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무심했던 가정의 소중함 다시 새긴다 “더 바랄 게 없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 김혜수 기자 kimhs@kjdaily.com |
| 2014년 04월 30일(수) 20:26 |
“가정에 불화가 없어야 한다”는 지나치게 평범한 진리를 알며 생활하면서도 “그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세월호 침몰 사태를 통해 일깨워졌기 때문이다. 비록 힘든 일상일지언정 소중한 가족의 일원으로 아들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 고마운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다.
가슴을 치고 쥐어뜯으며 절규하는 어머니, 목 놓아 울부짖는 아버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한없이 애타하는 할아버지·할머니의 절규를 바라보며 눈물짓던 수많은 부모들의 시선과 생각은 자연스레 내 아들과 딸에게로 쏠렸다. 그들의 재잘거림이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축복임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30일 광주시청에 마련된 침몰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은 주부를 만났다. 서구 쌍촌동에 사는 고3학생의 딸을 둔 박모(50)씨는 “딸을 의대에 입학시키고자 이른 새벽부터 과외를 시키고, 밤늦게까지 공부에만 열중하도록 다그쳤는데 새삼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세월호 단원고 희생학생들을 생각하며, 딸이 건강하게 성장해 주기만 바랄 뿐, 대학은 딸이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두 자녀를 둔 주부 박모(42)씨 역시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하는 아들의 뒷모습만 봐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흐뭇하다”며 “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더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29)씨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문득 침몰 세월호 단원고 희생학생들을 생각하면 ‘내가 이래선 안되지’ 하는 죄책감에 자성을 하게 된다”며 “매번 자신을 달래고, 겸손하게 행동하려 노력한다”고 귀뜸했다.
자녀가 어릴 적에는 스킨십을 수시로 했으면서도 사춘기 이후에는 전혀 하지 않은 가장들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사랑한다’는 표현도 잦아졌다.
공무원 김모(48)씨는 “국가적인 애도 분위기에 모든 행동을 조심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부하라’는 말 말고는 자식들과 특별한 대화를 나누진 않았고, 진지하게 눈을 맞추려고 해보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며 “세월호 사태 이후 가족의 소중함에 자식들과 수시로 대화하는 습관을 들이고자 노력한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변화는 일선학교의 교사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광주시내 모 중학교 최모(45) 교사는 학생들을 대하는 지도법에 변화를 가지려고 한다. 최 교사는 “철저한 학습지도와 과제물 검사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너희가 있어 행복하고 고맙다’는 말을 습관처럼 전하려고 마음먹었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사고 수습에 쩔쩔매는 무기력한 정부의 모습에 분노의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자영업자 오모(59)씨는 “뉴스를 통해 수습과정을 보며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어 대한민국에 사느니 차라리 이민을 떠나겠다”는 푸념을 털어놓기도 했다.
대학에 근무하는 오모(48)씨는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한 학생이 ‘어떻게 후진국에서나 볼 수있는 현상이 경제대국에서 일어날 수 있느냐’의 질문에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얼굴을 붉혔다.
사업상 바쁘고 일에 쫓겨서, 술이 좋아 밤늦게 귀가하던 아버지의 일상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개인사업을 하는 고모(54)씨는 “여태까지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사업을 핑계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데 이제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얘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김혜수 기자 kimhs@kjdaily.com
김혜수 기자 kimhs@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