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고 10년이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 ●‘세월호 참사 100일’ 진도 팽목항 표정 돌아오지 못한 10명…4월16일로 멈춘 실내체육관 적막 기약 없는 실종자 가족·진도 주민들 소리 없는 신음 여전 김혜수 기자 kimhs@kjdaily.com

2014년 07월 23일(수) 20:49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0일을 맞았다. 하지만 아직도 수심 48m, 맹골수도의 거친 물살아래 찬 바다 속에는 금쪽같은 혈육이 잠겨있다. 언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지 기약도 없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은 오늘도 진도 팽목항에서, 체육관 바닥에서 기다림과 싸우고 있다. 100일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정부의 뾰족한 대책은 없고, 세월호는 세월 따라 아련히 잊혀져 가고 있다. 하지만 남은 이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다림에 눈물 짖는 팽목항 = “100일도 이렇게 금방 갔는데…, 그래도 1년이고 10년이고 아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죠.”

수학여행을 간다며 집을 나선 단원고 학생들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한지 100일이 됐다.

박영○, 이영○, 고창○….

세월호 침몰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 진도 팽목항은 여전히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란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등대까지 150ｍ가량 늘어선 난간에 매달린 작은 풍경 하며,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승려의 목탁 소리가 정적을 깼다. 또 세월호 도보순례단이 내건 실종자 한명, 한명의 이름을 적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실종자들을 향한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나부꼈고 연예인 브로마이드와 텍도 채 떼지 않은 스포츠 의류와 신발, 시들어버린 국화가 주인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다.

난간에는 시간이 흘러 빛바랜 노란 리본에 담긴 문구는 마음을 울컥이게 한다.

“보고 싶다”, “차디 찬 바닷속에서 빨리 나오세요 당신의 아내가”, “어제는 바지선 타고 나가 너희들이 있는 자리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돌아와라” 등….

특히 얼마 남지 않은 실종자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메시지들은 더욱 애처롭게 흔들렸다.

팽목항에서 만난 한 실종자 가족은 “하나뿐인 딸이 처음 떠나는 수학여행 날이라서 학교 앞까지 데려다 줬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기다리는 것 밖에 없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다”고 절규했다.

이어 “100일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갔는데 1년도 금방일 것 같다”면서도 “이 기다림이 10년이든, 100년이든 끝까지 아이를 만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음하는 진도 주민의 한숨 = 진도의 눈물은 유가족만의 몫이 아니다. 속으로만 눈물을 삼키던 애꿎은 진도 주민도 이젠 막다른 길에 내몰렸다. 세월호 참사로 진도민의 살림살이는 엉망이 됐다.

예년 같으면 휴가철 성수기를 맞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져야 했지만 뚝 끊긴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어패류와 해산물 판매가 형편 없는 그 자체다.

그렇다고 피붙이를 잃은 슬픔으로 매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유가족들 때문에 차마 작은 불평과 불만을 표출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벙어리 냉가슴이다. 심지어는 진도에서 생산된 특산물을 보내면 반송되는 사례도 있을 정도이며, 낚시 전문점 20곳은 이미 폐업 단계에 처해있다고 한다.

실제로 진도군 대책위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후 관광객 및 어업 소득 감소로 900억원 가량의 피해가 발생했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 232억원이던 관광소득은 29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관광객 수도 지난해 4-5월에는 11만1627명이던 것이 올해는 2만3255명으로 급감했다.

◇4월16일에 멈춘 진도실내체육관 = 진도실내체육관은 시신 수습과 함께 실종자 가족들이 떠나면서 1천명이 넘게 북적였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하지만 기다림에 지쳐 덜렁 남은 실종자 가족 4명은 여전히 기다림 그 자체다. 100일이라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294명의 꽃다운 생명이 차가운 바다에 묻혔고 10명의 시신은 아직도 그 상태다.

지난 4월16일 사고 첫 날과 비교해 시간이 흐르면서 체육관 밖과 안을 가득 채웠던 자원봉사자, 급식차량, 샤워시설, 취재진 등이 모두 빠져나가 적막감이 맴돈다. 의료·급식·통신 시설과 종교단체의 천막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는 초기와 달리 옷이나 명찰로 실종자 가족들을 구분하지 않아도 서로 이름을 부를 만큼 하나의 가족이 된 모습이다. 또 실종자 가족과 자원봉사자들 역시 기다림의 시간 동안 상당히 가까워졌다.

체육관에서 만난 한 유가족은 “초등학교 때 조카 집안 사정이 어려워 3년 간 맡아 키웠는데 가정형편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간다고 해서 용돈과 함께 수학여행비를 내가 줬는데 이렇게 됐다”며 “지난달 조카 아이 시신이 발견됐지만 그 죄책감에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곳에 있는 가족들은 처음에는 아이가 살아있기만을 바랐는데 이제는 시신을 찾았다는 사실에 부러워하고 시신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원고 학생 남모(17)군의 아버지는 “가면 갈수록 가슴이 위축되고 더욱 조여 오는 허전함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며 “자식을 보고 싶은 마음과 아직도 물속에 있는 아들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목을 메였다.

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팽목항에 나가 “내 아들, 내 딸”을 외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진도 팽목항의 시계는 여전히 4월16일이다. /김혜수 기자 kimhs@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