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매일신문 기사 프린트

모범의 실체(實體)

조영환
수필가

2014년 07월 16일(수) 19:19

스스로 행동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따라 하기는 좀 더 쉬울 수 있다. 그래서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따라할 대상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 우리는 모범을 보고 배운다고 한다.

‘모범’ 하면 우리는 도덕적, 사회적, 법률적으로 본보기로 삼을만한 대상을 떠올린다. 태도나 행동을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지어낸 것이 아니라 인품과 성격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결과가 아름답고 정의롭고 합리적일 때 타인의 관점에서 평하는 말이다. 따라서 스스로 모범입네 떠들거나 내세운다면 이는 모범이 아니다.

얼마전 모대학 홍보실장이 명함을 내밀며 (사)21세기여성발전위원회 서류 두 장을 내 앞에 내밀었다.

그러면서 귀사 회장, 부회장 두 분 형제를 금번 (사)21세기여성발전위원회에서 추천, 제12회 국민모범인상 수상자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됐다고 하면서 두 경영자께서 수상을 수락해 주십사 하는 내용이었다.

역대수상자를 살펴보니 고인이 된 장관, 국민MC 송해 선생을 비롯 많은 기관장, 독지가, 기업인들의 면면을 읽을 수 있었다.

수상대상자 통보서류 두 장을 들고 들어가 두 분께 수상자 선정취지를 각각 설명했으나 수락여부는 답이 없었다. 두 분 다 많은 생각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국민모범인상이라 하니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던 것 같았다. 아마 두 분은 과연 국민들에게 내놓을만한 자기 공적이 무엇이 있는가 스스로 자문자답을 하시면서 부담스럽게 느끼고 계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래서 모범인이란 뭘까 사전을 펼쳐봤다.

모범은 배울만한 본보기라 하였고 모범인은 타인보다 무엇인가 월등한 사람이라 했다. 얼마 후 나는 우리 기업 두 분의 경영자 회장(88), 부회장(77)께 다시 수상의 수락을 받기 위해 모범이라는 단어의 뜻을 새삼스럽게 설명 드리고, 추천의 관점은 첫째 형제간의 우애요, 둘째는 욕먹지 않고 자수성가한 기업 경영자로써 지역사회에 환원과 그늘진 곳에 대한 배려 등이 수상자로 결정된 배경이었다고 설명을 드리고 나니 그때서야 마지못해 어렵게 수상을 수락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근래 국회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과오나 결점 없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정인을 놓고 생을 평가하기 또한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도자가 되는 것보다 모범을 보이며 살아가기가 더욱 어렵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우리 주위에서 모범이란 말이 어두. 어미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예를 들면 모범운전택시(Best Driver)라는 게 있다. 이 택시는 검정색 대형차에 대게 호텔이나 국제공항같은 곳에서 손님을 기다리는데, 운임도 비싸서 서비스도 좋겠지 하는 선입견을 갖는다.

이 차가 지리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 탑승했을 때 만약 이리저리 돌아서 주행거리를 속이고 부당요금을 청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범’은커녕 불법행위가 아닌가.

모범이발소라고 표기된 곳도 있다. 이 이발소는 친절하고 청결하며 이용기술이 뛰어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퇴폐행위를 안하는 이발업소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 근처 미장원에 ‘모범요금 미용실’이라 적혀있는 곳이 있어 눈이 자주 갔었다. 요금이 다른 업소에 비해 월등 쌀 것이라고 생각되어 어느 토요일 시간을 내서 한번 들린 적이 있다.

미장원은 한적하다 못해 아무도 없었다. 한참 기다리니 방에서 나이 드신 아주머니가 나오시더니 무조건 앉으라하신다. 밑에는 잘린 머리카락이 수북 쌓인 의자 위에 앉았다.

아주머니는 천을 목에 휘감더니 다짜고짜 바리캉으로 아래 부분부터 밀기 시작하는데, 마치 옛날 훈련소에서 삭발하듯 생머리도 몇 개 뽑으면서 득득 미는 것이었다. 피부가 섬뜩섬뜩하여 하늘로 피하려는 듯 고개가 위로 뽑혀지는 것이었다. 머리를 감는데도 묵은 비눗물과 물때냄새가 코를 찔렀다. 미장원의 위생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모범요금 미용실이라더니 모범이 아니었다. 다만 요금만 헐값이었을까.

소위 모범이라는 실태가 이 모양임을 보아온 나로서 우리 회사의 CEO 두 분께 ‘국민모범상’을 받으시라고 건의한 것이 과연 그 분들을 위한 일인지, 혹시 누를 끼치는 일은 아닌지 한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대기 중에 산소가 있어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고, 고인 바닷물도 소금기가 있어 썩지 않듯이 여기저기서 남모르게 선행을 하는 이들이 있어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우리 CEO 두 분도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성미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 ‘모범’의 진면목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사회를 위해 모범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적절했다고 본다. 말로만의 모범이 아니라 실체적 모범의 촛불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환히 밝혀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