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사회의식, 의식주 까지 한국 사회서 높은 문화 감수성 광주매일신문 집중제안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하자 <15>호남문화와 학술 진흥

2014년 02월 23일(일) 20:31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안정적인 정착생활이 지속된 호남은 상대적으로 높은 문화적 감수성을 폭넓게 공유하고 있어 한국사회 문화와 학술 진흥의 근간을 이뤄왔다. 바로 호남학 연구에 대한 대책과 지원이 시급한 하나의 이유인 것이다. (사)한국학호남진흥원은 지난해 10월 조선대 중앙도서관에서 이종범 조선대 교수를 좌장으로 한 ‘호남학 재조명 및 국학 진흥’ 학술회의 등 각종 행사를 통해 호남정신을 확산시키고 있다.

호남은 안정적인 정착생활이 오랫동안 지속된 곳이다. 안정적 정착생활은 긴밀한 유대관계를 지닌 공동체를 가능하게 했다. 오랜 공동체적 유대는 폭넓은 정서적 공감대로 이어졌고 호남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성립시켰다. 역사가 거듭 축적되고 다시 오랜 기간 숙성되면서 높은 수준의 호남문화를 형성시켰다.

그래서 호남인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문화적 감수성을 폭넓게 공유하고 있다. 예술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사회의식면에서도 그렇다. 호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가 다른 곳과 구별되는 점이다. 문화는 생활 경험의 축적이며 그 주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호남문화와 예술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광주지역에 향약이 처음으로 시행된 유서깊은 부용정.

◇안정적인 정착생활의 결과물

의식주의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지역에 비해 세련되고 정치한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미술 음악 등 예술분야는 물론이고 문학에서도 수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역대로 이어지면서 배출됐다.

이는 다시 주위로 전파돼 지역 사람 모두가 그만큼 세련되고 고급스런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랜 전통의 축적이 있어 가능한 현상이다. 그만큼 호남은 문화 밀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학문에서도 그 저변이 매우 넓었기 때문에 그 바탕위에서 높은 수준의 수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배출됐다.

근세 역사의 예를 보더라도 동학농민전쟁이나 광주 5월항쟁 등 치열한 저항투쟁이 특히 호남에서 대규모로 전개됐던 것은 이를 가능케 한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항쟁은 높은 문제의식이 긴밀하고 차등 없는 공동체적 유대관계를 통해 감성적으로 공유되고 역동적으로 확장되면서 전개된 것이다. 이러한 변혁적 투쟁은 고도의 세련된 문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흔히 다른 나라에서 보는 바와 같은 맹목적 폭동들과는 차원이 다른 역사이다.

하지만 오늘날 학문적으로 호남 문화를 정리하고 연구한 성과는 찾아 볼 수 없다.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일으켜 온 역사와 축적해온 문화가 무엇인지, 어떤 특징과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 오늘날 개략적으로라도 설명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우리는 호남학의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호남의 정체성은 갈수록 약화되고 때로는 폄훼당하기도 한다.

지금에 와서는 호남을 상징하는 이미지마저 과거와 달리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낙후되고 침체된 곳이라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왜 이렇게 됐는가. 물론 잘못된 정치가 야기한 20세기 산업화 과정의 소외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그러나 단지 그 탓만으로 치부하고 끝낼 일은 아닌 것이다. 단순히 산업화에 따른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북 정읍사공원내 위치한 노래비.

◇호남 정체성 갈수록 약화·폄훼

어떤 사회나 어느 국가를 설명하고 평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잣대가 있을 수 있다. 경제, 스포츠, 군사력 등 여러 다양한 요소로 비교 분석하고 필요한 과제나 드러난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교훈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의미 있는 것은 그 사회가 학문적으로 이룩한 수준과 기여한 업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지고 비교하고 평가해보는 일이다. 한 사회에서 이뤄진 학문적 성과와 수준은 그 사회가 도달한 지적인 능력과 역량을 총체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최근 물질적 욕망에 휘둘려 지적인 풍토도 피폐해졌다. 예컨대 장차 학문에 뜻을 두고 학업을 계속하는 이들이 어느 때보다 적다. 특히 기초학문이나 인문학의 경우는 심하게 홀대받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는 호남을 연구하고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의지나 욕구도 생겨날 수 없다. 다른 지역의 지역학 수준에 비해서도 호남학의 경우는 더 열악한 형편이다. 그동안 나라 정책에서 호남학에 대한 중요성은 간과됐으며, 여기에는 이 지역 관계자들의 무관심과 소홀함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

◇풍습과 전통 체계화 작업 필수

오늘날 급격한 인구 이동으로 전국적인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전근대 시대의 제한적인 지역단위의 문화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한국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더 나아가 세계적인 한류라는 현상까지를 낳고 있다.

이러한 한국문화의 뿌리를 더 캐고 들어간다면 그 연원은 대부분 호남에 닿아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인들의 정서와 생활에서 차지하는 호남적인 요소의 비중은 다른 어떤 지역적인 것보다 높다.

호남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숙성되고 세련된 호남 문화는 오늘날 한국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호남의 터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풍습과 전통을 체계화하고 정리하는 연구가 절실한 까닭이다. 한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에 비춰서도 오늘날 호남 문화 연구에 대한 대책과 지원은 시급한 과제이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