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말’ 살리자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3년 12월 05일(목) 00:00

최근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전라도 사투리 욕설이 ‘방송언어’ 위반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행정지도 제재를 받았다.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이 드라마에서 영남출신과 호남출신 서울 유학생이 사투리로 싸우는 장면에서 ‘눈깔 확 뽑아다가 깍두기랑 오독오독 씹어볼랑까’ 등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필자는 욕을 문제 삼았다면 수긍할 수 있으나 전라도 사투리를 문제 삼았다면 반대다. ‘응답하라 1994’의 전라도 사투리 대사는 정말 반갑고 고맙다. ‘창자를 빼 갖고 젓갈을 담가버릴랑께’ ‘내가 오늘 그 아가리에 콱 청산가리 부어불랑께’ ‘염병하고 자빠졌네’등 중앙방송에서는 도저히 구경할 수 없었던 제대로 된 전라도 사투리 버전이 신선하다.

이 드라마에서는 강원도 제주도 경상도 등 각 지역 사투리가 모두 등장한다. 실제로 전국의 인구를 따져 봤을 때 사투리를 쓰는 인구가 더 많음에도 TV에 나오는 인물들은 거의 다 서울말을 써 왔다. 또한 성공한 인물, 식자층은 모두 서울말을 쓰는 것처럼 묘사돼 마치 서울말이 성공이나 지적 수준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인식이 된 것도 사실이다. 전라도 사투리의 경우 지금까지 영화나 TV에서 보인 모습들은 대부분 조폭의 언어, 코미디의 소재 정도였다.

간혹 드라마에서는 감초 역할로 사투리를 쓰는 인물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드라마 주인공들이 대거 사투리를 사용한 적은 정치드라마 외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말은 육체에 가장 밀착된 기술이다. 몸뚱이가 우리 인생 그 자체를 감당하듯 말은 주변 세계와 맺는 전반적인 관계가 운명처럼 각인된다. 그런데도 광주·전남에서도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전라도 지역에서 쓰는 단어나 용례를 채집하고 보존하는 작업은 특이한 일로 치부된다. 마치 영어처럼 표준어 구사하는 능력이 이 시대의 주요한 상징처럼 됐다.

일본의 니시카와 나가오(西川長夫)는 ‘표준어란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국가권력을 획득한 다수파가 소수파의 언어를 억압함으로써 만든 통일언어’였으며 그래서 국어사전은 언제나 ‘소수민족·여성·반사회적인 집단의 언어’를 배제하고 있다고 했다.

사투리란 무엇인가. 한 지방 사람들의 찐득거리는 정서, 넋이 짙게 들어 있는 혼의 실체다. 전라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 제주도 사투리, 함경도 사투리는 그 지방의 독특하고 고유한 정서와 자존심과 정신과 혼이 배어 있다.

모르긴 해도 한 나라 안의 말을 표준어와 방언 또는 사투리와 표준어로 나누고 있는 국가는 드물다. 실제로 독일, 영국 등지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지역어 보전 운동을 펼치면서 유명 인사들이 TV에 출연할 때 지역어를 쓰도록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지역어 이미지 신장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지역에서는 ‘부산말 살리자’는 캠페인과 함께 조례를 만들어 부흥운동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나 보다. 제주도에서는 이미 조례를 만들었다. 제주어는 지난 2010년 유네스코에 의해 ‘소멸위기 언어 4단계’로 분류됐다. 이 발표에 제주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2000년대 들어 제주 지역 영어 공용화 논란이 번지면서 제주어와 제주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고 그 결과 2007년에는 제주어 보전 및 육성에 관한 조례안이, 2008년에는 ㈔제주어보전회라는 단체도 만들어졌다. 2010년 유네스코의 발표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이후 언론의 집중 조명까지 받게 되면서 제주에서는 제주어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공공영역은 물론 민간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게 된다.

2007년 조례가 제정됨에 따라 제주도에서는 매년 10월 첫째 주 금요일부터 1주일을 제주어 주간으로 정해 각종 행사들을 진행해 오고 있다. 제주어 말하기대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격월간 소식지 ‘덩드렁마께’도 발간하고 ‘제주어선생 육성 교육과정’도 진행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제주어를 가르치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얼마 전 광주방송(kbc) 정일윤 사장도 ‘전라도 사투리 대회’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언론도 중요하지만 광주시, 전남도, 지역 문화단체들이 ‘전라도 말’ 지키기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질박한 전라도사투리로 된 작품을 감상하고, 전라도사투리 잘 쓰기, 전라도 사투리로 노래 부르기, 전라도 사투리 공부하기 등 다양한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지역문화의 혼은 지역의 ‘말’에 잘 담겨있다. 지역 자긍심 회복을 위해서도 ‘전라도 말’ ‘호남어’ 부흥운동에 노둣돌을 놓을 때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