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오방 선생’ 후일담 박윤모 칼럼 문화 愛 빠지다 |
| 2014년 04월 09일(수) 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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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선 굵게 관통하며 살아간 한 사나이, 오방 최흥종 선생을 다시 현재로 불러내는데 성공한 것 같다. 공연을 본 관객들에게서 듣는 공통된 이야기는 ‘광주에 이런 분이 계셨는지 왜 여태 몰랐을까.’였다. 나 또한 처음엔 오방선생을 잘 알지 못했다. 구한말 광주읍에서 태어나 주먹으로 광주를 호령하던 무등산 최망치에서 식민지 민초들의 아버지로 거듭난 그의 삶은 그 자체가 드라마였다. 100분의 연극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제작진 고민이 컸었다. 연극 ‘오방선생’의 모티브가 되었던 문순태 작가의 소설 ‘성자의 지팡이’에 더 자세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아쉬운 분들은 찾아서 한번 읽어보시길.
아무튼 이번 오방선생을 통해 광주의 큰 어른을 되찾은 것 같아 보람 있다. 가장 큰 보람이라면 참 다양한 관객들이 찾아와 주었다는 것이다. 오방 선생의 후손들은 물론 교계, 사회 복지단체, 장애인단체, 대학생들까지 관객층이 넓었다. 특히 아이에게 광주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다고 함께 온 부모님도 있었다. 극장에 찾아와준 관객들의 관심과 성원에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5회 공연에 2천여명의 관객이 찾아왔고,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공연리뷰도 받았다.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어 보지만 한편으론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실 광주에도 연극 팬이 많다. 수준 높은 연극에 대한 갈증이 있어 서울까지 가서 관람하는 일이 보통 수고로운 일이 아닌데, 서울까지 다니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연극 한편 관람을 위해 꽤 많은 시간과 경비가 드는 일이다. 광주 연극계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고 안타깝다. 좀 더 다양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광주에서도 계속해서 선보여야하는데 수준 높은 관객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광주 연극은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서울과 비교했을 때도 뒤지지 않았다. 1988년 시립극단이 해체되고 이후 연극에 대한 무관심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요인이 더해지면서 점점 중앙 무대와 격차가 벌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24년 만에 시립극단이 재 창단 된 만큼 이 점을 무엇보다 가장 큰 사명이자 숙제로 여겼다. 이번 연극 ‘오방선생’은 광주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탄탄한 스토리를 토대로 깊이 있는 연출, 수준 높은 무대 매커니즘을 선보이고자 했다. 이러한 진심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광주 연극에 대한 선입견으로 무조건 외면하는 이들이 있다. 하물며 내 주위 지인들도 그러하니 안타까운 마음 더 말해 무엇하리. 연극 ‘오방선생’ 중의 대사 한마디로 이 마음을 대신하고 싶다. “죽었다고 버리고 간 썩은 나무에도 햇빛과 빗물은 싹을 틔우게 합니다. 병들고 가난하다고 그저 죽게 버려두는 게 옳소이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재공연, 초청공연 건의가 들어오고, 한 방송사에서는 라디오 드라마를 제작해보고 싶다고 문의가 들어왔다. 관심과 응원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광주 1백년사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분들도 있다. 사실 이미 또다시 설레는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숙고의 시간, 인고의 시간을 거쳐 광주 1백년사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볼 참이다. 더디고 느리더라도 뚜벅 뚜벅 길을 가겠다. 지난 주 내내 구동에서 운암동 문화예술회관까지 공연장을 오며가며 상록회관의 흐드러진 벚꽃을 즐감(?)했었는데, 어느새 연둣빛 새싹이 꽃잎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을 들으며 다음 만남을 준비해야겠다./박윤모(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