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들에게 ‘옷 한 벌’ 이제야 선물” ●광주트라우마센터 5.18피해자 10주간 치유여정 (1)문건양씨 고교생 아들 재학군 80년 5월 계엄군 총탄에 숨져 어려운 가정살림에 제대로 못 해줬던 게 한 맺혀 임채만 기자 icm@kjdaily.com

2014년 05월 13일(화) 19:07

광주트라우마센터 수강생 문건양 씨가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진 아들 재학군을 그리며 클레이(점토)를 이용해 집을 만들었다.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세월호 대형참사로 발생한 전 국민의 트라우마는 앞으로 우리 모두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앞서 1980년대 광주·전남지역민들에게 가장 큰 트라우마로 작용했던 5·18의 피해자들은 34주년을 맞아 긍정적으로 살기 위한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2년전 설립된 광주시트라우마센터에 치유의 과정을 밟고 있는 프로그램 수강생들이 최근 10주간의 미술치유의 기록을 세상에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이 어떻게 긍정적인 삶의 연습을 하고 있는지 알아본다./편집자 註

“사랑하는 내 아들 재학이에게 생전에 사회복(사복) 한 벌만 사서 입혀 줬더라믄… 그것이 이날 평생 내 가심에 한으로 맺혀 불었어.”

34년 전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고등학생 1학년의 아버지는 여든이 넘은 지금도 아들을 생각하면 옷 한 벌 선물 못해줬다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친다.

그래서인 트라우마 치유 과정에서 만든 문건양(80)씨의 액자 속 작품에는 그리운 아들이 노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34년만에 아들에게 옷 한벌을 해준 것이다.

문씨의 아들 재학군은 지난 1980년 5월27일 도청에서 계엄군이 쏜 총탄을 맞고 숨졌다.

2남1녀 중 막내였던 재학군은 당시 광주상고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재학이는 군부독재에 맞서 정의심이 투철한 아이였다. 시위가 있을때면 시내로 나가 ‘전두환 물러가라 김대중 석방하라’라는 구호를 따라하며 ‘행동하는 양심’ 이었다.

당시 26일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린 도청에는 재학이가 있었다. 계엄군이 도청을 습격한다는 소식을 접한 부모는 재학이를 찾아 집으로 가자고 사정했지만 ‘친구들을 놔두고 어찌 혼자 가겠냐’고 도청에 남았다.

이 날 밤 도청쪽에서 총성소리를 들은 문씨는 ‘아들에게 큰 일이 있어났구나’하는 직감에 다음날 27일 이른 아침에 도청에 달려갔다. 문씨는 “망월동에 내버려져분 것을 모르고 어만 디로만 찾으러 댕겼제. 6월이 돼서야 친인척과 함께 묘를 파 담임선생님이 재학이가 맞다고 해서 알았네. 티샤츠 입고 있는 사진과 옷이 다 벳겨져서 총알이 몸을 통과한 사진을 보고 통곡을 하고 울었제”라고 당시 회상했다.

문씨의 처절한 아픔은 이후 수년이 지난 5월 주간 금남로 카톨릭센터에서 열린 오월사진전에서 도청 앞 널브러진 아들의 주검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불거졌다.

문씨는 “큰 아들이 오월 전시회에서 재학이 사진을 봤다고 해서 가보니 재학이가 교련복 바지를 입은채 하늘을 보고 드러 눠 있었어”라며 시신속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래서일까. 문씨가 만든 집 작품에는 어려웠던 가정 형편 때문에 맘놓고 해주지 못했던 재학이의 공부방을 만들어주고, 전두환 같은 악당들이 못 들어오도록 철조망 울타리를 치고 경비원도 한 명 세워두고 가로등까지 세웠다. 또 이쁜 각시도 함께 만들어 아들의 행복한 가정을 설계했다.

클레이로 빚어 만든 그 집에 붙인 이름은 ‘천국의 하우스’. 문 씨는 “우리 아들도 거그 천당에 있을 테제. 천당에서나마 좋은 공부방에서 맘껏 공부해 보라는 맘을 담아서 맹글었어”라고 말했다.

또 문씨는 이어 “우리 애기가 겁이 많앴어. 긍께 도청의 마지막 날 그 밤에 그 총성 속에서 갸가 얼매나 겁을 묵었을까 그 생각만 하문 내가 미쳐불겄어. 저 세상에서 지 혼자 외롭지 말고 짝꿍이랑 행복하게 지내라고 이쁜 각시도 엮어줬지”라고 안타까운 부정(父情)을 표현했다.

가슴에 한 맺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문씨는 정기적으로 광주트라우마센터 수강생들과 만나 아픔을 나누고 있다.

/임채만 기자 ic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