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1번은 시민에게 돌려달라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3월 19일(수) 19:48

한 학교의 1일교사로 간 적이 있다. 한 여학생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비례대표를 선출할 때 순번에서 1번을 여성으로 단정하고 있는데 근거가 무엇인가’ 물었다. 필자의 답은 이랬다. ‘현재 많은 부분에서 남녀평등이 실현 되고 있긴 하지만 정치 부분에서는 미흡합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해 보고자 마련된 거 같습니다. 비례 대표는 정당명부에 올라가기만 하면. 그 당의 지지율에 따라 선출 되므로 뽑힐 가능성이 많지요’ 그러자 그 학생이 재 질문을 했다. ‘비례 1번을 여성으로 하는 이유는 여성을 대변하라는 건데 우리 지역에선 1번이 그동안 무슨 일들을 했나요?’ 선뜻 무슨 일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아 자료를 찾아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비례대표제는 각계 전문가나 여성,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의 정치 입문을 돕는 창구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다. 국회의원의 경우 정당별로 비례대표 1번을 상당히 신경 써서 상징적인 인물을 내세우는 이유도 여성표를 의식해서다. 비례대표 1번은 정당이 국민에게 선보이는 새로움의 시작이자 당의 정체성과 시대 흐름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구를 대신해 전국의 유권자에게 당의 얼굴로서 기능을 한다. 동시에 총선이라는 ‘전쟁’ 전체를 책임지는 최전방 공격수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선거를 하지 않고 무조건 당선된다는 점을 악용한 이들도 있었다. ‘공천헌금’을 내고 1번이 됐다가 사퇴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공천헌금 논란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듯이 매관매직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 치명적이다. 당권을 쥔 쪽이 순번을 정하면 제어할 방법이 없다. 오죽했으면 다른 지역에선 비례1번 하는 일이 국회의원 자녀 결혼식 신발정리라고 비판하겠는가.

지방선거도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 비례 역시 1번은 여성으로 정한다. 민주당 독식 지역이었던 호남에서는 광주광역시의회 전남도의회 전북도의회 1번 여성은 늘 민주당이 정했고 시·군 기초의회 1번 역시 민주당이 정했다. 물론 각 지구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했지만 그 과정에서 호남 여성의 의견이 잘 반영됐는지는 모르겠다.

지방자치 20년 동안 비례 대표 여성들이 소외계층, 청년, 장애인, 여성을 얼마나 챙겼는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이 현재 광주·전남 소외계층의 삶과 여성 삶이 질을 다른 지역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비례대표 여성들 스스로 당이 뽑아줬다는 인식이 강해서 지역여성을 대표해 지역 여성의 아픈 부분을 살펴야 한다는 사명감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창당 이후에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비례대표 공천을 해야 할 것이다. 현행 민주당 공천 제도에 따르면 광역의원 후보는 대의원, 권리당원, 일반당원 투표를 반영해 결정된다. 지방의원 비례대표 후보는 시·도당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에서 결정한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비례대표 선정 룰을 정하기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지역 여성들의 생각을 잘 읽는 것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다른 정당과 경쟁하지 않는 구도에서는 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인물을 선출할 필요는 없다. 막대기만 꼿아도 당선되게 생긴 광주·전남 선거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례대표가 당을 대변할 필요는 없다. 경쟁 없이 지역민의 몰표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도로 민주당 자기들만의 잔치’로 비판받지 않으려면 비례대표 여성만이라도 당이나 당원의 입장이 아니라 지역여성의 입장, 지역여성을 대표하고 지역여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해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여성 비례대표가 당의 눈치 보지 않고 지역 여성 삶의 질을 위해서만 고군분투 했다면 지역 여성문화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비례대표제가 한 여성에게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만들어주는 일이 아니라 사각에 놓인 소외계층을 챙기라는 유권자의 명령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성비례대표가 선거로 선출된 의원들처럼 행사 나가서 악수 하고 똑같이 해외여행 나가고 선출직 의원과 똑같은 활동을 한다면 따로 비례대표를 뽑을 이유가 없다.

지방자치야말로 정치가 내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냐를 현장에서 보여주는 제도다. 지방의회 중심에서 여성비례대표는 지역의 소외계층을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책무를 맡고 있다. 새정치를 표방하는 신당은 광주시의회 전남도의회 비례대표 1번이 신당의 소유가 아니라 지역민의 얼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역 여성들은 전문성을 갖고 제대로 지역여성의 삶을 돌보는 여성을 간절히 바란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