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시대, 향토문화 계승·발전 정책 펼쳐야 광주매일신문 집중제안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하자 <5>자치단체의 역할 지역학 연구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인식 민·관·학 연계 호남권 위상 복권전략 시급

2013년 11월 25일(월) 00:00

호남 지역의 인문·자연을 보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지역학연구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들이 중장기적 혜안을 가지고 정책 입안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지난 10월30일 나주시청에서 열렸던 ‘나주 팔관회 현대적 재조명’ 학술행사 모습.

21세기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민국에는 매일 어디선가 축제가 열리고 있다. 문화관광산업 시대를 상징하는 축제의 구성 요소마다 어김없이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동원하여 뭔가 ‘꺼리’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치 역사드라마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사실을 왜곡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곱지 않은 모습들이 축제 여기저기에 드러나곤 한다.

알맹이가 없어 일회성으로 사라져 버리는 축제들도 허다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역 이야기가 경쟁력이자 상품’이라고 성공 요인을 말한다. 문화관광산업의 성공 역시 향토의 고유함을 드러낼 지역학 연구가 탄탄한 밑받침이 돼야 한다.

◇우리 강산의 가치 판단 소홀=우리 지역의 인문·자연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지역학연구 체계가 없어 안타깝다. 진도에는 34회에 걸쳐 연인원 930만명의 내국인과 50만명의 외국인이 방문했던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있다.

항상 그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신기하지도 자랑스럽지도 않은 일상으로 여겼던 바닷길을 세상에 알린 것은 1975년 진돗개 조사차 방문한 ‘피에르 랑디’라는 역사·지리학 박사(전 프랑스대사) 때문이었다.

그는 프랑스에 돌아가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 소개했고,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론사가 취재에 나섰으며, 세계 관광객들이 애호하고 난 뒤에야 국가 명승으로 지정하고 보호하고 축제까지 연다.

우리 강산의 가치를 스스로 알지 못했던 부끄러움은 산업화의 ‘빵 키우기’ 시대 탓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지만, 문화관광산업에 지역 발전의 비전을 걸고 있는 현재에도, 대학이 사학과를 폐과했다는 소식 뿐 전문적인 지역학 연구 체계가 없음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뒤늦게 부각된 나주 팔관회=우리는 전문가와 학자들에게 우리의 향토에 존재하는 인문·자연 현상의 가치를 발견해 세상에 널리 알려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그저 연구할 따름이고, 행정기관은 학자의 연구 결과물인 논문을 색인할 여념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고려시대 팔관회는 세계 각국의 사절단을 초청해 온나라 백성들과 함께하는 국가행사였다. 또 아라비아, 송나라 등 무역상의 독특한 상품을 사고파는 국제 문화엑스포였으며, 민관거버넌스 축제의 전형이었다는 평가다. 따라서 학계와 전문가들은 이를 현대에 재창조 한다면 국제문화교류의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고려 팔관회가 나주에서 열렸음’을 고증해 낸 변동명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0월 30일 나주시청에서 열린 ‘나주 팔관회 현대적 재조명’ 학술행사의 감회를 밝히면서, 역사문화도시 나주의 자랑으로 내세울 만한 팔관회의 가치를 10년 넘게 연구해 제시했으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21세기 문화국가시대를 대비하는 중요한 기반은 학계 등 전문가의 연구와 행정라인 실무가 유기적 연계 관계를 형성하는 체계화에 있다할 것이다.

동아시아 지도를 거꾸로 보면 세계로 뻗어나갈 서남해안 시대가 눈에 보인다. 21세기 문화국가 수도로서 호남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

◇문화 존중 사회적 분위기 필요=문화국가시대의 핵심 상품인 고유문화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정책 입안이 절실하다. 우리는 ‘기무치’가 국제표준명칭으로 등록됐다는 것을 알고 분개 했었다. 분개에 앞서야 할 것은 반성·성찰이다.

발효과정 연구 등 과학적 검증에 관한 학계의 노력, 민간과 기업의 김치산업 투자, 언론의 정보 제공과 소비자인 국민의 애호 등 공동체 성원 모두의 노력이 모두 성찰돼야 한다.

최근 광주시의회의 김치 조례 움직임은 지속적 성찰을 통해 발전 방향을 모색할 틀을 갖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일이다. 아직도 전통김치 재료인 배추의 원형 씨앗을 가진 보유자는 세상에 공개를 꺼린다.

왕가의 감기 예방 음식이었던 배추는 키가 180㎝에 달했는데, 대대로 원형의 배추종자를 유지하고 있는 종자보유자는 혼자 힘으로 학자, 행정기관을 두루 연결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세상에 알리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

사업성 흥행성에 밀려 원형 훼손 및 모방 우려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어찌 김치 원형 뿐이겠는가? 고유한 우리문화를 존중하고 보존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는 자치단체의 정책과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다시 다가오는 호남의 시대=다시 호남의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나라 농경사회에서 호남의 위상은 괄목할만하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호남은 우리나라 남쪽의 울타리로 산천의 경계가 뛰어나고 물산이 풍요로워 온나라가 먹고 입는 자원의 절반을 호남에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화에 의존했던 일정기간 동안 빈약한 제조업 자원을 바탕으로 수도권과 동남해안 중심의 제조업 경제를 유지하다 보니 기형적인 대외의존형 경제구조의 덫에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이제 문화국가 전략을 정립해 국가백년지계를 다시 세운다면 고유문화를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호남의 위상을 복권해야 한다.

동아시아 지도를 거꾸로 보면 세계로 뻗어나갈 서남해안시대가 눈에 보인다. 해상무역왕 장보고의 활약 무대, 해상제국 백제의 중흥 무대, 고려·조선의 건국 기반, 국난극복의 충절 무대, 민주국가 발전의 도약 무대 등 면면히 이어온 호남의 전통이 문화교류의 핵심 콘텐츠다.

이러한 호남이 21세기에 이르러 문화국가 ‘수도’로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사로 진출하는 동방의 등불이 되도록 호남의 지도자들이 중장기적 혜안을 가지고 정책 입안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하도섭 ㈔한국학호남진흥원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