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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생기기만 하면 좋은 걸까?

천세진
칼럼니스트

2014년 07월 15일(화) 20:06

얼마 전 경북 영주의 부석사를 가야할 일이 있었다.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 끝내 가지는 못했지만, 영주까지 가는 길은 출발하기도 전에 주눅들만 했다. 자가용으로도 여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영·호남의 심리적 거리가 물리적으로 먼 길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아주 잠시 길이 뻥 뚫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더불어 했다.

제주 올레길이 개발된 것이 7년 전인 지난 2007년이다. 이후로 전국에서 제주 ‘올레길’의 복제품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렇게 생겨난 길들이 아마도 족히 수백은 될 것이다. 길이 소통을 의미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고무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전국 곳곳에 몸속 모세혈관처럼 길이 생겼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길들은 ‘힐링’, ‘사색’, ‘문화’ 등 그럴듯한 개념들로 치장하고 있어 대중의 환호까지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길을 만든 이들도 그 길을 찾는 이들도 길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맑은 공기 속에서 ‘힐링’한다는 측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겉으로 드러난 그런 결과물들 외에 물론 다른 것도 생겨난다. 새로 만들어진 길은 분명 뭔가를 만들어낸다. 아주 우연적으로 탄생한 것들도 뭔가를 만들어내는데, 목적 지향적 산물인 ‘길’은 더 말해 무엇 할까. 길 주변의 땅값과 건물 값이 무엇을 창출했는지를 방증하고 있다.

우리는 여러 길들을 알고 있다.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아랍문명 등에 연결됐던 실크로드도 있고, 지금의 콜롬비아에서 부터 에콰도르,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까지 연결되었던 잉카제국의 ‘카팍 냔’도 있고, 로마제국의 곳곳으로 뻗어 나갔던 ‘아피아 가도’도 있다. 여행자들이 꿈꾸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가는 길)’도 있다.

우리는 이 길들에 어떤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실크로드는 무역로였고, ‘아피아 가도’와 ‘카팍 냔’ 은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길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굳이 성격을 부여하자면 삶의 길이나 문화의 길쯤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길이 하나의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다만 어느 의미를 두드러지게 대변할 뿐이다. 길은 모든 것이 드나든다. 실크로드는 문화만 통한 것이 아니었다. 실크로드는 전쟁을 위해서도 대단히 유용한 길이었다. ‘카팍 냔’과 로마에서 뻗어나간 길도 마찬가지였다. 군사 정복을 가능케 한 패권의 길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경제적 이득이 자리하고 있었다. 올레길은 어떤가?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길이고, 문화의 길이지만, 그 배경에도 역시 경제적 이득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올레길 이후에 생긴 전국의 올레길 복제품들은 사실상 경제적 목적이 가장 큰 배경이다. 역시 복제는 원본의 특정 측면을 극대화 시킨다.

한동안 ‘노마디즘’이 열풍처럼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를테면 정체되어 있지 말고 새로운 길을 내자는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Toynbee, Arnold Joseph / 1889-1975, 영국)는 “노마드는 좋아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노마드가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목민들은 삶의 존속(생존 욕구)을 위해 이동을 택했다는 것이다. 중국 북방 민족의 중국 침략은 대체로 가을에 이루어졌다.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큰 목적이었다. 침략에는 물론 탐욕도 들어 있다. 그러나 고대로 갈수록 탐욕은 적은 부분이었고 생존이 우선이었다. 현대로 올수록 탐욕이 생존 욕구를 압도한다. 노마디즘이 극대화된 다국적 기업은 그 상징적 존재다. 그들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길을 통해 인간에게 접근하고, 길이 없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길을 만들어낸다. 대중의 입에 그토록 오르내렸던 노마디즘은 다국적 기업이 만든 주문에 다름 아니었다.

열풍 같았던 노마디즘 신봉이 만들어낸 것은 무엇이었나. 돌아보라! 뭐가 남아있는지…. 아무 생각 없이, 대비 없이 길이 열린 곳에서는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밀포드 월포드 (Milford Wolpoff, 인류학자)는 “당신은 폭력을 통한 방법을 제외하고서 한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을 대체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길을 만드는 곳에는 거의 언제나 반드시 목적을 가진 인간이 서 있다. 그는 그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누군가의, 전혀 다른 양식을 가지고 있는 삶의 터전으로 들어간다. 청동을 쓰던 곳에 철을 가지고 들어가고, 차를 마시고 있던 곳에 마약을 가지고 들어간다. 그처럼 인류사에서 길을 통해 들어온 새로운 것들은 이전의 양식들을 대체했다. 그 대체는 동시에 이전 것들의 절멸을 의미하기도 했다. 올레길 조차도 길이 만들어짐으로 해서 이전의 것들을 대체했다. 그것은 정신적인 의미만도 아니고 물리적으로도 명백한 사실이다. 올레길이 길이 아니었던 때, 길의 명맥을 잃고 있었던 때, 그 주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은 더는 예전 그대로 있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길은 그렇게 이전의 삶을 달라지게 만든다.

길은 형태만으로도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길의 형태는 그 길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웅변한다. 유럽 대도시의 길은 도시 중심을 향해 방사선으로 만들어졌다. 로마가 만든 도시인 런던과 파리가 대표적이다. 중심에서는 모든 길의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그것은 감시와 통제를 위한 길이었다.

길은 이처럼 시간, 공간, 형태적 배경에 따라 다른 의미들을 갖고 있다. KTX, 도시철도 등의 문제도 그렇다. 밀고 당김에는 분명한 배경이 있다. 득실 계산에서 벗어나 그 영향과 미래를 생각해 주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