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힐링명소] 녹색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폐선부지 활력 넘치는 도심공동체 문화 활짝 피다 광주매일신문·광주평화방송·사랑방신문 공동기획 남도 힐링 명소를 찾아서 (17) 광주 푸른길 공원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2014년 05월 06일(화) 18:48

1922년 개설된 이후 70여년 동안 광주시내를 관통했던 경전선 철길이 지난 2000년 폐선된 이후 광주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푸른길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길이 있었다.
그 길 위엔 철마(鐵馬)가 달렸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기적을 울리며 기차는 지붕 낮은 가옥들을 뒤로 하고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또 길이 있다.
이 길을 사람들이 걷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녹음이 우거진 그 길에서 활기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더러는 힘차게 달리기도 한다.
그 길과 이 길은 같은 길이다.
불과 몇 년 사이, 하나는 과거가 되고 또 하나는 현재가 됐다.
지금은 푸른길공원이라 불리는 곳, 바로 경전선 폐철로다.


‘인식의 전환’ 삶을 바꾸고 꿈을 키우다

광주역에서 풍향동을 지나 산수동-남광주역-진월동을 거쳐 효천역에 이르는 10.8㎞의 경전선 철길. 1922년 개설된 이후 70여년동안 숱한 사연을 안고 기차가 오갔던 철로는 2000년 8월10일 폐선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의 역할을 마감했다.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철도는 도시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면서 외곽으로 돌리는 운명을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

기찻길로서의 생명을 다 한 이 곳은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광주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삶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디를 가든, 기차가 다녔던 가난한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숲이 우거지고 시민들로 가득찬 새로운 땅으로 천지개벽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로 시작되는 동요에서 보듯, 기차가 지나가는 바로 옆은 자연스레 가난한 서민들의 둥지가 된다. 잠들만 하면 덜커덩거리며 지나가는 기차는 당시 가장 큰 소음의 하나였고, 이는 집값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당연히 철길 주변은 삶이 녹록찮은 민초들의 차지가 됐다. 주위 환경이 열악한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확 바뀌었다. 행정당국에서 경관이 취약한 푸른길공원 주변 주택가를 ‘소통과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정도로, 이제는 인기있는 주택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예비된 것은 아니었다. 행정당국에서는 금싸라기나 다름없는 땅을 그저 놀이터로 내 놓을 리 만무했다.

광주시는 처음엔 도심철도의 이설부지를 경전철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같은 행정기관의 계획에 맞서 시민들과 환경단체에서 푸른길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2년여 동안 일관되게 시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자 광주시는 이곳을 돈이 되는 사업을 벌이지 않고 공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폐선 전체 길이 10.8㎞ 가운데 외곽순환도로가 가로막은 동성중-효천역 구간을 제외한 7.9㎞를 푸른길공원으로 만들기로 했다. ‘시민참여 도시계획 결정의 첫 사례’가 탄생한 것이다.



주민 손으로 직접 만든 소통의 공간

2003년부터 푸른길 조성사업이 본격 시작됐다. 시민들은 팔을 걷어 부치고 공원조성사업에 동참했다. ‘푸른길 100만그루 헌수운동’을 벌이며 주민들이 직접 설계에 참여하고 공원조성에 땀을 보탰다.

시민들은 시혜적으로 만들어준 공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감으로써 ‘시민참여 녹지조성’의 새 역사를 써 나갔다. 이를 지켜본 광주시는 이러한 시민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민관이 손을 잡고 일을 추진하면서 푸른길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그동안 다양한 사업이 전개됐다.

5개 구간으로 나눠 2003년부터 본격적인 공원만들기에 들어갔다. 맨 먼저 2004년 5월 조대정문에서 남광주4거리까지 535m가 단장됐다. 보행자도로가 만들어지고 벤치가 들어서면서 산책과 가벼운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명소가 하나 탄생했다. 이어 광주천변에서 백운광장까지 1,760m가 완공(2005년 7월)된데 이어, 백운광장-동성중 2,400m(2008년 2월), 광주역-조선대 정문 2,880m(2010년 1월) 구간이 속속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폐선부지가 푸른길로 바뀌면서 주변이 함께 변화했다. 기적소리 대신 새소리가 들려오고, 뒷골목처럼 음습했던 주택가는 푸른길에 어울리게 새롭게 단장됐다. 가볍게 몸을 풀 수 있는 운동기구가 설치된 곳에서는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10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갈수록 우거진 녹음은 시민들의 삶의 태도까지 변화시켰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은 푸른길을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삭막한 도시에서 허둥대며 살다 잃어버린 인간의 정을 새록새록 느끼게 된 것이다. 마음이 통하게 된 이웃들과 보다 멋진 환경을 만들고자 머리를 맞대기도 하고, 군데군데 들어선 푸른길 광장에서 사시사철 펼쳐지는 공연을 함께 즐기면서 이웃사촌의 정을 나누기도 한다. 동명동에서는 주민들이 나무상자로 텃밭을 함께 가꾸는 등 푸른길공원으로 인해 도심공동체가 되살아난 것이다.



쉼터이자 문화발전소로 도심 재생

이처럼 푸른길로 삶의 변화를 실감한 시민들은 이 곳의 소중함을 알고 더 잘 가꾸기 위해 ‘푸른길공원 시민참여 관리·운영조례’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주민들의 쉼터이자 문화발전소인 푸른길공원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스스로 확보한 셈이다. 이들 통해 푸른길공원의 생태·문화적 가치를 높여나가는 다양한 운영프로그램들이 시민들에 의해 기획되고 운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곳을 푸른길 그린타운으로 탈바꿈하는 작업까지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동구청은 산수오거리 지역을 푸른길 그린타운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확정했다. 푸른길 그린타운은 주변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저탄소 저에너지를 지향하는 도심재생 방식으로 조성된다. 사방이 시멘트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보기 드물게 길게 늘어선 녹색의 땅이 광주 최고의 주거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도 시민들은 이 길을 걷는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얘기가 피어오른다. 그러면서 그 길은 역사가 된다. 철마는 과거가 되고 사람들은 또 하나의 역사를 시작한다. 푸름을 가득 안고, 푸른길공원에서 평안한 휴식을 꿈꾼다.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