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적 근간 이룬 호남빠진 한국학은 ‘반쪽’ 광주매일신문 집중제안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하자 <9>한국학의 생성과 발전 민족 정체성 형성·문화창달의 요체 독자적 발전 이끈 호남학 대우 소홀 인프라 빈곤속 연구자 양성 등 미미 /서정현 (사)한국학호남진흥원 기획실장

2013년 12월 30일(월) 00:00

농업중심 사회 곡창지대의 위상을 비롯해 5천년 기간 정치경제적으로, 한민족의 뿌리로서 호남은 항상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호남을 소홀히 한 한국학이란 결국 반쪽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최근의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학 연구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지금 호남학 연구를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미국 버클리대 한국학연구소 동아시아도서관(위)과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센터 모습.

민족사를 보면 농업중심 사회에서는 곡창 호남이 경세의 근간을 이뤘고, 문화 창달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호남은 한민족을 이해하는데 있어 막대한 지위를 차지한다.

현재로부터 100년을 제외하면 5천년 민족사의 절대다수의 기간동안 농업중심 사회의 문화가 지배적이었으며, 조선의 조세 절반을 담당했던 호남의 정치경제적 위상에서부터 학술전통, 호국전통, 전통민속, 예술전통 등 한민족 뿌리 역할을 했던 것이 호남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에 관한 지식 전반을 다루는 종합적인 학문인 한국학이 호남에 관한 지식분야를 소홀히 한다면 반쪽 한국학이 되는 셈이다.

지역학의 하나로서 한국학은 인문·사회·자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의 고유한 특성을 파악하고, 밖으로는 국제적 상호이해와 교류를 촉진하는 학문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역사·언어·교육·사상·종교·풍습·사회제도·한국인의 의식구조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연구가 그것이다.

◇지역별·세대별로 뚜렷한 특성

한국 내에도 시대별·지역별 특성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전체로서 한국학의 구성요소로 작용한다.

산악지역, 해안·도서지역, 평야지역 등에는 서로 다른 풍습에서 비롯된 방언과 의식구조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각 문화권역의 특성은 민족적 동일성을 이해하는 요소가 된다. 한국학은 한국문화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이해하려는 목적 하에 한민족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종합 학문이다.

중국과 다른 민족의 주체성을 연구했던 실학의 ‘동국학’, 개화기 ‘본국학’이 실증적인 근대 학문으로서의 한국학으로 태동한 것은 한국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그를 바로잡는 발전과정으로 전개됐다.

근대적 한국학의 출발 동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제와 연관이 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고 ‘조선사’와 ‘조선사료총간’ 등을 발간했는데, 식민통치를 위한 지배 목적에 따른 연구를 통해 조선역사 왜곡은 물론 조선인 비하와 식민통치의 당위성을 양산하는 진원지가 됐다.

이에 맞서 민족적 자각을 일깨우기 위해 신채호·정인보 선생 등은 ‘조선을 알자’ 운동을 전개했는데, 조선의 고유한 문화특색과 독자적인 전통에 대한 문화적 민족주의 운동의 일환이었다.

제국주의 식민지배 논리의 바탕에는 고유의 민족 전통을 ‘미개’ ‘야만’ ‘천박’으로 평가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있었다. 낮은 단계의 조선이 자력으로 근대화할 수 없어 일본이 그 사명을 담당해야 한다는 식민사관 합리화 작업이 당시 일제관학자 주도의 청구학회나 진단학회에 의해 진행됐다.

해방 직후에는 젊은 학자들이 역사학회와 국어국문학회를 중심으로 유교의 이황, 실학의 정약용, 불교의 원효 등 한국사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일본관학의 독단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학 연구에 관한 이러한 흐름은 ‘국학’으로 이어져 60년대에야 한국학이라 일반화 됐다.

독재시절에는 국가주의 통치이데올로기 차원에서 강조됐으며 정신문화연구원에 의해 본격적으로 한국학연구가 진행됐고, 세계 각지의 한국학연구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진행된다.

1990년대에 들어서 자국 언어와 문화, 역사를 국제 사회에 체계적으로 알리는 국가적인 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 한국학이라는 개념은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국학의 의미보다는 객관적·실증적 지역학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조됐다.

1990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해외 한국학의 개황과 발전방향’보고서 발간, 1991년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창설 등 본격적인 국외의 한국학 지원 사업을 전개했다.

1995년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한국학 정보센터를 설립했고, 2005년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개칭했다. 서울대학교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산하에는 국제한국학센터(ICKS)가 개설됐다.

◇활발한 국제교류에도 대중화 요원

한국학의 당면 과제는 이론적 정립에 의한 전문화·세분화와 자료 발굴에서 보존활용까지 효율화, 그리고 전문연구자 양성과 대중화에 있다.

현재 국립국어연구원·민족문화추진회·세종대왕기념사업회·한국국제교류재단·한국문화예술진흥원·한국국학진흥원·유네스코한국위원회·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 한국에서는 여러 대학 한국학 연구소에서 한국학의 국제 교류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과제를 안고 있다. 위의 한국학연구 기관들은 경기·수도권과 영남지방에 편중돼 일부 지역 편향을 양산한다는 지적이 있고, 체계적 이론 정립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학문으로서의 정의·영역·방법·자료 등 이론적 근거 정립이 필요하고, 관계자료의 발굴·수집·정리·보존·이용의 효율화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호남지역에는 한국학진흥기관이 없다. 일부 대학에 호남학연구소 등 연구소가 있으나 예산부족 등의 난항 속에 관련학과를 폐과하는 등 인프라의 빈곤에 시름하고 있는 실정에서 연구역량의 축적은 물론 전문연구자 양성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호남균형발전 정부·지자체 몫

동서양 주요 국가마다 각기 다른 동기와 방법으로 한국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고,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학연구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한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국제사회에 일고, 한국과 관련된 언어·역사·문화·정치·경제·사회·지리·과학 등의 모든 영역을 인식 대상으로 하는 한국학연구의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하버드대, 시카고대, 하와이대, 캘리포니아대, 워싱톤대 연구소, 러시아의 과학원, 모스크바대, 상페테르부르크대 등의 연구소, 영국의 세필드대, 런던대, 옥스퍼드대 등 주요 대학 내에 한국학연구소 또는 센터를 설치하거나 학과를 개설했고,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이탈리아 뿐 아니라 동유럽, 동남아 각국에서도 한국학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국외의 한국학은 국내 한국학 연구 기반 형성에 의해 영향받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학연구 사각지대에 있는 호남과 충청에 산재한 전통문화유산과 자료는 균형발전의 책임이 있는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서도 발굴·수집·정리·보존·활용 등 연구 기반 마련에 나서야한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지방자치시대에 지역에 대한 모든 지식을 체계화한 바탕 위에 지역발전을 설계하는 것도 역시 자치정부의 몫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면서 왕실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수범했던 농업사회를 생각하면 국부의 원천 역할을 했던 호남이야말로 ‘민족사지대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과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한국학 진흥의 발전 모색은 동안 방치했던 호남의 연구를 활성화하는 것으로부터 방향을 세워야 한다.

/서정현 (사)한국학호남진흥원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