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장 큰 관심사는 김혜민 변호사

2014년 07월 31일(목) 20:05

필자는 고등학생 때 헬렌 니어링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처음 읽었다. 그 무렵 이 책을 읽고 무척 감동을 받았던 것 같은데, 도대체 여고생이 그 무렵 책의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을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지금 시점에서 새삼 궁금하기도 하여, 필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참여하고 있는 인문학 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어볼 것을 제안했다.

헬렌 니어링은 1904년 미국에서 태어나 신지학의 구루인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기도 하다가, 스물네 살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서 그와 함께 평생을 보내게 된다.

스코트 니어링은 미국의 산업주의 체제 등을 강력히 비판하다가 학계에서 쫓겨나고 전처와 두 아들 역시 그와 헤어져 지내는 인생의 가장 고독한 시점에서, 본인보다 스물한 살이나 어리고 총명하며 예술적 기질까지 풍부한 헬렌 니어링을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매우 가난한 뉴욕생활을 청산하고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농장을 일구고 자급자족하면서 검소하고 소박하지만 풍성한 삶을 일구는가하면, 동시에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삶을 살다가, 스코트는 1983년에, 헬렌은 1995년에 각각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헬렌은 왜 스물한 살이나 많은 스콧을 인생의 동반자로서 선택한 것일까. 이들은 어떻게 반세기 가까이를 서로 깊이 사랑하면서 보낼 수 있었을까.

결혼을 하고나서 이 책을 다시 읽으니 자연스레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니어링 부부는 수많은 서신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전했는데, 그 중 스콧이 헬렌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왜 그토록 지적이고 예술적 재능이 충만하며 젊고 유복한 헬렌이 기꺼이 스콧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선택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스콧은 헬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가장 큰 관심사는 당신이 언제나 최상의 조화로운 상태로 가장 훌륭한 당신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로 살아가면서 배우자에게 “내 가장 큰 관심사는 어서 빨리 돈을 모아 집을 넓히는 것이다”, “내 가장 큰 관심사는 당신이 내게 잔소리 좀 하지 않는 것이다”, “내 가장 큰 관심사는 당신이 일찍 집에 들어오는 것이다”라는 식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쉬운 반면, 스콧처럼 “당신이 언제나 최상의 조화로운 상태로 가장 훌륭한 당신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이상적이고 완벽하고 심지어 불가능하기까지 한 것인가.

변호사로서 이혼소송을 하다 보면, “나는 평생을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힘들게 살아왔는데 저 사람은 그걸 당연히 생각하고 밖으로만 돈다”면서 힘들어하는 하소연을 많이 듣게 된다. 그래서 배우자로서, 인생의 동반자로서 스콧과 같이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고 있다.

니어링 부부의 삶이 과연 완벽히 조화로운 삶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적어도 ‘부부’로서는 서로를 가장 존중하고 서로가 그 자신이 되게 하는데 최고의 반쪽이었음이 분명하다.

니어링 부부의 삶이 참 부럽고 대단해 보인다며 눈을 반짝이는 필자에게 인문학 모임의 한 의사선생님은 “아니 이혼전문 변호사라면서요?!”라고 농담을 건네신다. “그러게요. 저도 여러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보니…”하고 웃고 넘어갔지만, 부부로서의 연이 다해 이혼을 해야 하고 그래서 필자를 찾아오는 그 누군가에게 필자 역시 변호사로서 “내 가장 큰 관심사는 당신이 이혼을 한 뒤에 최상의 조화로운 상태로 가장 훌륭한 당신 자신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