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안다 이 엄청난 충격을···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4월 30일(수) 20:22

다시 5월이다. 살아있는 광주 사람들에게 아픈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살아나는 5월이다. 1980년 당시 광주시민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겨눈 총에 맞고 이웃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보며 치를 떨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다시 대한민국에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4월, 두 주 동안, 3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 속에 갇혀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본 광주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그 날의 아픔이 연상되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에 몸서리를 쳤다.

지금 광주시민은 물론 국민은 누구 할 것 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해줄 수 없어 정말 미안하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많은 희생자를 낸 단원고 교문 앞에는 바나나 우유, 캔 커피, 초코바 등 등교길에 손에 들고 다녔을 간식거리들이 ‘미안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놓여있다. 이 시간에도 단원고 담장에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이 나라의 어른이어서 미안하다’는 어른들의 속죄가 쌓이고 또 쌓이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국민 여러분 미안해하지 마세요’ 했다. 피해자들끼리 서로를 다독이며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힘없는 국민들끼리 반성하고 자책하며 ‘미안하다’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과 달리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너무 비겁했다. 사고를 낸 세월호 선장과 선원은 승객을 뒤로 한채 제일 먼저 배를 빠져나와 무책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고 수습을 총 지휘하던 국무총리는 시신이 다 수습되지도 않았는데 사표를 내 비겁함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국민은 어른들의 비겁함을 원망한번 못해보고 바닷 속에서 눈을 감은 아이들을 떠올리며 경악했다.

지금 우리는 많이 아프다. 몸도 아프고 정신도 아프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 트라우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 한국전쟁과 맞먹는 상흔’이 남을 거라고 단언했다. 우리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적 상황의 범주 안에 들어간 적이 없고 그에 따라 심리치유가 필요한 사람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외상후 스트레스는 살다가 겪게 되는 스트레스 중에서도 인간이 통상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스트레스, 재앙적 수준의 스트레스를 말한다. 정혜신 박사는 현 상황에서 세월호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핵심 감정은 ‘죄의식’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참전군인이나 재해현장처럼 유가족 사이에서만 공유하는 국소적인 경험이 아닌 이유는 아이들이 수장되는 과정이 느린 화면으로 보듯 전국에 생중계된 것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당하는 걸 속수무책 지켜봤다는 죄책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온 국민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이 복잡하고 안정이 안 되는 이유는 생명을 구하는 시스템이 마비된 이 복마전 같은 사회구조에 국민 모두가 기여했다는 죄의식 때문이란다.

우리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국가가 이런 무능, 무책임, 사악함마저 느끼게 하면 집단우울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PTSD에는 1차, 2차 트라우마가 있다. 배가 침몰된 게 1차 트라우마라면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은 2차 트라우마다. 그런데 PTSD에서 결정적으로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2차 트라우마라고한다. 정신의학의 정설이다. 이번에 우리는 정부의 반응을 보면서 돌이킬 수 없는 2차 트라우마를 받았다.

강용주 광주 트라우마센터장도 참사 후 현 상황을 치유조차 논의하기 어려운 단계라고 말했다. 모두 구조될 줄 알았지만 침몰하는 과정을 맥없이 지켜봤고 그 과정에서 수학여행 간 학생 등 수백명이 실종됐다, 침몰뿐만 아니라 구조·수색 등 수습과정까지도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한민국이 멈췄다. 우리 사회 전체가 심리적 죽음에 이르렀다’는 상황을 광주시민은 체험을 통해 잘 안다. 5·18이후 살아남은 광주사람들은 2차 트라우마로 많은 고생을 했다. 필자도 5월만 되면 구토와 두통에 시달렸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안 될 때는 더 억울하고 분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도 광주시민을 죽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린 너무 고통스럽다.

광주시민처럼 모든 국민이 2차 트라우마로 고통받지 않도록 하려면 사고원인 제공자들과 구조과정에서 책임을 방기한 모든 이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규명이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용서와 양보란 있을 수 없다. 국민 마음에서 ‘죄책감’이 사라질 정도의 처벌과 문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5·18 대학살을 경험한 광주는 사고 이후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안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