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한 돌담길 따라 우리네 삶도 흐르고 광주매일신문·광주평화방송·사랑방신문 공동기획 남도 힐링 명소를 찾아서(24) 창평 ‘삼지내마을’ kjdaily.com

2014년 09월 02일(화) 19:12

삼지내마을 전체를 휘감고 있는 3천600m의 돌담길은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토석담이다. 돌담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문화적·역사적 가치가 높다. 전남도 민속자료 제42호로 지정된 춘강 고정주 고택. 전통적인 양반집 형태를 띠고 있으며 실제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비교적 보전이 잘 되어 있다. 돌담길을 따라 이어지는 수로가 이색적이다. 돌돌 흐르는 냇물은 고요한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삼지내마을 ‘달팽이 가게’ 전경

요 며칠째 비가 제법 내렸다. 그쳤나 싶더니 사나흘 걸러 비가 내리고, 또 그칠 만하면 다시 비 소식이다. 여름엔 마른장마로 비가 오지 않아 걱정거리였는데, 9월로 접어드니 때 이른 가을장마에 이래저래 울상이다. 비 오면 어디 나서기도 마땅치 않다. 운전하기도 사납고 땅도 질척거려 쏘다니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비가 오면 더 가고 싶은 곳이다. 광주에서 30분 정도면 만날 수 있는 곳, 담양 창평 ‘삼지내마을’이다.

이날도 보슬비가 내렸다. 평탄한 산 능선을 따라 고요히 물안개가 흐르고 있었고, 한창 여물어 가는 벼들은 눈이 부시도록 짙푸르렀다. 삼지내마을을 둘러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1510년경에 형성된 삼지내마을은 그 역사만도 500년이 넘는다. ‘삼지내(三支(내)川)’는 마을 앞을 흐르는 천의 모습이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감싸 안고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07년 국제슬로시티연맹에 의해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 마을은 고즈넉한 고택과 아늑한 돌담길이 어우러져 세월의 정취와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곳은 슬로시티답게 천천히 걸어야만 마을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실제 마을 내로는 차가 진입하지 못하게 돼 있다. 때문에 차는 창평면사무소 앞에 세워놓고, 걸어가야 된다.

마을 전체를 휘감고 있는 담장은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토석담이다. 총길이만 3천600m에 이른다는 이 담장은 문화재로도 등록되어 있어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다.

오로지 돌담 하나만으로도 마을은 볼거리가 된다. 돌담 너머로 드리운 나무들은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무화과와 석류는 이제 막 배가 불룩하게 차오르기 시작했고 대추나무도 대롱대롱 연둣빛 조그마한 열매들을 맺어내고 있었다. 돌담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넝쿨은 한여름 동안 햇볕을 충분히 받아 무성했다. 나란히 줄 서 있는 담쟁이넝쿨 이파리 위로 이따금씩 빗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모습은 소소한 재미를 선사했다.

퍽!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빨갛게 채 영글기도 전에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 감이었다. 그러고 보니 돌담 아래로 주먹만한 감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비록 나뭇가지를 부여잡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지만, 제 몸은 가을을 맞이하듯 바지런히 무르익고 있었다. 부드러운 비바람 따라 풍기는 달큰한 감 냄새가 더욱 향긋하게 다가온다.

낙숫물 소리도 청아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복잡했던 마음을 간결하게 정리해준다. 빗소리에 귀를 기울일수록 몸과 마음이 안식을 찾게 된다.

담장을 따라 펼쳐지는 그 길은 삶 속에 난 길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삼지천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오갔던 길인 것이다.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수로도 꽤 인상적이다. 한 걸음에 쉬이 건널 수 있을 만큼의 좁은 수로인데, 다른 마을에선 만날 수 없는 풍경이라 이색적이다. 수로를 통해 내려오는 물은 마을 위 저수지에서 흘려보내는 물로서, 고요한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마을 내로 깊숙이 들어섰다. 비가 내린 탓에 마을 안길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지만 걷는 내내 질퍽거리지 않았다. 모래와 자갈로 덮인 길이라 물빠짐이 좋아 비 오는 날에도 신발에 흙이 더덕더덕 붙을 일이 없다.

삼지내마을 곳곳에는 옛 모습을 고이 간직한 고택들도 여러 채 있다. 이들은 조선 후기 전통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1510년 이래 창평고씨 집성촌답게 고정주와 고재선, 고재환, 고재욱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마을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중 전남도 민속자료 제42호로 지정된 춘강 고정주 고택은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가옥 중 하나였다. 이 고택은 한국의 전통적인 양반집 형태로 안채와 2동의 사랑채, 곡간채, 사당, 내외의 문간채 등으로 구성돼 나름 격식을 잘 갖춘 주택이었다.

일부 고택은 관광객들의 훼손을 막기 위해 굳게 닫혀 있기도 했다. 옛 선조들의 고귀한 유산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며 보지 못한 아쉬움을 대문 틈 사이로 비치는 풍경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고택들과 어우러져 삼지내마을 주민들이 사는 집들도 올망졸망 모여 있다. 각 집마다 달려 있는 문패가 유쾌하다. ‘미소집’, ‘지혜가 담긴 집’, ‘부지런한 집’, ‘은혜가 충만한 집’, ‘나무를 사랑하는 집’, ‘돌탑을 사랑하는 집’ 등…. 집주인 이름 대신에 저마다 독특한 문패를 내걸었다. 이 집에 과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문패대로 왠지 그러할 것 같다.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다면, 민박집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묵는 하룻밤은 힐링의 정점을 찍는다.

삼지내마을은 걷다 보면 이따금씩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동네 어르신이 안내자 역할을 해준다. 덕분에 마을 한 바퀴를 빠짐없이 잘 돌았다.



삼지내마을의 문화쉼터 ‘달팽이 가게’

로작품 감상에 향긋한 차 한 잔의 여유

지내마을이 예술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창평면민들의 건강을 지켜오던 낡은 보건소 건물이 ‘달팽이가게’로 재탄생했다.
이곳은 창평의 숨은 명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문화가게이자 쉼터이다.
소비자들은 슬로푸드 및 슬로아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한 공간 안에서 만날 수 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도 할 수 있다.
달팽이가게 안에는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소박한 달집 다방도 마련해 놓았다.
느림보의 마음으로 천천히 차를 음미하며 도란도란 대화도 하고, 운이 좋으면 그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토요일에는 달팽이가게 앞에서 ‘달팽이시장’이 열린다.
농산물장터, 슬로시티 밴드공연, 주민들의 아나바다장터, 다양한 전통놀이 체험 등 흥미 있는 즐길거리로 풍성하게 꾸며진다.



/글·사진 =사랑방미디어 김지연 기자 sunny-jy35@sarangbang.com