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겐 왜 그런 어른이 없을까요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
| 2014년 08월 20일(수) 1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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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이란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이들도 ‘교황 같은 어른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참 많이 하는 것을 들었다. 얼마나 ‘참됨’에 대한 목마름이 심했는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진실과 사랑에 목말라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우리 주변의 어떤 종교 지도자가 이처럼 낮은 자세로, 가장 아프고 서럽고 고통스러운 국민을 안아주었던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어떤 지도자가 이처럼 겸손한 자세로 장애인에게 손을 내밀고 사랑이 담긴 입맞춤을 해주었는가. 그동안 우리 사회 어떤 정치인이 교황만큼 진심어린 마음으로 세월호 유가족을 껴안았는가. 참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나라다.
우리 국민은 이번 기회에 어떤 마음씨를 가진 이가 참 리더인가를 명확하게 보았다. 1993년 성철 스님의 열반 이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와 함께, 기워 만든 누더기 가사의 청빈한 삶,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참선 수행법이 세속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며 불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불자 수 또한 증가한 것처럼 교황 때문에 가톨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다.
한때 왕중왕의 절대권력을 휘두른 것에 비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가톨릭 교황은 바티칸이라는 독립된 도시국가를 통치하고 세계 177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지구촌 12억 신자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적어도 세계 가톨릭계에선 절대 권위의 상징인 교황이 우리나라에서 보여준 말과 행동의 울림은 혼란에 빠진 한국사회에 통렬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필자는 교황이 방한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말 때문에 언론인의 사회적 사명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교황은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외신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 고통받은 인간을 앞에 두고 정치적 중립을 말하는 것은 틀렸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파하는 국민 앞에서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는 정치인들보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는 말, 그동안 우리 지도자들이 헌법 운운하고, 이념과 정파, 지역감정을 적용하면서 국민 고통 외면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리의 정치, 우리의 경제, 우리의 윤리는 강자, 고통을 주는 자, 부자의 논리가 강하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짓밟히는 자, 정의에 굶주린 자들의 편에 서서 ‘진리’를 용기 있게 말하는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큰 불행은 프란치스코 교황같은 ‘어른’이 없다는 점이다. 온 국민이 울분을 느끼고 슬픔에 잠겨도 방향을 잡아주고 위로해주는 어른이 없다. 세월호 침몰 이후 월스트리트저널(WSJ) 서울 특파원이었던 에번 램스태드는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기고한 글(5월 12일)에서 “한국인의 충격은 미국인들이 9·11테러 직후 겪었던 상황과 유사하다”고 진단하고 그 당시 미국에서는 어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자(It’s-OK-to-move-on)’며 상처 치유에 나선 반면 한국은 아직 그런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1995년 7월 16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희생자를 위한 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사람과 생명이 모든 가치 중에서 제일간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살아왔더라면, 그리고 누구보다도 우리 정치인과 경제인들에게 이런 인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에 앞서 있었더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진리’를 말하는 어른은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시대의 리더자들은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체하고 잘못된 말을 들어도 못들은 체 하는 귀머거리요 장님이다.
우리 사회는, 교황처럼, 노한 목소리로 정의와 양심을 버린 비인간성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고, 때론 상처입은 영혼들의 절규에 귀 기울이는 어른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처받고 상처 주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존중을 나누어 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탐욕과 위선에 빠져 생명의 존귀함을 경시하고 억압과 증오를 부추기고 있는 삶을 엄히 꾸짖는 어른이 꼭 필요하다. 또한 파괴와 위협으로부터 화해와 평화, 안녕의 질서를 세우려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주교를 ‘목자’라 했고, 그 목자는 양을 앞서거나 뒤서거니 하며, 때로는 양들 한가운데 거닐기 때문에 양의 냄새가 물씬 나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국민 안에 들어와 국민 곁에서 뒹구는 ‘양의 냄새’가 나는 종교지도자를 우리도 만나고 싶다. 목자라기보다, 양 가운데서, 양에게 봉사하는 양이 곁에 있으면 참 좋겠다.
‘어른’이란 ‘얼’을 가진 분이라는 높임말이다. 경험과 연륜을 통해 어질고 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행하는 사람을 ‘어른’이라 부른다. 옛날의 어른은 스스로 어진 일과 바른 일을 솔선하며 뭇 사람들의 존경과 존중을 한 몸에 받았다. 우리는 그래서 그 분을 ‘큰 어르신’이라 극 존칭했다.
우리는 지금 교황같은 ‘큰 어르신’이 필요하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