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지자체장의 책임은 ‘무한대’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7월 16일(수) 19:19

7월1일 전국 모든 지자체장이 취임식을 가졌다. 취임사를 훑어보니 ‘시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이 가장 많았다. 지역민이 뽑아줬으니 지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한데 취임사에 굳이 ‘시민만 바라보겠다’고 강조한 이유는 그동안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지난 5월 미국 뉴욕에서는 우리 지자체장들이 타산지석 삼을만한 사건이 있었다.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이 한 끼 식사를 잘못하는 바람에 한바탕 곤욕을 치뤘다.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있는 한 피자 가게에서 열린 정치 모임에서 칼과 포크를 사용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피자는 손으로 접어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뉴욕 사람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식사 예절을 보여준 것이다. 그 모습이 매스컴을 타는 순간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서민정서와 맞지않는 귀족 취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뉴욕시민들은 인터넷상에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시장이 되겠다더니…. 당신도 별수 없군요” “낮에는 서민 시장, 밤에는 귀족 시장”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시장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등 갖은 비난을 퍼부었다.

급기야 ‘블라시오 시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글이 인터넷 공간을 도배했다. 시장 후보 시절, 연봉을 1달러만 받고 봉사한 전임 블룸버그 시장을 ‘귀족 시장’으로 몰아붙였던 행적까지 들춰내며 무차별 공세가 계속됐다. 이쯤해서 살짝 의문이 든다. 우리 정서에 비춰볼 때 과연 칼과 포크로 피자를 먹은 뉴욕시장의 행동이 탄핵감일까. 굳이 그 장면을 찍어 인터넷에 유포하고 해명까지 요구한 뉴욕 시민의 정서는 뭘까.

‘서민 시장을 자처해 온 자신의 말에 책임 져 달라’는 무언의 압력이라고 보여진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권자가 직접 뽑은 민선시장에 대해 무한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보상 심리가 은연중 깔려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선거 기간 동안 전 시장을 기득권 세력으로 블라시오 후보가 시장으로 취임하는 순간, 똑같은 도덕적 잣대를 자신에게도 적용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뉴욕시민은 민선 시장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들에게는 냉혹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7월1일부터 시작한 광주·전남 지자체장도 선거과정에서 가혹하리만큼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그들이 후보에서 지방권력의 실체가 된 후에는 다소 너그러운 잣대를 갖는 것이 우리 정서다.

예를 들면 선거 때 ‘시민의 머슴’을 자처한 지자체장들이 당선 후에 고급 관용차로 출근을 하고, 수행 비서를 늘 대동하고 다니며, 갖춰진 장소에서만 식사를 하고, 행사장의 고정 상석에서 예우받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뉴욕시민이 ‘포크로 피자 먹는 시장’을 비판하는 시각으로 우리 지자체장을 비판하자면 매일 그들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수십가지도 더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 지자체장 업무 방식 진행 방식 중에 가장 많이 하는 ‘시민 참여 방식’이라는 각종 위원회 운영을 보면, 시민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불러들여 한정된 의견을 청취한다. 광주시와 전남도, 각 기초지자체에는 수백개의 자문위원회가 있고 1년에 서너차례 회의를 연다. 광주·전남 등 지역 광역자치단체는 평균 110개씩, 기초자치단체는 평균 70개씩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30% 정도는 1년에 한 번도 회의를 열지 않은 ‘유령 위원회’다.

지자체가 자문위원회를 두는 목적은 민간 전문가와 주민 대표를 행정에 참여시켜 행정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민선 지자체장은 선거에 활용할 조직과 인맥을 관리하거나 선거 때 신세 진 사람들에게 자리 하나 마련해주려고 위원회를 마구 만들었다. 지자체 중에는 기능상 차이가 없는 중복 위원회도 허다하다. 그리고 지자체장이나 공무원들은 정책이 잘못돼 문제가 생기면 ‘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한 정책’이라고 둘러대며 책임 회피 수단으로 이용할 때도 많다.

‘지방자치의 민주화’를 화두로 내 건 광주시와 전남도는 위원회별로 회의 날짜, 참석자 명단, 발언록, 회의비용을 공개하고 실질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위원회는 대폭 정비해야 한다. 만약 지자체장이 위원회 위원들의 의견만 참고하고 시민 의견을 다 물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바로 거기서부터 시민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사실 지자체장이 세심하게 눈을 돌리면 시민들 개개인의 24시간에서 지방행정과 무관한 일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시게 되는 물, 출퇴근길·등하굣길의 편리성, 공기오염, 재해대책, 관광경쟁력, 안전대책, 주거문제 등 시민의 재산과 안전, 편의에 관한 모든 일이 지자체장의 관장 업무이기 때문이다.

임기가 끝난 후 진정한 ‘시민 단체장이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시민들의 24시간을 위해서 정성을 다 쏟아야 한다. 빚이 많은 광주·전남 경우 가장 먼저 빚 청산 고민을 해야 하며, 현안에 대한 비전을 치밀하게 제시해야한다. 무비전, 무철학, 무의지는 무능한 지자체장의 전형이다. 기초든 광역이든, 단체장이 된 즉시, 자신은 지역에 대한 무한책임을 진다는 점 잊지 말아야 한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