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忠)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2014년 08월 13일(수) 20:10

영화 ‘명량’을 보고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사가 현재보다 더욱 현재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순신은 어떤 결단을 내릴 때마다 그 기준을 ‘백성’에 두었다.

최근 광주비엔날레의 ‘전시 작품 유보’ 사태를 보면서 아래로 향하는 충(忠)을 다시 떠올려본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광주비엔날레는 그동안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축제로 성장 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형 성장만큼 내형도 성장했는지 의문이다. 최근에 일어난 ‘세월 오월’의 작품 사건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망신을 안겨주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올해 20주년 기념 특별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광주정신’이라는 대주제 하에 강연·전시·퍼포먼스 등 3가지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지난 8일 개막해 비엔날레 폐막과 함께 막을 내릴 예정이다. 이 중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는 ‘광주정신’을 조형적으로 승화시켜 ‘달콤한 이슬-1980 그 후’라는 주제로 14개국 47작가가 참여했다. 소위 ‘광주발 미술운동을 통해 사회를 조망하고, 치유의 메시지를 던진다’는 게 기획의도다. 따라서 민중미술 대표 주자 홍성담 화백의 ‘걸개그림 프로젝트’는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됐다. 1980년 ‘광주의 봄’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 동시대의 비극과 슬픔, 삶을 아우르는 걸개그림 ‘세월 오월’ 제작에 홍 화백을 비롯한 작가, 시민 200명이 공동으로 참여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걸개그림은 집회 때 대형 건물 외벽 등에 걸린 이동식 벽화로 1980년 광주에서 시작된 뒤 민중미술의 상징이다. 그런데 광주비엔날레는 개막을 앞두고 ‘세월 오월’에 대해 광주시는 전시 유보 결정을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했다는 이유다. 이에 항의해 홍성민 작가와 이윤엽 판화가가 작품을 자진 철거했다. 초유의 사태다. 특별프로젝트 책임큐레이터를 맡은 윤범모 교수(가천대 회화과)도 ‘예술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사퇴했다.

필자가 1980년대 문화부 미술담당 기자를 할 때 많이 본 광경이다. 민중예술의 메카로 불린 광주에서 만들어진 민중극·민중판화·민중가요 작품이 왕왕 검열에 걸리거나 작가가 조사를 받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예술이 ‘한류’ 바람을 타고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이 시대에, ‘표현의 자유’를 가장 갈망했던 광주에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사태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1980년대 부르짖었던 성명서가 다시 나온 것도 민망하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라’는 광주시민단체협의회가 성명서가 다시 등장했다. 12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측에 “홍성담 화백의 작품 ‘세월오월’을 본래대로 전시하라”고 촉구하고 “전시유보 결정은 사전검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로서 사실상 광주정신에 먹칠을 가한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광주인권운동센터, 광주NCC인권위원회, 참교육학부모회광주지부, 학벌없는사회를위한광주시민모임, 실로암사람들’도 성명서를 내고 ‘공공기관의 사전검열에 의해 게시유보 된 것은 너무도 개탄스러운 일이다. 인권의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라 광주시가 추진하는 인권도시에 대한 성찰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한 광주시민의 대략적인 의견은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가 작품을 검열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는 것이고 작품에 대한 논란은 광주시민이나 관람객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 ‘세월 오월’은 광주비엔날레가 주제를 정해 주문한 것이고 작가는 그 주제에 충실해서 제작했다면 광주비엔날레는 그 큐레이터의 기획과 작가의 작품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검열의 칼’을 빼 든 것은 스스로의 명예를 부정한 것이다. 광주시장 역시 광주비엔날레 재단 이사장으로서 이 작품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22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여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미 ‘세월 오월’의 검열 문제로 문화도시 광주의 위상은 땅에 떨어 질대로 떨어졌다. 광주문화를 존경했던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처리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그림이 무엇인가. 인간과 삶을 전달하는 매개다. 거기에는 정치 뿐 아니라 세상만사 모든 것이 다 들어갈 수 있다. 광주는 ‘민주성지’를 넘어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거듭나려는 시작점에 서 있다. 광주가 진정 문화중심 도시가 되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없어야 한다. 광주정신을 담아내지 못한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에서 개최할 의미가 없다. 광주는 우리 사회의 반성을 넘어 미래에 대한 방향성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곳이다. 광주비엔날레는 그 정신을 가장 먼저 담아가야 할 사명이 있다.

광주시, 광주비엔날레, 광주시장에게 묻는다. ‘세월 오월’ 작품 유보 결정을 할 때 ‘충(忠)이 백성을 향 했는가 임금을 향 했는가’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