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곡성·순천 국회의원께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8월 06일(수) 20:50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대한민국에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겨준 세월호 침몰 장소는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입니다. 육지의 맹수와 같은 곳이 맹골(孟骨)이고 그 맹골의 수도이니, 한반도 삼면 바다 중에 가장 사나운 곳이지요.

우리 조상은 이 맹골수도를 지날땐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낮추고 또 낮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서해 해상의 기상은 좋았고 맹골수도 역시 화난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오만한 자세로 운항을 했으니, 대참사로 기록된 세월호 사건은, 아무리 잔잔한 바다라도 맹골은 맹골이라는 엄중한 자연의 경고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맹골수도와 아주 가까운, 같은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진도 명량해협에서의 이순신 장군 활약상을 그린 영화 ‘명량’ 때문에 대한민국의 여름이 지금 뜨겁습니다. 현대의 오만한 우리는 맹골수도 명량 앞바다를 우습게 보다가 수백명을 죽게 했지만, 반대로 이순신은 이 험한 바다의 조류와 지형을 이용해 13척의 배로 일본배 133척을 물리치고 이 나라를 지켰지요. 이 불가사의한, 전설적인 승전보를 다른 영화가 세월호 사건 100일이 지나고 개봉된 것 참 신기합니다. 이 영화는 분명 세월호 침몰 훨씬 이전에 제작되었고, 진도 앞바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 징후도 없을 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2014년 4월 16일부터 오늘까지 진도 바다를 눈물로 지켜보다가 느닷없이, 영상 화면을 통해 1597년의 진도 바다를 건져올려 통쾌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영화 속의 진도 앞바다로 가보지요. 1597년 9월 이순신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400년 전 그 바다에 일본 함선 133척이 나타나자 백전노장조차 공포에 떨고 물러나려 합니다. 이때 이순신은 가장 먼저 적진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대장이 홀로 싸워도 겁먹은 부하들은 도망칠 틈만 보고 있었습니다. 장군은 몸을 사리던 거제 현령 안위에게 소리칩니다.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가면 살 것 같으냐?(安衛敢死於軍法乎 退生去得生乎)’ 안위는 용기를 내어 힘껏 싸워 이깁니다. 이 전투를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쓴 유명한 휘호는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卽生 必生卽死’입니다. 그는 자신의 일기 ‘난중일기’에 그날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2014년 세월호를 통해 전 세계를 슬픔에 빠뜨린 진도바다에서 갑자기 400년 전의 ‘명량해전’ 진도바다가 살아나 ‘진정한 영웅, 새로운 리더십’을 얘기하려하는 시점에, 또 하나의 사건이 오버랩 됩니다. 진도 앞바다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있는 전남 곡성과 순천에서 일어난 변화는 사건 중에 사건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승산이 없다고 보았던 전통 야당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이 된 것입니다. 당선된 의원이나 표를 몰아준 유권자나 대한민국의 고질병 지역구도 타파를 깨는 절묘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한국 정치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입니다. 영화 ‘명량’을 개봉한 날, 7·30 재·보선이 있었고, 화면에서 이순신의 승전보를 보고 있을 때, 전국 매스컴은 ‘한국 정치사의 대 이변’을 의미있게 다루었습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정현 의원의 고향 출마를 염려하고 말렸지요. 의미보다 너무 상처가 클 것이라 미리 짐작했습니다. 명량대첩에서도 여러 부하 장수가 이순신에게 너무 불리한 싸움이니 물러나자고 간청한 것처럼···. 그러나 이순신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자 반드시 살아남는다’며 앞서 나갑니다. 호남의 대다수 사람들이 무모한 도전이라 할 때 ‘죽어도 좋다’며 도전장을 내밀고 불가사의한 승리를 거둔 것과 같지요.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란 말로 호남을 깍듯이 예우했습니다. 임금까지도 왕실을 버리고 숨을 곳을 찾을 때 호남 의병이 관군보다 더 열심히 나라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이 나라도 없다’고 극찬 했었지요. 필자가 개인적으로 이정현 의원이 꼭 가슴에 새겼으면 하는 말도 이 말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 발언 이후에 호남은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희생을 자처하며 이 나라 민주화를 견인해왔습니다.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호남이 새누리당의 후보 이정현을 ‘내 식구’로 안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산폭탄이라는 약속을 꼭 지켜야 함은 물론이고 ‘약무호남 시무국가’의 연장선상에서의 호남사상·광주정신의 확장, 지역감정 극복을 통한 국민통합의 선봉에 서야 합니다. 세계 어디 이런 나라가 있겠습니까. 남북의 분단된 것도 모자라 동서로 갈려 감정의 골에 빠져 신음하는 이 가련한 나라에서 대담하게 그 구도의 한 축을 깼으니, 이순신이 13척으로 133척을 물리친 힘과 견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사명을 잊지 마십시오. 사분오열된 이 나라 국민의 통합을 위해 힘쓴다면 한국정치사는 다시 한번 ‘정치인 이정현’을 크게 조명할 것입니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