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의 권력은 ‘주민 것’이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6월 04일(수) 22:13

대한민국 국민이 평생 이 땅에 살아가면서 진짜 주인 역할을 하는 것 몇 번이나 될까. 대통령 선거는 5년에 1번, 국회의원 선거는 4년에 1번씩 치러진다. 지방의회 및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4년에 1번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기대여명표에 따르면 20세 경우 앞으로 살 세월이 61.91세다. 선거를 빠뜨리지 않는다면 대통령을 뽑을 기회는 12번. 국회의원과 지방선거는 각각 15번 가량이 된다. 50세를 기준으로 보면 참정권을 행사하는 날이 평생 한달에도 못 미치는 23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50대인 필자의 경우 6·4지방선거를 했으니 이제 투표할 날이 20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지난 1개월 동안 ‘왜 투표를 해야 하는가’ 성찰하고 또 성찰했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000만이 넘은 영화 ‘변호인’에는 이 조항이 배우 송강호의 입을 빌려 명대사로 탄생했다. 변호인 송강호가 법정에서 외친 ‘국가란 국민입니다’란 말이 그것이다. 하지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가는 곧 국민’이란 말에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지역민이 지역의 주인’이란 진리에 흔쾌히 동의하는 지역민도 많지 않다. 선거 때 말고는···.

더 안타까운 것은 선거날 하루 인식한 그 주권도 선거가 끝나고 나면 곧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참정권을 통해 선택을 했으면 그 선택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하고 간섭해야 하는데 금방 잊어버린다. 6·4지방선거 과정에서 유권자에게 지난 4년 동안 우리 동네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는 내용이 있느냐 물어본 적이 있다. 큰 사건이나 비리 외에는 별로 아는 내용이 없었다. 무관심과 무시, 냉소가 컸다.

필자는 ‘지방선거가 왜 중요한가’ 근본 물음을 지역민에게 계속하면서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 병폐들이 지방선거를 통해 해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느꼈다. 지역정치는 나와 거리가 멀고,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잔치이며, 그놈이 그놈이고, 선거를 통해 사람을 바꿔봐도 별 달라지는 것도 없다고 경험하면서 정치에 대한 환멸을 키우고 있었다.

어쨌든 6·4지방선거 결과가 나왔다. 자신이 지지했던 사람이 됐든 안됐든 선거 이후에도 지방자치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나아진다. 투표를 하기는 했지만 선거를 통해 별로 달라지지도 않았고, 삶이 나아지지도 않을건 뻔하다며 냉소하고 포기한다면 우리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변화는 어렵다, 그러나 이루어질 가능성만 있다면 그것이 가장 길다운 길’이라는 하워드 진의 말처럼 현실에 굴복하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한국민주주의 불꽃을 당긴 광주·전남은 이제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대변화에도 불꽃을 먼저 당겨야 한다. 지방정치가 더럽고 추하더라도 이를 냉소하고 등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지역 정치가 바로 내 삶과 우리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문제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참여를 통해 변화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실천을 해야 우리가 부러워하는 저 선진도시처럼 ‘좋은 곳’에서 우리 아들·딸·손자들이 살게 된다.

주민들이 대표를 선출해놓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은 결과 얼마나 부패하고 부패했는가.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시의원과 군의원, 시장과 군수가 내놓은 공약집을 버리지 말고, 다시 한번 살펴보고, 현실성이 있는지 따져보고, 불필요한 것이 있다면 버리자고 제안해야 하며, 꼭 필요한 부분이 빠졌다면 의제 설정 다시 해달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낸 혈세로 월급을 받기 때문에 감시하고 견제하면서 주민 몫을 챙길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부각된 ‘새로운 변화’라는 키워드를 잊어서는 안 된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민의 마음을 사려는 후보는 너나 할 것 없이 변화를 외쳤다. 구태를 벗고 변화를 주도하겠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개조와 혁신을 이야기했다.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진정한 변화는 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시민 목소리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편견과 텃세를 벗어던지고 겸허한 자세로 변화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갑과 을이라는 권위주의적, 강압적 소통방식 대신 수평적이고 폭넓은 소통을 통해 변화의 지향점을 함께 찾아내고 만들어가야 한다. 소통되지 않는 변화는 또 다른 모습의 일방통행일 뿐이다.

잘 알다시피 변화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뼈를 깎는 고통이 뒤따른다. 많은 이들이 함께 동참해야 진정한 변화가 찾아온다. 화려한 말잔치로 끝나는 변화는 정체와 낙오만 남길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여실히 경험해왔다. 일방통행식 변화는 결코 제대로 된 변화의 결과물을 가져올 수 없다. 그것은 변화를 외치는 사람의 자만이고 독선일 뿐이다.

‘세월호 초상집’에서 치른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제 시작이다. 더욱 철저한 자기성찰이 요구된다. 말로만 외치는 변화는 아닌지, 내가 진정으로 변하고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당선자는 지역민이 위임한 권력이 ‘자기 것’이 아님을 미리 새기고 출발해야 한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