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의 시대 동력’ 삼아 스토리텔링 발굴 시급 광주매일신문 집중제안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하자 김용진 (사)한국학호남진흥원 사무부처장 |
| 2014년 03월 09일(일)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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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이 불쑥 필문로, 사암로 등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답하기 곤란하다. 유래와 인물의 행적과 그가 남긴 정신을 스토리텔링해 알기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필문로에 얽힌 사연 알지못해
서방사거리에서 산수오거리, 조대 앞을 지나 남광주사거리에 이르는 필문로는 1차 외곽순환도로로써 광주시민 누구나가 지나갔던 도로이지만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도로명에 얽힌 사연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조선 전기에 광주가 광주목(光州牧)에서 무진군(茂珍郡)으로 강등되었을 때 필문 이선재 선생 등 민간이 임금께 상소를 올려 광주목으로 위상을 회복했다. 이를 기뻐하며 민간이 기금을 모아 ‘희경루’를 지어 기념했다고 한다. 평화롭고 어진 덕의 고장 광주의 상징으로 오래도록 조선 제1의 누정으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이선재는 세자빈객, 예문관제학을 역임하고, 정인지 등과 함께 ‘고려사’ 편찬에 참여했다. 향리인 광주 대촌으로 돌아와서는 후진을 양성하면서 향약을 베풀어 미풍양속을 뿌리내리게 한 인물이다. 그의 부조묘는 광주민속자료 7호로서 남구 구만산길에 그가 심은 괘고정수 왕버들과 함께 전해진다.
스스로 학문에 정진하는 군자의 모습, 자신이 깨달은 바를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참스승의 모습, 더불어 사는 주변의 민초들과 평화로운 고장을 일구려는 실천의 모습, 옳은 일에는 기꺼이 나서는 의로운 모습, 사재를 모아 향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모습 등 현대인에게 배울 것이 가득한 이야기다.
광주의 후손들이 선인들의 삶의 모습이 배어 있는 거리를 지날 때마다 교훈을 느끼고 성장한다면 살기 좋은 고장이 될 것이다. 정신적 황폐화로 자살률을 걱정하고, 왕따 학교폭력에 불안해 떨며, 흉악범죄에서부터 교통사고 분쟁에 이르기까지 타인에게 해악을 주는 위법행동이 넘쳐나는 현대의 삶에 해법을 제시하는 선인들의 위대한 정신을 스토리텔링해 들려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정인지, 신숙주는 알면서 필문 이선재 선생은 모르고 살아 왔던 부끄러움은 사암 박순 선생 앞에서는 더욱 커진다. 송정가도에서 흑석사거리, 하남공단, 비아인터체인지에 이르는 사암로의 주인공은 박순 선생이다.
훈구파의 대부 윤원형을 축출하고 사림의 시대를 연 청백리로서 14년간이나 영의정을 지낸 박순은 서경덕의 문인이자 남명 조식, 퇴계 이황에게서 학문을 배운 학자이다. 그는 눌재로의 주인공 눌재 박상의 조카이다. 이이, 성혼과 함께 교분이 두터운 이유로 동인들에게 서인으로 몰려 영의정에서 물러났다. 그가 창녕에 있던 남명 조식 선생과 주고 받은 편지도 학문적 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금남군 영정 도난사태 씁쓸
우리는 사암 선생이 조선시대 성리학, 주자학의 중심인물 4사람, 즉 서경덕, 조식, 이황, 이이 등과 교유했던 사실에서 그의 깊은 학문적 성취가 있었을 터인데 어찌해 이름도 기억할 수 없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암집’이 전해지고 있으나 그 내용 연구가 빈약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고장을 빛낸 인물에 대해 후손들이 현창사업을 게을리 했던 데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성혼 선생의 문인이었던 강항 선생은 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간 3년 동안 막부의 쇼군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가르치고 일본 주자학의 큰 스승으로 현대 일본인들에게 추앙받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지금도 일본인 관광객들은 영광 내산서원에 기념식수하고 매년 강항 선생을 찾는다.
그러나 우리는 강항 선생의 학문은 물론이고 그의 스승보다 더욱 고매하고 깊은 성리학적 족적을 남겼을 사암 박순 선생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금남로의 주인공 금남군 정충신 장군의 영정이 도난당해도, 우리의 어머니산이라 부르며 품에 안겨 사는 무등산의 옛그림 ‘무등산도’가 영남대 박물관에 쳐박혀 있어도 우리에겐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일본이 조선을 비하하면, 천황족의 스승 왕인과 아직기를 말하고, 일본 영웅의 스승 강항을 말할 수 있도록 한민족의 역사문화 전통에 자부심을 부여해야 한다. 극우 일베가 호남을 비하하면 조선조 향약의 효시 광주향약, 약무호남 시무국가를 말하고, 5천년 농경문화의 중심지로서 호남인의 자존감을 드높여야 한다.
역사는 더 이상 케케묵은 비생산적 고물이 아니라, 질곡의 현대사를 올바로 세우고 빛나는 문화의 시대를 열어갈 미래 동력의 엔진으로서, 정신문화의 발전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광주를 방문하는 세계인에게 평화 애호의 위대한 공동체정신이 서린 민족전통을 거리 곳곳에서 피어나는 다채로운 스토리를 통해 느끼게 해 주었으면 한다.
◇민관협력 전통 되살려야
위와 같은 일들을 국가가 나서서 하도록 정책 제안한 것이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 제안이었다. 이 한국학과 한국문화, 그리고 호남학과 호남문화의 정체성을 생활 곳곳에서 발굴하고, 정신유산의 기록물들을 보존하며, 그 가치를 현창하는 사업이 바로 호남학진흥 사업인 것이다.
기관 설립은 국가가 지방정부와 함께 마땅히 추진해야 할 일임에도 국가는 설립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늦게나마 광주시가 설립에 필요한 조례입법 및 설립준비 작업을 진행한 점을 다행한 일이다.
현시점에서 다시 민간의 역할이 필요하다. 설립과정에는 재원 마련이 난관 중에 난관이다. 조례가 마련됐다고 할지라도 예산의회가 열리려면 지방선거가 끝나야 한다는 것이 설립의 현주소다. 관심이 고조된 설립 여론은 선거로 인해 자칫 미궁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행정상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은 민간의 참여로 설립 재원 기금을 모금하는 일이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기금모금에 참여할 때, 민·관의 협력이라는 민주주의적 전형이 창출될 수 있다. 민주의 본고장 호남에서 덕치를 권유하며 희경루를 지었던 민관협력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는 아름다운 기금모금을 통해 설립을 이루어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설립 이후에는 성남의 한국학중앙연구원처럼 안정적인 운영지원이 이루어지도록 국회에서 특별법 입법을 촉구해 나가야 지방 재정의 취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 나라의 주인이자, 국세 납부자인 국민으로서 정책 담당자에게 요구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에 있어서 민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김용진 (사)한국학호남진흥원 사무부처장
김용진 (사)한국학호남진흥원 사무부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