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전통문화 간직한 호남학 새롭게 정립해야 광주매일신문 집중제안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하자 <8>한류 열풍의 진원지 선진적 농경사회 호남이 한국의 중심 문화유산 보존 중앙단위로만 이뤄져 참다운 한류의 뿌리찾는 일 서두를 때

2013년 12월 23일(월) 00:00

호남은 따뜻한 남쪽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중심된 농경사회를 이뤄 한국 전통문화와 생활문화의 진수를 이어왔다. 하지만 중앙단위와 일부 영남 지역에서만 유물을 보존하고 보급하는 작업이 이뤄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호남학을 새롭게 정립해 지구촌으로 확산되는 한류의 뿌리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사진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실학박물관.

오늘날 한류는 지구촌 곳곳에 널리 퍼지고 있다. 한류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어떻게 한국 전통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참다운 한국문화는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시간을 두고 이룩된 전통문화에 내재해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이뤄진 한국의 전통문화는 세계에 견주어도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사계절 변화의 천혜환경을 바탕으로 선진적 농경문화를 이루는 자연 친화, 그리고 더불어 사는 화합과 평화의 정신이 어우러져 형성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족문화 창달 집현전·규장각

호남은 따뜻한 남쪽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중심된 농경사회를 이룩했으며, 이에 바탕한 농업생산력과 바다를 터전으로 삼은 수산생산력으로 인한 윤택한 전통 생활문화를 구가했다. 그래서 한국 전통문화와 생활문화의 진수는 호남이 이어왔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근세조선의 학문과 문화는 어느 중세사회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이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중심에는 조선 전기에 이룩된 집현전과 조선 후기에 설치한 규장각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집현전에서는 유능한 학자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면서 민족문화 창달에 큰 공헌을 했다. 규장각에서는 많은 전적을 모아 쌓아놓고 학자와 문인들이 침식을 잊고 정리하는 업적을 쌓았다.

우리 민족의 자랑인 훈민정음과 과학기기를 비롯해,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등 기록물은 집현전과 규장각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도 없었고 보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유산이요 전통문화의 진수가 되고 있다. 이 바탕에서 더욱 발전된 민족문화를 창달하고 또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두 기관은 국가적 지원 아래에서 이뤄졌고 거기에 종사하는 학자와 문인들은 생활의 안정을 누리면서 맡은 바의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현대에 설립된 한국정신문화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도 이런 학술기관을 모델로 해서 설립된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수난의 역사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중간 지대에 위치해 있어 잦은 전쟁을 겪었다. 그런 관계 속에서 많은 전적과 유물이 파괴되거나 불타기도 했으며, 혹은 해외로 유출되기도 했다.

그런 뒤에는 다시 수집하고 정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호남지역에도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

현대에 들어 새롭게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를 발굴 수집 보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호남권에서도 어느 지역 못지않게 이런 작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작업은 중앙단위로만 이뤄져서는 지역의 전통문화를 바르게 보존하거나 보급하는 데에 한계를 가지기 마련이다. 또 전문가 또는 전공학자나 특정 기관에서 수행된 경우가 많아 통합체제가 이룩되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경우를 보자. 영남권에는 일찍이 조식과 이황의 학문과 사상을 정리하는 남명학연구원과 퇴계학연구원이 설립돼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경기·수도권에는 실학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실학박물관과 정조의 업적을 기리는 학술기관 및 박물관이 설립돼 그 정신을 널리 알리고 있다.

오늘날 경제발전에 힘입어 곳곳에 도로를 개설하고 다리를 놓고 건축물을 짓고 있지만 학문이나 전통문화의 보존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기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아주 민족의 정신유산에 대해 인색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중앙정부 지원 아끼지 말아야

이번에 한국학호남진흥원의 설립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분야를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깊은 관심으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중앙정부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며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다리를 놓거나 도로를 건설하는 일은 줄여서 이 학술기관 사업을 집중 지원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상황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이 설립되면, 한국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맡았던 호남의 전통을 올곧게 전승하고 흩어져 유실될 위험에 놓여 있는 전적과 유물을 수집 보관하고 음악과 예술을 정리하고 음식 놀이 등 생활문화를 개발하는 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러한 학술진흥기관을 설립하는 일을 해 놓아야 이 시대 호남 문화인의 사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새롭게 호남학을 정립해 참다운 한류의 뿌리를 찾고, 세계인에게 한국문화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의미는 더욱 클 것이다.

이이화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