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단란한 가정 드디어 이뤘네” ●광주트라우마센터 5·18피해자 10주간 치유여정 (2)안성례씨 가정파괴 된 5·18피해자 사랑의 울타리 형상화 막내아들 제대로 못 살핀 어머니 마음 표현 ‘뭉클’ 임채만 기자 icm@kjdaily.com

2014년 05월 14일(수) 20:18

안성례 전 오월 어머니집 관장이 80년 오월 당시 이루지 못한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친환경 점토를 이용한 집을 만들어 환한 웃음을 보이고 있다.

“가정이 다 파괴된 삶을 산 5·18피해자들이 이젠 사랑의 울타리를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여.”

70대 한 여성이 칼라점토를 사용해 아름다운 집을 형상화한 작품을 들어보이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작품 안에는 가족들이 보금자리에서 정답게 손을 잡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오래전 다같이 이뤘어야 할 꿈이지만 지난 34년간 멈춰 있던 이 장면 속에는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의 자식에 대한 안스러움과 미안함이 같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일까. 안성례 씨는 순백의 종이에 가족을 그려 리본까지 달아줬다. “가족이란 사랑의 울타리 아니겠어? 부모들이 자식들을 쳐다만 봐선 안되고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해줘야지 밝게 커갈 수 있는 거야”라는 신념을 드러냈다.

지난 10주간 광주 트라우마 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5·18피해자들은 단란한 가정을 그려낸 미술작품을 통해 당시 겪은 상처의 치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해왔다.

그 중 한명인 안씨 역시 “가정이 다 파괴된 삶을 산 5·18피해자들이 이젠 사랑의 울타리를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안씨가 만든 작품 속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3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다.

지난 1959년 결혼한 안씨는 80년 5·18 당시 1남4녀를 키우며 기독병원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전남대 영문과 교수였던 남편 명노근씨는 1978년 전남대 교수들이 주축이 된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으로 해직됐고, 이듬해 YWCA구국기도회사건으로 투옥됐다. 명씨는 80년 5월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내란죄 명목으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가 1년6개월여 복역한 뒤 풀려났다. 이후 1984년 전남대에 복직하고 2000년 생을 마감할때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폭압적인 정권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며 관통한 민주인사였다.

남편과 더불어 안성례씨의 인생도 순탄치 않았다. 안씨는 광주민중항쟁 당시 기독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며, 수많은 희생자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래서 한창 엄마의 정이 필요했던 막내 아들 윤석씨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갖고 산다.

안씨는 “위로 누나들은 지들 생각이 정립될 나이여서 그나마 덜 미안한데, 당시 10살이었던 어린 아들을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한 게 늘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더구나 아버지가 수시로 수배와 징역살이를 반복해 친구들 사이에 놀림감이 됐고, 근무로 늦어지는 엄마를 대신해 교도소 면회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일도 아들의 몫이 됐다.

안씨는 “자식이 성장하는 과정에 부모라고 곁에 있어주지도 못했는데, 우리 5남매가 이리 잘 컸단 말이요. 언제가는 자식들에게 표창장을 주는 꿈을 꾸게 됐다”고 말했다.

20대 청춘을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데 보낸 안씨는 인생의 노년기를 맞아 클레이(점토)를 이용해 나만의 정원, 수영장을 손수 만들어 가족들이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수십년이 지나서야 완성했다. /임채만 기자 ic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