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기는 잡을 수 없다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
| 2014년 04월 16일(수)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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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기원은 고대의 제사 양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의 영광과 인간의 속죄를 위해 바친 동물을 불태워 나는 연기와 그 냄새를 신에게 닿게 한 번제(燔祭)에서 비롯한 것이다. 영적 존재인 신은 실재하는 동물을 취할 수 없으니 연기로 바꿔서 바치고자 했던 것이다. 향수를 가리키는 ‘perfume’이 ‘연기를 통해서’라는 뜻의 라틴어 ‘per fumum’에서 온 이유다. 이처럼 향수는 기원부터 신적인 면을 갖고 있었다.
영화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는 썩은 냄새가 진동했던 18세기 파리의 한 생선가게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물처럼 냄새로 사물을 구분하고 사태를 판단한다. 후각의 천재였던 그에게 코는 눈이면서 귀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괴물 취급했다. 때로 그의 능력을 이용했지만 대부분 기피했고 심지어 죽이려고 했다. 냄새로 세상을 보았던 그의 몸에서는 정작 어떤 냄새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재는 악마가 된다.
천재를 가리키는 영어단어 ‘genius’는 그리스어 다이몬(daimon)에서 온 말이다. 다이몬은 신의 소리를 인간에게 알리며 참된 행위를 안내하는 수호신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에 의해 다이몬이 점차 잡귀로 간주되다가 점차 악마(demon)를 뜻하는 단어로 변질되었다. 신적 지위를 가졌던 천재는 가치 체계가 바뀌면서 악마로 둔갑한 것이다.
청년으로 성장한 그루누이는 시내를 지나다 향기를 붙잡아 둘 수 있는 향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그날 그는 우연히 자두를 파는 소녀의 향기에 도취되어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그러다 실수로 소녀를 죽이게 되지만 별 개의치 않고 계속 향기를 탐하는 데 몰입한다. 하지만 결국 소녀의 향기가 점차 옅어지자 그는 절망에 빠져든다.
이때부터 그루누이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향기를 향수로 만들어 소유하겠다’는 삶의 목표를 가지고 조향사의 길을 간다.
시간이 흘러 그는 더 완벽한 향수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파리를 떠난다. 온갖 냄새를 뿜어내는 사람들과 도시를 떠나 순수한 자연의 향기와 어울리던 어느 날, 그는 자기 몸에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천재인 자신을 사람들이 괴물 취급한 까닭을 알아차린 순간 자부심은 수치심으로 역전된다. 그루누이는 언젠가 옛 스승에게 들었던 ‘절대 권력을 가진 향수’를 만들어, 매혹적인 향기로 사람들을 지배하리라 결심한다. 어떤 향기보다 사람의 향기가 매혹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열세명의 소녀를 죽이고 그들의 몸에서 향기를 뽑아낸다. 그루누이는 모든 사람을 무릎 꿇게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절대 향수’를 만들지만 곧바로 잡혀 사형대에 오른다.
사형을 집행하는 날, 광장에는 수많은 군중이 모여 ‘죽여라’고 외치고 있다. 그루누이는 그들을 향해 ‘절대 향수’를 뿌린다. 향에 도취한 군중은 머리를 조아리며 그를 천사로 숭배한다. 하지만 그가 얻은 권력은 자신이 아니라 향수에서 온 힘이었다. 향수를 품은 손수건이 군중에게 날아가자 사람들은 무아지경에 이르러 집단 섹스를 한다. 환각에 가까운 광경을 보면서 그루누이는 눈물을 흘린다. 그토록 증오했지만 동시에 간절히 원했던 것은 사람 냄새였고, 그 냄새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남은 향수를 자기 몸에 붓는다. 향기에 도취한 시장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잡아먹는다. 먹고 먹히는 사랑의 관계를 한 번도 갖지 못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의 제의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덧없음을 비켜갈 수 없다. 그루누이가 살해한 자두 소녀의 향기도 흩어지게 마련이고, 집단 섹스를 했던 군중도 다음날이면 수치심에 몸을 가린다. 덧없음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신 아니면 죽은 사물뿐이다. 향기를 가둬 영원을 꿈꾼다 해도 향수의 향기 또한 사라진다. 향수는 향기를 잡을 수 없다.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