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함을 잊지 말자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7월 23일(수) 20:26

지난 100일은 참 끔찍했다. 매일 울컥울컥, 바닷물이 목에 차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는 순간 그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대한민국의 일상을 단숨에 멈추게 한 세월호 참사 발생 100일,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단 한 명의 소중한 목숨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던 금쪽같은 시간들을 총체적 무능과 혼란으로 허송한 사실을 거듭 확인하면서 망연자실, 끝없는 비탄의 나락에 빠져들었다.

도저히 사람 실어나를수 없는 고물배(세월호)의 복마전과 같은 부정과 유착의 그물망, 감독당국·구조당국의 무게를 달 수 없는 무책임 앞에 고개를 떨궈야 했던 100일이었다. 대통령이 눈물의 사과를 하고 국가개조, 국가혁신을 수차 다짐했지만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물러난 총리가 다시 자리에 앉는 코미디도 있었다.

전 국민이 ‘잊지않겠다’며 유가족을 다독이고 진상 규명을 외치고 특별법을 만들라고 악다구니를 쓰며 보낸 100일 동안, 세월호 참사로 331명이 입건되고 139명이 구속됐지만 정작 윗선 책임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만 찾으면 다 될 것처럼 온 국력을 쏟았지만, 그는 시체로 돌아왔고, 여전히 10명은 진도 바다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100일을 기점으로 언론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수많은 반성과 반성, 또 다른 울분이 표출되고 있지만, 그 역시 충격과 슬픔, 고통과 분노의 현재진행형일 뿐이다. 돈이면 다 되는 천박한 물질 숭상주의와 부패한 관료사회, 무능과 부정으로 얽힌 대한민국의 민낯은 언제 가려질 것인가~.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바람은 100일 동안 한결같았다. ‘우리를, 세월호가 준 교훈을 잊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호 참사가 온 국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까 두려워했다. 심지어 위로 받아야 할 자식 잃은 부모들이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을 하며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글픈 나라가 우리나라다. 죄 지은 사람들은 큰소리를 치고 피해자가 무릎꿇고 단식하고 사정하는 사회, 정상인가.

정상 아니다. 우리 국민은 이 정상이 아닌 상태로 계속 불안하게 살아야 한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세~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사회의 안전의식 및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조사 결과, 대한민국은 ‘안전한 국가’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 84.7%는 우리나라를 안전하지 않은 국가라고 생각했다. 안전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73.7%로 매우 높았고, 향후 세월호 사고보다 더 큰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86%에 달했다. 사고 이후 정부 대처에 대해서는 전체 77.1%가 세월호 사고 직후, 정부가 잘 대처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에게도 세월호 사고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무려 85.9%나 됐고, 안타깝게도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없으며 나에게도 세월호 사고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무려 85.9%에 달했다.

이 조사를 보면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다. 당연히 여·야 합의로 만들어질 줄 알았던 세월호 특별법 처리의 지리한 공방만 봐도 우리 지도자들에겐 ‘국민 생명’보다 우선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눈앞의 작은 계산에만 빠져있는 정치권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지도층이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수면위로 드러난 성난 민심의 무게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이들은 세월호 100일을 잘 통과했다고 안도의 숨을 쉴지 모르지만 민심의 바다는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세월호 진상조사기구를 어떻게 구성하고, 의결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수사권을 부여할지 말지의 문제가 여·야가 서로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밀며 비난전만을 펼 정도로 타결짓기 불가능한 사안인가. 자신이 자녀가 세월호 안에서 사라졌다해도 그렇게 정략을 내세울 것인가. 여·야 공방은 세월호가 우리사회에 던진 과제의 의미와 무게를 간과한 채 작은 정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세월호 선장’ 같은 무책임이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석달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호는 정상 운항하고 있는가? 꽃다운 나이에 억울하게 죽어간 단원고 학생들의 원혼은 언제쯤 진혼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또 다른 세월호 괴물 출연을 걱정하며 불안에 떨어야 하는가?

어느 나라 국민이건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다는 것은 가장 소박한 바램이다. 이런 지극히 기본적인 국민의 소망 하나가 ‘세월호 특별법’을 계기로 차곡차곡 이뤄질 수 있다면 우리 국민은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영원히 잊지 않고 되새기면서 ‘국민 안전’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진정성을 가질 때까지 법을 만들도 또 만들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세월호 희생자들의 진혼이 이루어지고, 우리 산 자들이 그들에게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