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만남들이 그려낸 소소한 풍경들, 눈부신 청춘의 열정을 깨우다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9> 인도네시아 <자바섬, 반둥 순바인 미인이야기> kjdaily.com

2014년 08월 27일(수) 19:12

땅꾸반 쁘라후 화산 분화구를 배경으로…

오래전 읽었던 글 가운데 문득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어느 청년이 아름다운 애인에게 실연을 당해 자살을 생각하고 마지막 하소연을 목사님께 고백했는데 대답은 ‘미인도 가죽 한 껍질이니 마음 고쳐 잡고 새 삶을 살아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미인은 확실히 뭇 남성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당연하다 싶다. 경국지색이란 고사가 생길 정도면 천하 영웅도 미인의 치마폭 속에 놀아나고 베갯머리에서는 판단이 흐려져 나라도 망치는 경우가 있었다. 나폴레옹도 조세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발에 키스를 했으며, 퇴계 이황도 두향이라는 관기와의 연정으로 임종 때는 시자(侍者)에게 두향이 선물한 ‘매분(梅盆)에 물을 줘라’ 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인 앞에 혼이 빠지는 남자의 생리는 보편적으로 다 같은 듯싶다. 그러나 장미꽃은 아름답지만 줄기에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듯이 미인과 아름다운 꽃은 늘 조심하라는 자연 법칙의 경고 메시지가 담긴 듯하다.

16_박종석 作 ‘산’

미인이 많은 도시! 반둥역에 하차하기 전, 열차 창문으로 보이는 산촌 풍경은 전통 가옥과 자연의 어울림이 고풍스럽다. 그림을 그리기에 좋은 대상이었으나 스쳐 지나는 수밖에 없다.

반둥은 해발 700m의 고원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시원하고 외곽엔 차 밭이 많은 고장이자 27개의 대학이 있는 교육 도시로 1955년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 회의가 개최되어 20개국 대표들이 모여 반식민지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쳐 그 후 반둥 회의는 세계사 교과서에 등장한 유서 깊은 도시다. 원래 순바인의 땅으로 그들은 예의 바르고 온후하여 항상 미소를 지으며 차분한 성품의 종족인데 지금도 그들이 대부분 많이 살고 있다. 반둥역에서 5분 거리의 숙소에 들었는데 카운터의 30대 남자 종업원은 톤이 낮은 온화한 말씨와 정중한 예의로 손님을 깎듯이 맞이하며 흐트러짐 없이 안내한다.

반둥 여성의 아름다움은 인도네시아에서 매우 유명하다는데 맑은 피부색과 특유의 미소와 온화함이 겸비된 얼굴을 보고 실감 할 수 있었다. 다음날 기차역을 찾아 족자카르타 열차표를 예약하는데 역무원 처녀를 보고 한국의 톱스타 미인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향’

성형수술이 아닌 자연의 갸름한 얼굴에 하얀 피부가 윤기가 흐르고 선명한 이목구비와 차분한 말씨, 은근한 미소에 교양과 지성을 겸비한 아가씨였다. 좀 더 확대하면 현대판 선녀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보는 순간 아!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늘 몸에 지니고 다닌 지필묵을 그 시간에는 소지하지 못해 카메라로 찍고 싶다고 했다. ‘나는 화가인데 아가씨를 그리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더니, 수줍은 모습으로 겨우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래서 촬영을 하는데 포즈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경직돼 버린다. 4컷을 찍었는데 실제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나는 촬영 후 몇 번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괜찮은 미인이라는 감탄과 함께 아! 영웅도 미인 앞에서는 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직접보고 그린 것이 훨씬 좋을 듯싶어 내일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다음날 갔는데 하필이면 다른 역무원으로 바뀌어져 있어 발길은 돌릴 수밖에 없었다.

‘노을’

다음날 택시를 대절하여 땅꾸반 쁘라후 화산 분화구에 이른다. 끝없는 차밭과 네덜란드식 붉은 기와집과 녹음이 어우러져 그 자연에 그 미인의 도시구나! 추측해 본다. 그 후 사리 아트르(sariater) 온천 공원에 입장하여 폭포에서 흐르는 따뜻한 유황물에 30여분 피로를 푸는데 약간의 염분이 느껴지고 유황 냄새가 자욱하다. 작은 노천온천에서 발을 잠그고 또 부부 노인을 만나 대화를 하는데 75세 노인과 68세 할머니로, 그분께 젊었을 때 아름다웠겠다고 하니 수줍어하신다. 옆의 이빨 빠진 할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신지 ‘뷰티플 뷰티플’ 하시며 거들어 주신다.

화산 지역은 땅도 기름지지만 흐르는 유황 성분으로 세안(洗顔)해서 미인들이 많나 싶다. 녹차와 신선한 공기, 온천욕 등 풍요로운 지리적 여건에서 주어진 품성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드는 듯하다. 삼일간의 반둥의 여행은 아쉽지만 다시 방문하고 싶은 도시로 넉넉한 자연과 사람들의 품성이 지혜롭고 온후하여 더욱 매력이 느껴진다. 언젠가 다시 방문하면 미인들을 만나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여운을 남긴 여정이었다.

‘여인’

‘온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