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이 물가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97)

2014년 07월 14일(월) 19:59

寄鄭代言 (기정대언)
가정 이곡

일생을 다한 마음 조각배와 같아서
한 바탕 웃고 오니 모두가 흰머릴세
그래도 벼슬 꿈꾸었던가 물가인 줄 모르고.

百年心事一扁舟 自笑歸來已白頭
백년심사일편주 자소귀래이백두
猶有皇朝玉堂夢 不知身在萩花洲
유유황조옥당몽 부지신재추화주

자신이 늙었음을 생각하면서 젊은 날 벼슬길에 목을 매달았던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예나 이제나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과장 자리에 승진하려고 몸부림치거나 교장 한번 하려고 온갖 잔꾀를 부리면서 점수를 확보하는 어줍않은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올 때가 더러 있다. 임금의 명을 대신 전하는 대언(代言)에게 질곡의 삶을 사는 인간사의 헛됨을 자기 처지와 비교하면서 비유적으로 전달하면서 정겹게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자신의 몸이 물가에 있는 줄도 모르고(寄鄭代言)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으로 고려 충숙왕 때의 학자다. 백이정·정몽주·우탁과 함께 경학(經學)의 대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가전체 작품 [죽부인전]과 100여 편의 시가 [동문선 東文選]에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일생을 다하여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한 조각배 같아서 / 스스로 웃고 돌아보니 이미 흰 머리되었네 // 그런대도 오히려 벼슬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니 / 자신의 몸이 맑은 사철쑥 피는 물가에 있는 줄도 모르고]라는 시상이다.



위 제목은 [정대언에게 주다]로 번역된다. 한시의 대체적인 경향은 나이 연만하여 쓴 작품이 많다. 꿈 많은 시절도 있었건만, 승승장구의 벼슬길도 있었건만 이제는 지나간 꿈이었음을 회상한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을 뒤돌아보고 회한에 젖어 있음을 살핀다. 어쩌면 질곡의 삶에 시달리다가 피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인생을 정리하는 길목에서 자신이 한 조각의 배와 같다고 심회한다. 덧없는 세월을 보내고 스스로 웃고 돌아보니 검은 머리가 흰 머리가 되었다고도 회상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 일반적으로 느끼는 그런 생각도 시인은 애써 회피하려도 하지 않는 초연한 모습이다.



그래서 화자는 바둥 바둥 실오라기 같은 벼슬길의 길목에서 힘들었던 모습도 그려내고 있다. 남을 비방도 했을 것이고, 강한 성취의욕으로 시기와 질투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늦가을에 피어나는 사철쑥이 언제 어떻게 될 줄도 모르는 물가에 피워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시심을 떠올리고 있다.

※한자와 어구

百年心事: 일생의 심사. 一扁舟: 한 조각의 배. 自笑: 스스로 웃는다. 歸來: 돌아보다. 已白頭: 이미 흰머리 되었다. // 猶: 오히려 有: 있다. 가지다. 皇朝玉堂: 벼슬살이. 夢: 꿈. 不知身: 자신의 몸을 알지 못하다. 在萩花洲: 맑은 사철쑥 피는 물가에 있다. [萩花]는 사철쑥 또는 인진쑥.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