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死의 기로에서 뒤돌아본 그림자여… ‘나’는 여기 왜 있는가 화가 박종석의 히말라야 그림여행 <10> 로체 등정에 눈사람도 웃는다

2014년 03월 19일(수) 19:48

박종석 作 ‘그곳에가면’ (90×33㎝)

5400m의 베이스캠프는 단순한 일상이지만 시야에 보이는 모든 대상이 하얀 눈에 쌓여있어서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평화로움과 긴장으로 이분화 된다.

밤에 내린 폭설로 온천지가 화선지를 겹겹이 덮어놓은 듯 소복하다.

로체정상 등정 하루 전, 캠프3에서 대원들 텐트가 눈사태로 밀려 나갈 위기를 다행히 극복했단다. 순간이지만 지혜롭게 대처한 후 15㎏의 짐을 지고 경사도 50-60도의 청빙구간을 아이젠을 찍으면서 캠프4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 30분, 낙석으로 오른팔에 부상을 입은 김주형 대원, 김미곤, 윤중현, 세르파 등 대원 6명이 비좁은 텐트에서 눈을 녹여 물을 끓이고 4명이 라면 2봉지로 허기를 채운다.

에베레스트 등정 후 김홍빈 대원과 함께.

그리고 밤 11시 40분에 정상공격으로 달빛을 받으며 무릎 아래까지 빠지는 설원을 오른다.

8시간 쉬지 않고 무아지경으로 전진한다. 정상이 바로 앞인데 갈림길에서 혼란에 빠져 자칫하면 약 3,000m의 로체 남벽 낭떠러지로 진행할 뻔 했단다.

본부텐트에서 비상이다. 곧 바로 한국에 전화를 해 경험 있는 경남의 조형규대장에게 자문을 구하고 옆 캠프의 허영호대장도 통신으로 가이드 역할을 한다.

정확한 정보수집으로 다행히 1시간 20분을 소요하고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초긴장 상태의 본부텐트는 순간 환호소리가 터진다. 강연룡, 김미곤, 윤중현, 세르파 밍마와 도로지가 정상에서 1시간 지체하다 하산한다.

과연 그들은 그 순간, 무슨 생각과 어떤 희열을 느꼈을까? 무척 궁금하다. 천하를 내려다보며 진시황제가 부럽지 않을 시간! 베이스캠프의 본부에서 박대장은 정상공격 일정 중에는 묘법연화경을 수 십 번 읽으며 몇 일간 뜬 눈으로 밤을 보낸다.

카리스마 넘치는 대장의 동물적 감각과 지극정성에 모두들 감동할 수밖에 없다.

무전기로 통화된 등정 소식과 떨리는 대원의 목소리에 주위가 온통 축제 분위기다. 까르마는 양은 냄비를 숟가락으로 두드리며 춤을 춘다. 그러나 기쁨의 환호는 순간이다. 하산길에 조난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이듯. 너무 순탄하면 재미가 없다. 심금을 울리는 음악도 음률의 고저와 장단, 고요와 극적인 대비의 조화가 명곡을 만들 듯이….

등정소식에 환호하는 본부.

그러나 염려했던 일이 생겨난다.

하산길에 나이 어린 세르파 밍마가 추락했다. 도로지가 한손으로 잡으려 했으나 놓치고 10여 m를 굴러가다 다행히 눈밭에 걸려 살았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한 걸음의 사이이자 사고가 생기면 히말라야 여신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세르파 밍마는 앞으로도 산소를 들여 마실 수 있다.

호흡이 단절되면 생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이다. 강연룡 대장은 그 때 순간을 내려다보고 ‘아, 또 한 놈 보내는구나.’라는 생각을 악몽처럼 뇌리에 스쳤단다.

하산길에는 대원들 모두가 지친 몸과 피곤으로 험한 앞길이 마지막처럼 긴장의 시간이다. 그 가운데 쏟아지는 졸음이 제일 무섭다.

본인 스스로가 걸으면서 졸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문득 걷고 있음을 느낄 때 순간 소름이 끼친단다. 8,000m 고산에서 졸음은 곧 죽음을 암시한다.

육체의 극단적 학대는 영혼이 상처를 입는다는 통설처럼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뇌의 정상적 기능이 마비된다.

극단의 상황을 강인한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보편적으로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영원한 수면상태를 원할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앞에 두고 도전하는 젊은 산악인들이 평범하지 않음은 인간으로써 형용할 수 없는 악조건에서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한 체험 후 일상으로 돌아오면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몇 사람을 제외하면 명예의 축적으로 권위를 내세워 생계형으로 변질화 되는 경우가 많다.

히말라야에서 생사를 극복한 산악인은 수행자와 같은 존재로 깨달음을 인류평화와 세상을 위해 나누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문득 욕심, 욕망을 버리는 문구가 생각난다. ‘득지본유(得之本有): 얻은 것은 본래 있었던 것이고, 실지본무(失之本無): 잃은 것은 본래 없었던 것’이다.라는 경구가 마음에 와 닿는다.

힘든 선택을 극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일상에서도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산에서 명예를 얻고 그 후 네팔의 어린이들을 위해 평생 동안 헌신, 봉사로 일관해 얻음과 잃음이 하나임을 알아차린 산악인이었다.



로체 정상을 등정한 날! 우리의 캠프에는 까르마가 새벽에 만들어놓은 눈사람이 선글라스를 끼고 하루 종일 웃고 있었다.




힘들고 어려울때 힘이 된 윤중현 대원

윤중현 대원 (27×19㎝)

원장대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윤중현 대원은 항상 웃는 얼굴에 마음의 여유가 있는 친구다.

100루피에 나의 꿈을 슬쩍 팔았던 아우다.

그는 희생정신도 강하다. 정상에 오르는 김홍빈 대원을 위해 촬영하고 1시간 30분 늦게 정상에 도착했다. 2시간 이상 기다려준 김미곤 대원도 대단한 의지의 산악인이다. 그래서 김홍빈 대원과 세르파 산누도 정상을 밟았다.

참으로 보기 좋은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김미곤, 윤중형 대원은 로체와 에베레스트 2개 봉우리를 한 시즌에 등정한 친구들로 대단한 정신력과 헌신의 노력이 있었다.

바로 좋은 친구는 힘들고 어려울 때와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인간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