의 백성인가. 관가에서 체문(帖文)을 발부하여 세전을 받아들일 때에는 매호 12전을 물려도 들어주고 매호 25전을 물려도 들어준다. 그리고 오늘 징수하고 내일 또 징수하여도 들어주어 그저 내라는 대로 들어주며 그 용처를 묻지 않는다. 이래도 오히려 교활하고 각박하다 하겠는가. 살피기를 공평한 눈으로 하고 평가하기를 공정한 말로 한다면 그 누가 인(仁)이 되고 그 누가 적(賊)이 되겠는가.”

이처럼 어질고 후덕한 호남의 백성들이 있었기에 그가 후세의 목민관에게 애민의 지침서로 목민심서를 남겨 호남 백성에게 화답하지 않았나 미루어 짐작해 본다.

/지봉엽 ㈔한국학호남진흥원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