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힐링명소] 세월이 품어낸 墨의 향기…소치와 구름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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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1월 28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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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찾아간 날은 가을이 마지막에 걸려있었다. 들어서니 물안개가 자욱한데 앞에는 노적봉이요, 뒤로는 문필봉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그렇구나! 바로 그림이구나!’ 싶은 것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진도에 가면 세 가지 자랑을 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첫째가 글씨, 둘째가 그림, 세 번째가 노래 가락이다. 그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전통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許鍊·1808-1893)이 거처하던 운림산방(雲林山房)에서 비롯됐다 한다. 의신면 첨찰산 기슭에 자리 잡은 운림산방은 아침저녁으로 운무가 숲을 이루고 그 흐르는 모습이 그윽하고 유현한 곳으로 우리나라 전통 남종화의 산실이다.
만추의 계절, 운림산방에도 첨찰산 허리를 감고 짙어가던 가을이 내려와 앉았다. 붉기도 하고 노오랗기도 한 단풍이 운림지에 얼굴을 들이밀고 수줍은 듯 팔랑인다. 고즈넉한 가을 끝자락의 풍경이 더없이 멋스럽다.
운림산방 앞 너른 운림지엔 수련이 완연한 가을빛을 받아 만개한 모습으로 둥둥 떠 있다. 연못 중앙 섬에는 붉은 루즈 지운 베롱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그 모습이 흡사 다리를 꼬고 앉은 여인 같아 보인다. 그 때문인지 새들이 바람을 데려온다. 바람은 베롱나무에 앉아 연못 속의 수련과 눈맞추더니 배시시 웃는다. 그 옛날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생각이 난다. 아~! 가만 들여다만 봐도 아름답고 또한 풍광도 빼어나다.
매번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이 와도 다니라고 놓아둔 잔디 위를 꽃만이 길을 가는구나! 할 만큼 산중에 자리해 푸른 이끼만이 벗이 되어주고 바라다 보이는 곳은 화폭으로 화답을 했던 곳, 운림산방엔 소치 그가 기거하던 유서깊은 고택인 초가가 자리한다. 초가의 이름은 운림각이고 거실은 묵의헌이라 한다.
‘사립문에는 사람 발자국 소리가 없고 소나무 그림자는 길고 짧으며, 새소리는 오르내려 낮잠도 만족한다. 이윽고 샘물 길어와 솔가지 주어다 차를 달여 마신다.’ 소치 허련의 글이다.
운림지와 운림산방 그리고 첨찰산으로 이어지는 전경은 그윽하고 유현하다. 그러나 운림산방의 툇마루에 앉아 운림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소치의 시간은 홀로 남은 유제마냥 소연하고 고적하다.
스승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련
소치 허련은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으로 내려온다. 조선시대 전통 남종화의 산실인 운림산방은 그가 말년에 한양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이곳에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곳이다. 그의 나이 49세 때이고,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던 소치는 두륜산방 초의대사 밑에서 수학했고 33세에는 추사 김정희에게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받았다. 40세 되던 해에는 낙선재에서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등 흥선대원군, 권돈인 등 권문세가들과 글을 짓고 그림 그리기를 했다. 추사는 제자 허련의 능력이 탁월함을 알아주고 중국 원나라 4대화가의 한사람인 대치 황공망과 견줄만 하다 여겨 ‘소치’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압록강 이남에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화맥의 산실…살아있는 미술관
운림산방 주변에는 전통의 멋이 잘 드러난 소치 허련 선생의 소치 기념관과 진도 역사관이 있다. 소치 기념관은 살아있는 미술관으로 통하며 그에서부터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임전 허림, 의재 허백련, 그리고 현재로 이어져 오는 화맥의 산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렇듯 소치 선생에게서 시작된 운림산방 특유의 화풍은 그의 제자들에게 전해져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조선시대 대표적인 전통 남종화의 대가 소치가 여생을 보냈던 운림산방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가 직계의 화맥이 200여년간 5대째 이어지고 있는 곳으로 국가지정 명승 제80호로 지정돼 있다.
남도예술은행 토요경매 인기몰이
진도는 그야말로 예향이다. 철마다 바뀌는 옷을 입은 작은 섬들은 보석처럼 점점이 박혀 한 폭의 산수화가 되고, 섬 안에서 운무는 바다로 나가 해무가 되고 밤마다 뜨겁게 타오르는 석양빛은 바다위에서 꽃처럼 피어오른다. 이렇듯 가만있어도 먹으로 휙 그어 수묵화를 그리는 듯하니, 뉘라고 손끝에 붓이 감기지 아니하겠는가. 어느 가슴엔들 꽃이 피지 않겠는가.
소전미술관은 진도에서 태어난 소전 손재형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미술관이다. 소전은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란 작품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가져가 소장하고 있는 것을 되찾은 분이다. 소전선생은 세한도를 찾기 위해 소장가의 집 가까이 숙소를 얻고 돌려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 노력이 얼마나 가상했는지, 소장가가 그림을 내어주며 “이 그림의 주인은 당신인 것 같소”라고 할 정도였다.
운림산방에선 2006년 8월부터 ‘토요경매’라는 미술시장이 열리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의 신인·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경매하는 공간으로 관광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진도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토요그림경매는 지역 미술인들과 미술 애호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면서 낙찰 작품수도 지난 2006년 79점에서 2011년 327점, 2012년 393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물론 참여하는 관광객들도 작품을 구입할 수 있어 애호가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 지난 10일 진도 운림산방에서 열린 토요그림경매 7주년 기념행사에 서울·경기·대전·충북·대구·경남 등지에서 90여 명의 미술 애호가들이 경매에 참여해 한국화 등 작품 26점을 구입, 74.3%의 낙찰률을 기록했다. 특이할 만한 점은 경매수익금을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데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정연우 광주매일신문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