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치 지방에 돌려달라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2월 19일(수) 20:14

요즘 다시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정의로움이 사라진 곳에 부조리와 울분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사실 정의란 별게 아니다. 사람이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다. 인간의 행위나 제도의 시시비비(是是非非) 판단기준이다. 오늘날 정치·사회적으로 ‘정의란 뭐냐‘ 물으면 ’개개인에게 그의 정당한 몫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양에서 저울과 검을 손에 잡고 눈을 가린 여신상에 의해 정의가 상징되어 온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의가 해야 할 역할이란 경쟁하는 여러 요구 간에 적정한 균형을 확립하는 것, 근거 없는 차별을 제거하는 것으로 축약된다.

안철수 의원을 위원장으로 뽑은 ‘새정치연합’이 민주·정의·자유를 기치로 내걸면서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부분을 혁파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런 뜻 일게다. 정치권에 때아닌 논란을 몰고온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 사건도 우리 체육계의 정의롭지 못한 부조리의 단면이다. 그래서 저렇게 실력있는 선수를 왜 우리나라는 껴안지 못 했는가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안현수는 빙상연맹을 중심으로 한 파벌 의혹, 부상과 소속팀 해체 등의 악재 속에 2011년 12월 러시아로 전격 귀화한 뒤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현수와 같은 희생양을 또다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구조적 난맥상은 반드시 뿌리 뽑혀야 한다. 제2의 안현수, 제3의 안현수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어디 부조리 때문에 멍이 들고 실력 있는 인재가 제대로 크지 못하는 곳이 비단 체육계 뿐 인가. ‘정의의 가치’를 가장 앞장서 세워야 할 집단인 정치권의 정의롭지 못한 관행은 정치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지방선거전이 시작됐지만 지난 총선·대선 공약사항이었던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개특위는 광역시·도 의원 정수 13명, 기초의원 정수는 21명을 증원해 자신들의 배만 불려 놓았다.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상당수 지방의원도 이제는 지방자치가 중앙당 아귀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자치정의가 살아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부터 흐려진 물은 여전히 아래로 흐르고 있다. 2012년 총선·대선을 통해 여·야가 앞 다퉈 내세운 공약(公約)이 대부분 공약(空約)이 됐다. 의원세비 30% 삭감, 면책·불체포 특권 제한 또는 폐지, 중앙당 권한 대폭 축소 등 여야 공통 공약을 포함해 의원 연금 폐지약속, 의원의 영리목적 겸직금지 등 스스로 내건 공약이 크게 후퇴하거나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200여 개에 이르는 국회의원의 특권 중 단 몇 개도 내려놓지 않은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지방선거에까지 막대한 힘을 휘두르며 안현수같은 정치인을 만들어낼 작정이다.

현행 헌법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민주정치에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선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국가 차원의 정치’, 지방의회의 선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지역 차원의 정치’ 둘로 나뉜다. 지역정치는 국가에 대응되는 의미에서 지방자치의 밑바탕을 이루는 기초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이해되는 것이 옳다. ‘지역 차원의 정치’란 무엇보다 주민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풀뿌리 민주정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조리한 정치는 여전히 지역민에게 ‘지역자치와 지역정치’를 돌려주지 않고 있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 지정해놓고 그 선택의 룰은 여전히 불합리하고 또 불합리하다. 정말 실력 있는 전문가, 존경받는 인격자가 지방정치에 진입할 수 있는 길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 정치적 야심이 드세고 지역구 국회의원과 잘 짬짜미된 이들이 득세할 수 있는 구조다.

유권자 역시 부조리한 정치 환경에 익숙해서 정치인을 뽑으면서도 정치인 같지 않은 사람을 선호한다. 약삭빠르거나 허풍이 심하거나 책임감이 없는, 진정 정치가 뭔지로 모르는 사람을 선뜩 선택하기도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시장 도지사 뿐 아니라 교육감도 선출해야 하고 구청장과 군수, 광역·기초의원까지 뽑는다. 새로운 비전을 만들 수 있는 거시적 안목의 능력자를 정당이나 유권자가 잘 알아보는 ‘정의로운 눈’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안현수를 대한민국이 잃어버렸듯, 지역을 살릴 수 있는 선구자를 놓칠지도 모른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정치의 정의로움’이 살아나기를 바란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