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너무 수준 이하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6월 18일(수) 20:37

“일본이 이웃인 것은 지정학적 축복이며, 미군이 없는 한국은 상상조차 안 된다. 해방은 미국이 해 준 것이니, 그의 역사인식에 항일투쟁을 해 오신 의병과 독립군이나 민초들의 저항정신이 설 자리는 없다” “조선사람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체질상 맞고, 공산주의화 되는 것을 막고 미국을 붙잡기 위해 하나님이 6· 25를 주었다.”

대한민국 국무총리 지명자 문창극씨의 주장이다. 칼럼 쓰는 일을 하고 있는 필자는 요즘 문창극 총리지명자의 칼럼 논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문창극씨가 중앙일보 주필로 있을때 강연과 글을 통해 했다는 이런 해괴한 주장은 동네 에서 이장이 했다 해도 뺨맞을 짓이다.

비난이 거세지자 문 후보가 한 변명은 더 어처구니없다. ‘종교인으로 교회에서 한 말이다’는 것이다. 이 변명 때문에 필자는 더욱 총리를 하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이 사회 리더계층에 계신 분이 교회용과 공직용 발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사람의 말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데 생각이 계속 달라진다거나 자리에 따라 다른 소리를 한다면 어떻게 신뢰하겠나. 이런 식이면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와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다른 소리를 할 테고 그렇다면 어느 나라도 한국 총리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후보자로서 이 발언 자체가 중국과 일본에서 다른 파장을 일으키는 것만 봐도 이 나라에 큰 손해를 주고 있다.

문 후보는 변명에서 비판자들이 자신의 칼럼 내용을 왜곡 해석하고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칼럼 쓰는 직업을 가진 필자가 볼 때, 그의 글은 분명 문제가 있다. 칼럼이란 자신의 철학과 생각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평소 하지 않고 그런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고의 근간에 반민족적, 반자주적 역사관과 몰역사적 이념편향이 있지 않고서는 감히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상처와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 일제강점기와 6·25를 ‘하나님 뜻’이라고 말할 수 없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배상문제는 이미 40년 전에 끝났다. 끝난 배상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당당한 외교’라는 주장은 우리 헌법과 대법원 판결은 물론 정부의 공식 견해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본 사법부와 일본변호사연합회의 법적 견해와도 달리하는 것이다. 문 후보자는 20여년이 넘도록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모멸감과 수치심을 안겨주었고 반성을 모르는 일본 전범들과 같은 역사관으로 오히려 그들보다 더 큰 상처를 입혔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문 후보의 이런 발언을 일본 극우파들과 언론이 대대적으로 이용하고 있어 일제 피해자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국민과 시민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 겨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현안을 한·일 외교 협상테이블에 올린 상황에서 총리 후보가 정부의 입장과도 상반된 극우적 발언으로 민족적 자긍심을 철저히 짓밟아 놓은 것은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

더군다나 ‘제주 4·3을‘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폭동’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서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란 얘기다. 그러면 2013년 국회가 4·3특별법개정을 통해 4·3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했는데 폭동을 추념하자고 결정한 국회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헌법에는 “총리는 동법에 따라‘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위원장이 된다”고 명시돼 있다. 만약 총리가 된다면 양심과 신념을 버리고 그 직무를 수행할 작정이었는가.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우리 국민은 이미 문 후보에게 충분히 큰 상처를 받았다. 전국에서 일어나는 사퇴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초등학생도 할 수 없는 수준 이하의 역사인식 때문이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를 비롯해 조계종 중앙신도회 등 20여 개 불교 신도 단체, 성균관,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대한변호사협회, 민주노총,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한국진보연대 등 시민단체, 한국역사연구회, 제주4·3 유족회 등 시민사회·학계·종교계를 망라해 전방위적인 사퇴 성명이 이어지고 있다. 건국 이래 이렇게 다양한 단체들이 총리 지명에 반대하며 철회를 요구한 적이 있었는가 싶다.

이 글이 나갈 때쯤이면 이미 문 후보자가 사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 후보가 국민 여론에 밀려 사퇴한다하더라도 계속되는 인사 참사 책임은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수준과 의식을 고려하지 않은 이런 형편없는 인물을 국민에게 들이댄 혼란의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다.

국정은 인사에서 시작하고 인사에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요한 작업을 어떻게 이렇게 우습게 할 수 있는지 정말 의아하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 지겨울 정도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인사가 망사’가 되는 경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제도와 시스템이 훌륭히 갖춰져 있어도 이를 운용하는 사람을 잘못 앉히면 그 제도나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된다. 전문성과 공공성, 책임감과 사명의식을 지닌 인물을 찾아 중용하는 것이 국정 책임자의 가장 큰 일 중의 하나일텐데 이 중요한 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지 모르겠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국가관은 정말 중요하다. 국가를 책임지는 이들의 역사관과 국가관이 많은 국민들과 다르다면 국민과 늘 충돌할 수밖에 없다. 다시는 이런 인사참사가 없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어떤 책임자를 원하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국민 전체를 위해 정말 유용한 인물을 찾아야지 ‘내 식구’를 찾으면 적합한 인물을 찾아내기 어렵다. 야당측 인사 가운데서라도 적절한 사람을 찾아 삼고초려의 정성을 기울여 기용하는 모습을 국민은 보고 싶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