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이경일 국립종자원 전남지원장

2014년 04월 17일(목) 19:19

밀은 쌀, 옥수수와 함께 세계 3대 곡물로 꼽히며 인류의 농경시작과 함께 재배된 작물이다. 밀의 기원에 대해 아직까지 확립된 정설은 없으나 ‘인류 최고의 곡물’,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곡물’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그 유래가 인간사와 더불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밀의 기원을 밝혀 보기 위해 많은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지리학, 식물학, 고고학 등 여러 방면의 조사,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BC 1만5천-1만년 서남아시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보편성을 가진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으로부터 밀이 전래되었는데, 그 기원은 B.C. 200-100년경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의하면 평남 대동군 미림리, 경북 경주의 반월성터, 충남 부여의 부소산 등지에서 밀이 발견되었고 마한, 진한, 부여 등에서 밀을 생산하였다고 전해진다. 겨울철 황량한 들판을 파릇 파릇 하게 가득채운 밀밭은 서정적 정취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러한 밀밭을 배경으로 쓴 서정적 문학작품은 또 다른 감흥을 준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구절이 담긴 박목월의 ‘나그네’란 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밀 자급율은 낮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1970년대 15.9%에 달했으나 1984년 국산 밀 수매제도가 폐지되면서 밀 자급률이 1980년 4.8%로 급락했고 1990년대는 0.05%까지 곤두박질 쳤다. 무너진 밀의 생산기반을 회복하고자 민간 주도의 ‘우리 밀 살리기 운동’과 함께 밀의 자급율은 2010년대에 1% 중후반대로 상승한 이후 정체상태이다. 쌀을 주곡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식생활이 서구화됨에 따라 밀 수요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에 기후변화, 가뭄 등으로 국제 밀 값은 폭등하고 있어 밀 자급률 향상은 당면 현안이라 할 수 있다.

밀 자급률을 향상에 가장 큰 저해요인은 밀의 수익성이 낮다는 점이다. 겨울철 작목으로 밀과 경쟁관계에 있는 마늘, 양파와의 10a당 소득을 2011년 기준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 마늘은 300만원, 양파는 190만원 정도인데 밀은 18만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산 밀 가격과 국제 밀 가격을 비교해 보았을 때도 국산밀 가격은 국제 밀 가격보다 3배정도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밀의 수익성을 높이고 고품질 다수확의 밀 종자를 개발하고 생산비를 절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정부는 이모작 활성화 등 경지이용률 제고를 통해 식량자급률을 향상시키는 것을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이모작 활성화를 위해 겨울철 논에 심는 밀에 대해서도 이모작 직불금을 지급함으로써 밀 재배농가의 수익성 제고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기존 밀 품종의 숙기를 단축함으로써 후작인 쌀농사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숙기단축 품종개발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지역 특산품과 연계하여 우리 밀을 활용한 가공기술을 개발하여 가공산업 육성에도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천안 우리 밀 호두과자, 서천 한산 소곡주, 우리 밀 과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고품질 내재해성 다수성 밀 품종개발을 하고 개발된 신품종은 신속히 농가에 보급하는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 국립종자원 전남지원은 제빵용인 금강밀과 국수용인 백중밀의 농가 보급종자를 생산하여 보급하고 있다. 국립종자원 전남지원에서 생산·공급하는 금강밀과 백중밀의 농가보급 종자 규모가 2012년 308톤(금강밀 230톤, 백중밀 78톤)에서 2013년 250톤(금강밀 200톤, 백중밀 50톤)으로 감소추세에 있다. 다만 최근 겨울철 논에 심는 밀에 대한 이모작 직불금 지급 등 정부의 이모작 활성화 정책에 따라 2014년에는 280톤(금강밀 130톤, 백중밀 150톤)으로 밀의 종자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 식품소비에 있어서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의, 환경 등도 고려한 윤리적 소비가 확산 추세에 있다. 외국산 밀보다 국산 밀을 소비하는 것은 푸드 마일리지가 짧아 환경에 유익하고 장기저장에 따른 화학약품 사용도 줄일 수 있어 건강에도 좋다. 현재 농업은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국산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산 밀 소비에 대한 국민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