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라시아 ‘문명 충돌’의 서곡 김영술 |
| 2014년 07월 22일(화)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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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항공 소속 여객기가 얼마 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미사일에 격추돼 승객과 승무원 298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이번 사건은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에 의해 촉발된 위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세계 언론은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냉전 후 최악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문명과 서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문명 간의 충돌로부터 기인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의 분리 독립 운동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서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지정학 개념의 창시자 맥킨더는 유라시아 대륙내의 중앙적 위치(동유럽)를 장악하는 자가 결국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의 ‘심장지대’에 해당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머리를 잃는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러시아는 ‘러시아의 길은 러시아에 있다’며, 러시아적인 것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갖추고 있는 슬라브주의와 서유럽의 문명이야말로 ‘인류 보편의 길이다’고 주장하면서, 서구의 길이 사회발전의 진보라고 보았던 서구주의가 1840년부터 러시아 지성사의 중심이 되어왔다.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이끌면서 ‘러시아의 길’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유라시아주의이다. 유라시아주의는 미국적 삶의 형상을 복사하는 단일한 양식의 아틀란티스적 문화의 획일화, 동질화에 대한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족, 마을, 공동체, 종교 등 전통적 가치의 회복과 복권을 강조하며, 서양 문명의 경제적 풍요 뒤에는 완전한 정신적 타락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미국 중심의 서구주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유라시아주의는 ‘강한 러시아’에 대한 염원과 향수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소련 해체의 상실감과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동안 이념적 목표를 상실한 러시아인들에게 유라시아주의는 다시 메시아적 사명을 부여하는 대안 문명 역할을 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러시아는 이슬람계,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범 유라시아 연합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유라시아연합의 구상은 한국 정부의 남-북-러를 잇는 물류협력사업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접속하기에 안성맞춤이며, 한반도의 남과 북 간의 교류에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은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인 세계질서의 패권을 공고히 하고자 하면서, 문화, 인종적인 측면에서 기독교 문명 간의 대립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감소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 문제가 그 핵심이다. 정치, 군사적으로는 미국 주도로 한 나토의 동진과 확대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나토에 대항하는 군사기구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중시하면서 견제하고 있다.
앞으로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는 벨로루시,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유라시아경제연합 구축을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구소련 국가들의 가입을 통해 이 공간을 경제블록 확대로 시장영향력 증대를 도모할 것이나, 정치적으로는 독립을 선언한 우크라이나의 동남부의 도네츠크 주와 루간스크 주에 대해 인종적, 정서적 특성상 크림반도와 같은 수순을 밟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유라시아 통합 차원에서 지지하는 세력이 많으며, 또한 어긋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일 것이다. 우선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에서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주민들을 분리주의자, 테러리스트로 칭하며, 우크라이나 정권의 토벌작전을 국가의 고유권리로 옹호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서방과 손을 잡고 러시아와 분리 요구지역의 고립보다는 전체 국토와 국민들의 요구를 수렴하는 협의와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첫째, 우크라이나 정부는 동남부와 북부지역 주민들도 한 국가의 주민으로 공존할 수 있도록 서로 갈등의 현실적 조건과 차이를 인정하며, 각 지역의 특성에 따른 국제협력 관계를 수렴해 내는 연방제 같은 국가로의 전환을 고려하는 헌법 개정의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둘째, 미국, 유럽의 일극체제는 서방과 비서방의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 가는 것은 새로운 균형을 위한 첨예한 갈등만이 존재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서방을 중심으로 한 유럽 문명과 비서방 진영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문명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지금의 정치, 경제, 종교의 잣대에서 벗어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다양한 형태로 공존하는 다극 체제의 인정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