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당 5억’의 코미디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3월 26일(수) 20:49

이번 주 전 국민의 눈과 귀가 다시 한번 광주에 쏠렸다. 좋은 일이면 모르는데 나쁜 일로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사건인즉, 광주지방법원이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노역 일당을 5억원으로 결정 판결하면서 시작됐다. 하루 노역으로 5억원을 쳐준다는 법원 판결에 광주시민은 분노했고 전 국민이 어이없어 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도 쌍 비난을 하고 나섰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광주진보연대,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등 광주지역 시민사회도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허재호 전 회장의 ‘일당 5억 노역’은 사법부의 ‘봐주기식 판결’이라며 규탄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중앙에서는 허재호 전 회장과 관련된 광주와 순천의 법조인맥을 캐는가 하면 광주전남 지역사회의 인맥 학맥까지 까발리고 있다. 다른 지역에선 ‘일당 5억원 노역’ 파문이 향판(鄕判)제, 사건의 1, 2심 재판장이 모두 향판인데다 허 전 회장 등 그룹 관계자들의 변호사 상당수가 향판 출신 전관이라는 점에 촛점을 맞추고 광주지역사회에서 재벌과 법조인이 짬짜미했다고 조롱하고 있다. 참 개탄스런 일이다. ‘일당 5억 원의 사나이’ 허재호 대주그룹 전 회장은 막판에 광주 이미지에 이렇게 큰 타격을 주변서 지역민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잘알다시피 대주그룹은 지난 2010년 모기업 대주건설이 부도나면서 한 번에 무너져버렸다. 대주그룹의 부도로 수많은 하청업체들은 돈을 떼였다. 광주 지역 경제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허 전 회장은 지난 2007년 특별세무조사 끝에 508억 원의 탈세 사실과 회사돈 1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1심인 광주지법은 허 전 회장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에 벌금 508억 원을 선고했다. 그리고 벌금 508억 원을 내지 않을 경우 일당을 2억 5000만 원으로 계산해 203일간 노역하도록 판결했다. 하지만 2011년 12월 열린 2심 광주고법의 재판 결과는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으로 ‘감형’이 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재 큰 논란이 일고 있는 벌금 254억 원에 대한 일당 노역비도 5억 원으로 높였다. 49일만 수감됐다가 나오면 모든 빚이 탕감되는 것이다. 일반인의 노역 일당 5만 원에 비하면 무려 1만 배에 이르는 ‘몸값’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일반인과 ‘범털’간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진다.

법원 판결대로 한다면 허재호 전 회장은 오는 5월 9일까지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있으면 49일을 채운다. 그가 22일 귀국해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되면서 하루에 5억원씩 벌금을 탕감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벌써 25억을 탕감받았다. 당초 확정된 벌금은 254억원이어서 50일을 노역해야 하나 그나마 수사과정에서 긴급체포된 1일을 노역한 것으로 계산해 하루가 줄었다고 한다. 이중 공휴일(토, 일요일과 어린이날, 석가 탄신일)을 빼면 실제 33일만 노역장에서 일하게 된다. 노역은 감방안에서 오전 약 4시간, 오후 약 4시간 등 하루 8시간 이뤄진다. 일의 종류는 쇼핑백 만들기, 두부 등을 만드는 만드는 식품공장 일, 가구 만들기 등이다.

어이가 없다. 노역 일당 5만원의 서민이 50만일 넘게 노역해야 해결할 수 있는 벌금을 그는 50일 만에 털게 되는 셈이다. 일당 5억 원 노역은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보다 일당이 10배나 높은 수준이다. 노역이 3년을 넘지 못하게 돼있어 그 기간 안에 해결할 수 있도록 일당을 정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하루 5억원씩 50일 만에 할 수 있게 한 법원 판결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이런 판결이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당장 ‘5억원 사나이’의 노역을 중단시키고 합리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검찰 역시 허 전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천16억원을 구형하면서 이례적으로 벌금형에 대한 선고유예를 요청했던 것이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재수사도 고려해봐야 한다.

국민에게 다시 한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며 시대를 역행한 ‘일당 5억원’ 사건. 아무리 도덕적 해이(모럴헤저드)가 만연한 나라라 해도 너무 심하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식으로 암암리에 암묵적으로 묵인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어떤 국민이 법을 지키겠는가.

1만 5600원을 훔친 죄로 징역 3년을 받을 노숙자가 있는 반면 수백 억 원에 달하는 돈을 탈세하고 횡령하고서도 49일 노역만 살면 되는 사회는 정상 사회가 아니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