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정신과 문화예술 융합 호남르네상스 기대 광주매일신문 집중제안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하자 <11>호남창의의 기백 도처에 ‘역사의 향기’ 지닌 유산 즐비 민주주의 산파역 호남정신 드높여야

2014년 01월 13일(월) 00:00

예로부터 호남은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독특한 문화예술이 중요한 자산이 돼왔다. 더불어 수많은 문인과 협객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의로운 고장이다. 호남학의 진흥을 통해 위기의 시대에 나라를 구한 창의 정신과, 문화의 시대에 문화예술을 융합하고 소통함으로써 호남르네상스 시대를 열 때이다. 사진은 임진왜란 의병장 고경명과 그의 두 아들 종후, 인후의 3부자와 유팽로, 안영 등 5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광주시 소재 포충사(왼쪽)와 지방유림들이 대학자 기대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월봉서원. 의병장 고경명.

호남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도처에서 역사의 향기를 지닌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호남은 국내에서 가장 넓은 다도해를 가지고 있고, 산과 강, 호수와 섬의 문화를 가진 지역이다. 호남의 산과 강을 따라가면 수많은 문인과 협객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광주는 30여개의 크고 작은 하천 지류가 있다. 무등산 북동부 풍암제에서 충효동으로 흐르는 풍암천은 광주댐으로 흐른다. 무등산 바람재에서 시작된 석곡천은 영산강의 본류인 극락강의 상류로 흐른다. 증심사 계곡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제2수원지에서 내려오는 본류와 섞여서 광주천을 이루고, 다시 서방천은 두암천, 용봉천을 흡수하고, 오치천의 물줄기를 흡수한 뒤 극락강으로 흐른다. 극락강은 영산강 본류와 합해져서 광주공항 남쪽으로 휘감아 돌다가 송대동 하구에서 장성에서 내려온 황룡강과 합세해 영산강의 젓줄이 된다. 그후 화순에서 비롯된 지석강은 광주 대촌면과 나주 남평면을 종단하며 승촌에서 영산강이 된다.

◇수많은 문인과 협객의 흔적

장성, 담양, 화순, 광주, 나주의 수많은 지류가 모여 영산강을 이루듯이 호남의 역사도 깊이 연결돼 있다. 영산강 물줄기처럼 호남의 역사도 얼핏 닮았다. 장성에서 광주로 흐르는 황룡강 유역에는 호남유학의 거두 고봉 기대승의 자취를 간직한 월봉서원이 있다.

기대승 보다 6년후 태어난 고경명은 1592년 7천명의 의병을 모아 유팽로 등과 함께 왜군의 보급로인 금산성을 탈환하고자 호남의병을 이끌고 북상해 전투를 이끌다 전사했다. 이순신 장군이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한 배경에는 이같은 호남의병의 의분에 찬 헌신이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초반 다산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생활 속에서 실학을 집대성하고 호남문화예술의 기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19세기 말 국난의 위기에서 호남의 의향전통은 이어져왔다. 1894년 호남일대에서 기세를 떨치던 동학은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내세우고 항일투쟁을 전개했고 일본군과 전면 충돌했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 이후 호남유림들도 의병의 기치를 들고 구국투쟁에 나섰다. 러일전쟁 직후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호남의 구국투쟁은 문무양면에 걸쳐 전개되는데, 하나는 교육계몽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의병항쟁이었다.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 이후 광무황제가 강제퇴위 압박을 받는 긴박한 정세 속에 서울에서 호남학회가 결성된다. 1907년 가을 호남 각지에서 의병봉기가 일어났다. 일제는 1909년 9월 초부터 침략의 막바지 작업으로 소위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10월 말까지 전개했다.

일제는 임진왜란 당시 호남의 저항을 교훈 삼아, 철저하게 계획된 호남대학살을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됐지만 호남은 대한제국 말기 최후까지 국권의 수호를 위해 항전했던 최대의 격전지중 하나였다.

◇최후 항전 최대의 격전지

일제강점기 호남을 고립 분열시키려는 술책이 지속되지만 호남은 항일의 요람으로 우뚝 섰다. 2·8운동을 이끈 동경유학생학우회를 결성한 주축은 호남유학생친목회였다. 청년들과 민족지도자들은 각지에서 3·1운동의 확산에 기여했고 적잖은 희생을 치르면서 수십차례의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그후 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해 1920년대 사상운동, 청년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에서 호남출신 인물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특히 1929년 광주학생운동은 조선총독부 문화통치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한민족이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독립의 기회를 엿보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이는 침체일로에 있던 1920년대 말 국내외 항일운동을 결속시키고 새로운 독립운동세대가 항일의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 과정에서 호남청년계의 역할은 매우 컸다.

종종 해방이후 호남은 산업화과정의 주역들과 무관한 것처럼 폄하되고 있다. 수많은 호남의 농촌청년들이 고향산천을 떠나 산업화의 역군으로 활동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 학생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재야운동에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앞장서 한국민주주의를 전진시킨 것이 호남이었다. 호남인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이었다. 이러한 호남의 전통과 문화격변을 문화콘텐츠와 지역학문으로 발전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종합관리·보존 시스템 시급

호남문화유산은 호남인들의 삶의 자취가 묻은 현장에 여전히 남아있다. 고택, 사당, 정자, 학교, 사찰, 서원을 비롯해 강과 호수, 산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들판의 사투리 지명에도 숱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호남문화는 기록된 것보다 기록되지 않은 게 훨씬 많다고 알려져 있으며 아직도 발굴할만한 가치를 가진 문화유산이 아직도 묻혀있다.

무엇보다 훼손되고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에 대한 자료의 발굴과 아카이브작업이 시급하다. 기록되지 않으면 역사마저 통째로 잃고 말 것이라는 경고는 지난 역사가 주는 뼈저린 교훈이다.

그동안 호남학 정립을 위해 적잖은 노력이 있었지만,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여기 저기 흩어진 채 방치된 역사문화자원이 훼손, 분실, 도산되거나 화재나 천재지변으로, 또 무단 폐기돼 사라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개인들이 소장한 일부 고서나 문집의 경우 허술한 관리로 손실될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문화유산들에 대한 종합관리와 보존을 위한 협업시스템이나 민·관·학 협력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다행히 지난 1일 광주시는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 및 지원 조례를 공포했다. 광주시 조례 공포에도 불구하고 각 지자체의 추진 노력과 중앙정부의 협력이 절실하다. 이 일을 계기로 호남학을 집대성하고 진흥시킬 본산으로서 한국학호남진흥원의 위상도 제고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호남학의 진흥을 통해 위기의 시대에 나라를 구한 호남창의 정신과, 문화의 시대에 호남의 지적전통과 문화예술을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지털시대의 요구를 융합하고 소통함으로써 새로운 호남르네상스가 태동하길 기대해 본다.

김홍길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